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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엄마, 제 걱정 그만해요… 금메달도 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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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지뢰에 두 다리 잃은 하재헌, 장애인체전 조정 1000m서 1위

수술 이겨내고 매일 6시간 훈련 "다음 목표는 도쿄 패럴림픽 출전"

하대용·김문자씨 부부는 17일 경기도 하남 미사리조정경기장에서 기도하듯 두손을 모으고 앉아 있었다. '목함지뢰 영웅'으로 불리는 아들 하재헌(25) 예비역 중사가 제39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조정 남자 수상 개인전 1000m 결선에 나선 날이다. 하재헌의 배가 미끄러지듯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자 부부는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번쩍 들고 "만세"를 외쳤다. "아들이 밤이고 낮이고 워낙 열심히 했거든요."(아버지) "우리 아들이 조정할 때 가장 행복하고 씩씩해요. 그래서 나도 행복해요."(어머니)

조선일보

장애인체전 남자 조정 싱글스컬 PR1에서 우승한 하재헌 예비역 중사. 작은 사진은 시상대에 선 모습. /장련성 기자·대한장애인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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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하재헌은 5분20초12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위를 48초 이상 앞선 압도적 우승이었다. 그가 지난해 군인 신분으로 이 대회에 출전해 같은 종목 은메달을 땄을 때보다 40초 가까이 기록이 단축됐다. 그는 2015년 8월 서부전선 비무장지대 수색작전 도중 북한이 심어 놓은 목함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었다. 그가 출전하는 의무등급은 가장 중증 단계인 PR1. 의족을 벗고 오직 팔의 힘을 사용해 노를 저어간다.

사고 후 19차례 전신마취 수술을 견뎌낸 그는 국군수도병원에서 근무하며 재활을 위해 조정을 시작했다.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며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조정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했다. 군인 신분으로 주말에만 훈련하면서도 지난해 여러 대회에서 메달을 따냈다. 선수로서 가능성을 본 그는 고민 끝에 지난 1월 전역하고 본격 훈련에 돌입했다. "운동 힘들다"며 걱정하는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 4월 창단된 서울주택도시공사 장애인조정선수단에 들어갔다.

그는 고교 시절 야구 선수를 꿈꿨다고 한다. 군인이 되고 나서도 못 이룬 꿈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대한조정협회 국가대표 코치를 지냈던 임명웅 감독(서울주택도시공사)이 그의 운동신경과 승부욕을 알아봤다. 매일 6시간 체계적 훈련으로 단기간에 기량을 끌어올렸다.

하재헌 예비역 중사는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며 주목받았다. 국가보훈처가 공상(公傷·교육이나 훈련 중 입은 상이) 판정을 내린 데 대해 그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사실상 재검토를 지시한 뒤에야 보훈처가 판정을 뒤집어 전상(戰傷·적과 교전이나 그것에 준하는 작전 수행 중 입은 상이) 결정을 내렸다. "잘못됐던 일이 바로잡혔으니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하면서도 그는 좀처럼 웃지 않았다.

결선에서 그는 스타트부터 치고 나가며 압도적 레이스를 펼쳤다. 1위로 골인하고 나서야 "다른 선수들이 너무 빨리 쫓아와서 도망가느라 힘들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기록이 기대보다 저조해 만족은 못 하겠다"며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이 생각보다 훨씬 치열하게 훈련하고 경쟁하더라"고 했다.

어머니 김문자씨가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음고생 많았는데 이렇게 보상해주네요." 하재헌은 "늘 내 걱정뿐이신 부모님께 앞으로 좋은 모습만 보여 드리고 싶다"고 했다. "내년 4월 열리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도쿄 패럴림픽에 출전하고 싶습니다. 5년 뒤 파리 패럴림픽에선 꼭 메달을 딸 거예요."





[하남=최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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