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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단독]검찰의 DNA 채취 99%가 영장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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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17만9046건 중 발부 0.61%뿐…‘영장 규정’ 유명무실

당사자 ‘동의’ 받으면 위법 안돼…채이배 “엄격한 법 통제를”

범죄 수사와 예방 목적의 검찰 유전자(DNA) 채취 10건 중 9건 이상이 법원 영장 발부 없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은 ‘동의’만으로 채취됐다. 현행법의 동의 규정은 실질적인 동의 의사를 반영하기 힘들기 때문에 영장 발부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6일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검찰이 2010년부터 올해 8월까지 채취한 DNA 총 17만9046건 중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은 것은 1088건(0.61%)이다. 나머지 17만7958건(99.39%)은 동의만 받아 채취했다. 검찰은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총 1만2390건의 DNA를 채취했는데 그중 영장을 발부받은 경우가 44건(0.36%)이다.

지난해는 2만1294건 중 169건(0.79%)이다. 2010년 1만1000건대였던 DNA 채취 건수는 2018년에는 2만1294건으로 점차 늘어났다.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8조 3항은 “채취대상자가 ‘동의’하는 경우 영장 없이 DNA 감식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같은 조 1항은 “검사는 판사에게 청구해 발부받은 영장에 의해 DNA 감식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고 규정해 영장에 따른 채취를 원칙으로 명시한다. 이 원칙은 동의 규정 등에 따라 사실상 의미가 없게 돼버렸다.

최근 이춘재(56)를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는 데 DNA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DNA는 질병 등 개인의 생체정보를 포함하고 가족관계까지 확인할 수 있다. 국가가 과도하게 수집해 이용하면 인간 존엄성과 신체의 자유, 사생활 보호 등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 6월 낸 연구보고서에서 DNA 채취 동의가 당사자의 실질적인 동의 의사를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렵고 저인망식 수사의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동의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구보고서는 “DNA 채취는 강제수사의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영장 없이 동의에 의하는 것은 영장주의 및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며 “동의에 의한 경우 법관이 DNA 채취의 필요 여부에 대해 실질적인 사법통제를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화성 살인사건의 경우 경찰이 4760명의 DNA를 동의 아래 채취했으나 범인을 찾지 못했다. 2012년 전남 해남 성폭력 사건 때는 65세 미만 남성 100여명의 DNA를 채취했는데 일부 주민은 “DNA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피의자로 오해받을 수 있어 억지로 채취에 응했다”고 했다. 독일에서는 수사기관 필요에 따라 피의자가 동의해야만 하는 ‘압박 상황’에서는 자발적인 동의로 볼 수 없다는 판결도 있다.

채이배 의원은 “DNA 정보는 개인의 정보자기결정권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생체정보 및 가족정보를 포함하는 매우 민감한 정보라는 점에서 엄격한 법적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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