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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좌우 갈라진 한국… 통일을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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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 윤보선 기념 학술 심포지엄서 영국인 청중에게 영어로 발표

"런던 주재 北 대사관 역할은 영국 통해 미국의 마음 읽는 것"

"축구에서 골을 넣는 방법은 수천 가지입니다. 전체주의 체제와의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도 다양성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17일 오전 서울 안국동 윤보선 전 대통령 고택에서 열린 학술 심포지엄. 발표자로 나선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유창한 영어로 한국과 영국인 청중 200여 명 앞에서 말했다.

조선일보

태영호 전 북한 공사가 17일 서울 안국동 윤보선 전 대통령 고택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동상이 곁에 보인다.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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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심포지엄은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원장 윤영오)과 영국 에든버러대가 2013년부터 매년 공동 개최하는 학술 행사. 객석에는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 대사와 피터 매티슨 에든버러대 총장도 앉아 있었다. 태 전 공사가 망명국 한국에서 이전 근무지였던 영국의 청중을 상대로 북한을 주제로 발표한 것이다. 영국 왕립 국제문제연구소인 채텀하우스의 존 닐슨 라이트 선임연구원은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EU 관계', 김영미 에든버러대 한국학과장은 '한국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영(韓英) 협력 관계'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에 대한 영국의 관점'이라는 주제 발표를 위해 A4 석 장 분량의 영어 발표문을 직접 준비했다. "틀린 내용을 발견하시면 곧바로 고쳐달라"고 영어로 당부하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그는 14세 때 평양 외국어학원에서 BBC의 어학 학습 교재로 영어를 공부하던 일화를 들려주며 발표를 시작했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영국의 화려한 아침 식사 사진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는 말에 청중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영국과 북한은 2000년 수교했다. 2001년 평양 주재 영국 대사관, 2003년 런던 주재 북한 대사관도 각각 개설했다. 당시 양국 수교를 위한 북측의 협상 실무 담당자가 태 전 공사였다. 그는 "런던 주재 북한 대사관의 주요 활동은 영국을 통해서 미국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며 "2006년 북 핵실험 당시에도 이라크 전쟁 이후 영미(英美) 양국에서 확산된 반전(反戰) 정서를 감지하고 이용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발표문을 읽는 도중에도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즉석에서 영어 표현을 다듬었다.

그가 20여 분의 발표를 마친 뒤 "난처한 질문도 괜찮으니 많이 해달라"고 하자 질문이 쏟아졌다. 지난 15일 평양에서 '무관중 무중계'로 열린 남북 월드컵 예선전에 대해서는 "북한에서 경기 이틀 전 체육절을 맞아서 '체육 강국'으로 대대적으로 선포했는데, 수령이 절대권력인 사회에서 한국팀에 패했으면 누구 얼굴에 똥칠을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조국 사태' 등 최근 한국 내부의 국론 분열 같은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도 좌우가 이분법적으로 갈라져 있어 통일이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해법은 당분간 하나로 합쳐지기 불가능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응답 시간에는 한국어로 답했다. '랭철한(냉철한) 판단' 같은 북한식 말투가 간간이 묻어났지만,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빼놓지 않았다.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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