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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익사체 발견된 딸의 끔찍한 영상···모성의 분노, 中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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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쿤밍서 18세 여대생 익사체로 발견

경찰 “술에 취해 자살” 결론

어머니 “‘성추행ㆍ폭행’ 영상 있다” 재조사 요구

한달째 미적대던 경찰...여론에 밀려 수사재개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부모는 못할 일이 없다.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 강인한 모성을 실감케 한 사건이 최근 중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지난 12일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엄마의 피맺힌 호소:누가 저에게 진상을 알려줄 수 있나요’라는 제목의 편지가 올라왔다. 말그대로 엄마의 피눈물나는 절규가 묻어났다.

중앙일보

고 이심초양 어머니가 올린 호소문. [이심초어머니 웨이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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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꽃다운 소녀는 저의 외동딸 이심초(李心草)입니다. (중국) 쿤밍 이공대 사물인터넷학과 2학년 학생이에요. 2019년 11월 15일은 딸의 열아홉번째 생일입니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생일을 맞을 수가 없게 됐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건 지난달 9일 새벽 3시. 중국 윈난성 쿤밍시 판롱구 파출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 4명이 같이 강에 투신하기로 약속했는데 그 중 하나가 이심초다. 아직 강에서 건지지 못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어머니와 가족들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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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심초 양이 익사한 판롱강. 강변 바로 옆에 폭행이 벌어진 술집이 있다. [상류신문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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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대가 이틀간 수색했지만 딸은 발견되지 않았다. 판롱강의 길이는 20㎞가 넘었다. 딸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건 9월 11일 오전 7시 20분이었다.

"저는 딸이 이미 영원히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저는 가족들과 함께 사건현장을 봤는데 인접한 식당과 주변 도로를 포함해 적어도 대여섯 군데에 CCTV가 있었지만 경찰은 일일이 영상자료들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교차로에서 판롱강 쪽을 향하는 CCTV도 한 대 있었지만, 경찰은 그 CCTV가 강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고 했고요."

이양이 숨지기 전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는 강변에 있는 한 주점이었다. 이양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친구와 그의 지인인 남성 두 명과 함께 술을 마셨다. 어머니는 경찰을 다시 찾았고, 이 술집과 당시 딸과 함께 있던 사람들에 대한 조사 자료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경찰은 마지못해 동영상을 내놓았다. 엄마의 요청이 없었다면, 빛을 보지 못할 뻔한 영상이었다. 영상을 본 어머니는 통곡했다.

"영상을 보고 저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자가 (누워 있는) 딸의 몸을 만지고 키스를 하고 있었습니다.(영상 1~24초) 딸의 뺨을 때리는 것도 보았습니다.(2분 32~35초) 딸이 “경찰에 신고할 거야”라고 외치는 소리가 세 번 들렸습니다. 딸은 강제 성추행을 당했고 폭행도 당했어요. 경찰에게 왜 이들에 대해 조사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며칠 뒤 경찰은 ‘영상을 다시 보니 네 번의 폭력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파출소에서 (영상속에서 딸을 폭행한) 그들을 봤습니다. 그들은 경찰에게 ‘오늘 나를 (감방에) 집어넣으면 내일 내가 당신을 (감방에) 집어넣을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이들은 ‘흑사회’(중국 최대의 폭력조직) 일원인가요? 도대체 누구의 보호를 받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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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심초 양의 어머니가 딸의 죽음에 통곡하고 있다. [이심초어머니 웨이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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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사건 발생 후 한 달간 경찰에 재조사를 요구했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지난 12일 웨이보(중국식 트위터)에 호소의 글을 올렸다.

"묻습니다! 우리 농촌 사람들은 법을 잘 모르지만 인민 경찰이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억울한) 죽음이 있었는데도 (경찰을 포함한) 공안기관은 소극적이고 책임을 지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증거를 열심히 조사하지 않고 있으며, 제때 부검도 하지 않았습니다.

간청합니다. 사건 이후 한 달이 지났습니다. 매일 파출소에 가서 (재수사) 소식을 기다렸고, 매번 실망해서 돌아왔습니다. 상급기관에 권위있는 조사를 요구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간절히 도움을 요청합니다. 저희에게 진실을 알려주세요."

‘딸의 죽음의 진실을 알려달라’는 어머니의 호소는 SNS를 통해 확산됐고, 중국 국민들의 동정과 함께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글은 이틀동안 3500만 번 리트윗됐다. 중국 중앙방송(CC-TV)는 물론 중국 대부분의 매체들이 관련 기사를 다뤘다. 온라인에선 경찰의 부실 수사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공권력에 대한 비판을 좀처럼 허용치 않는 중국에선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까지 나섰다. 인민일보는 '민초의 존엄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설을 통해 “민중이 핍박받지 않고 진실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법치국가이기 때문”이라며 “죽음의 원인을 찾고 어머니의 고통을 위로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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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오후 2시 쿤밍 경찰이 사건이 일어난 술집에 들어가 재조사를 하고 있다. [상류신문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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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 경찰은 14일 특별수사본부를 새로 꾸렸다. 이양의 죽음은 중국 전체가 그 진상을 주목하는 사건이 됐다. 딸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려는 엄마의 끈질긴 노력이 빚어낸 결과다. 모성은 중국 대륙을 뒤흔들 정도로 강했다.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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