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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성전환수술로 여성된 아빠, 호적을 엄마로 바꿀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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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85)



저는 고등학교 때 다른 친구들과 달리 여성 취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애써 씩씩하고 남자답게 행동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누나가 집에 없을 때 누나 옷을 입어본 적은 있습니다.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 많이 노력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공익근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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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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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도 한 후 결혼하고 아이도 한 명 얻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아빠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서웠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오히려 성적 정체성의 혼란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여러 번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태국에 가서 성전환수술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는 협의이혼을 했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면서 만약 제가 키운다고 다투면 소송도 불사할 것 같은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제가 죄인이니까요. 한 달에 한 번 아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제가 성전환 수술 후에 계속 여성호르몬제를 투약하면서 이제는 얼핏 보면 여성 같은 모습이 되니 아내는 아이랑 제가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정신 건강상 좋지 않다고 말하는 아내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일부러 이렇게 된 것도 아니고 아주 속상합니다. 우리나라 법원도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변경하는 결정을 해 주고 있으니 차라리 저도 여성으로 전환하는 결정을 받으면 아이의 혼란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지금 제가 아빠로 기재되어 있는 신분서류도 엄마로 바뀌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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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우리나라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등 현행법은 모든 사람이 남성 또는 여성 중의 하나에 속하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도 남성과 여성의 구분, 즉 성의 결정 기준에 관해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대법원 2006. 6. 22.자 2004스42 전원합의체 결정에서 “의학적으로 성전환증의 진단을 받고 상당 기간 정신과적 치료나 호르몬 치료 등을 실시하여도 여전히 위 증세가 치유되지 않고 반대의 성에 대한 정신적·사회적 적응이 이루어졌고, 나아가 일반적인 의학적 기준에 의하여 성전환수술을 받아 외부 성기를 비롯한 신체적 성징도 반대의 성으로 변경되었을 뿐 아니라 전환된 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만족감을 느끼고 공고한 성 정체성의 인식 성전환수술 때문에 출생 시의 성과 다른 반대의 성으로 성전환은 이미 이루어졌고, 정신과 등 의학적 측면에서도 이미 그 전환된 성으로 인식되고 있다면, 전환된 성으로 개인적 행동과 사회적 활동을 하는 데에까지 법이 관여할 방법은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다만 “그 성에 맞춘 의복, 두발 등의 외관을 하고 성관계 등 개인적인 영역 및 직업 등 사회적인 영역에서 모두 전환된 성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도 그 성으로 인식되는 정도에 이르러 사회 통념상으로 볼 때 전환된 성을 갖추고 있다고 인정되고, 또한 전환된 성을 그 사람의 성이라고 보더라도 다른 사람들과의 신분관계에 중대한 변동을 초래하지 아니하는 등 사회 규범적으로도 허용될 수 있는 경우라면 그러한 성전환자에 대하여는 법률적으로도 출생 시의 성이 아닌 전환된 성을 그 사람의 성이라고 평가해야 한다”고 성전환의 요건과 효과를 판시하고 있습니다. 이후 외과적인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경우에도 성전환 결정이 가능한 판결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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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적으로 성별을 규정하는데에 특별한 규정이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회적인 영역에서 전환된 성의 역할로 인식될 때 성전환 결정이 가능한 판결이 난 적은 있습니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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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법원은 2011. 9. 2. 자 2009스117 전원합의체 결정에서 “성전환수술 등으로 신체적 특성이나 사회적 활동을 함에서는 전환된 성이 그 사람의 성으로 인식되더라도, 가족관계등록부상의 성별 표시에 대한 정정을 허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신분관계에 변동을 초래하거나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아니하여 사회적으로 허용된다고 볼 수 있는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므로, 성별 정정으로 배우자나 자녀와의 신분관계에 중대한 변경을 초래하거나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현저한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성별 정정을 허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성전환자가 혼인 중이거나 미성년자인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성별을 정정하여, 그 배우자나 미성년자인 자녀의 법적 지위와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곤란을 초래하는 것까지 허용할 수는 없으므로, 현재 혼인 중이거나 미성년자인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사례자의 경우 혼인 전에 성전환 신청을 했으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혼인해 자녀가 있기 때문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이 전환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최근 뉴스를 보니 영국에서도 개인의 젠더와 부모로서의 신분, 지위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이미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별을 전환한 후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 출산한 청구인이 자녀의 출생 증명서에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로 등록될 수 있는 신청을 했는데 이 신청이 기각됐다고 합니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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