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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인판티노 FIFA 회장 “평양 ‘무관중 경기’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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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북한 당국 조치 비판 / 2023년 여자월드컵 남북 공동개최 / 직접 제안한 인물… 씁쓸한 참관 / “생중계·비자발급 통제 등 충격적 / 北 축구협 파행적 진행 문제 제기” / 대한축구협회 “공식 항의 할 계획” / 北, 남북전 소식 일체 주민에 함구

세계일보

여자월드컵 남북 공동개최 논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오른쪽)이 월드컵 2차 예선 남북대결이 열린 지난 15일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가운데), 김장산 북한축구협회 사무총장을 만나 2023년 여자월드컵 남북 공동개최 추진에 대한 의견을 나눈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15일 평양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날 저녁 열릴 한국과 북한의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경기를 참관하기 위해서다. 인판티노 회장은 2023년 여자월드컵 남북 공동개최를 직접 제안했던 인물로, 24일 중국 상하이에서 예정된 FIFA 평의회에 참석 일정을 변경해 북한을 찾았다. 29년 만에 평양에서 치르는 이번 월드컵 예선 경기에 힘을 실어줘 여자월드컵 공동개최에 추진력을 더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읽을 수 있었다. 인판티노 회장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김장산 북한축구협회 사무총장이 만나 2023년 여자월드컵 남북 공동 개최 추진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나 정작 경기는 인판티노 회장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됐다.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이날 경기가 놀랍게도 자발적인 ‘무관중 경기’였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응원단과 취재진의 입국을 불허해 생중계는 물론 제대로 된 보도조차 무산되는 등 전조는 있었다. 그래도 북한 관중과 취재진은 경기장을 가득 메울 것으로 예상됐다. 북한 측도 지난 14일 양 팀 매니저와 경기 감독관, 안전담당관 등이 참석한 회의 때는 예상 관중을 4만명 정도로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명확한 이유 없이 하루 만에 입장이 바뀌었고, 인판티노 회장은 요아킴 베리스트룀 북한 주재 스웨덴대사 등 특별초청된 소수의 외교관들과 함께 텅 빈 경기장에서 씁쓸하게 남북전을 관람해야 했다. 베리스트룀 대사는 이 경기 관전 뒤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관련 사진과 영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영상 속 선수들은 관중 없는 경기장에서 격앙된 상태로 겨뤘고, 한때 경기가 과열되며 선수들끼리 충돌하는 상황도 있었다. 경기도 득점 없이 0-0으로 비겼다. 이 경기 영상은 귀국하는 한국 선수단에 전달돼 17일 이후 녹화 중계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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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대사가 공개한 ‘남북 충돌’ 장면 무관중 경기로 진행된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남북전에 VIP로 특별초청된 요아힘 베리스트룀 북한 주재 스웨덴대사가 자신의 SNS를 통해 공개한 남북 선수단의 경기 중 충돌 장면. 요아힘 베리스트룀 대사 트위터


인판티노 회장은 매우 큰 실망감을 표현했다. 그는 16일 FIFA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인터뷰에서 “역사적인 경기인 만큼 관중석이 가득 찰 것으로 기대했는데, 경기장에 팬들이 한 명도 없어 실망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이어 “경기 생중계와 비자 발급 문제, 외국 기자들의 접근 등에 관한 여러 이슈를 알고 놀랐다”며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명백히 가장 중요한 가치다. 이러한 문제들을 북한축구협회에 제기했다”고 밝혔다. AP통신은 “북한은 5만명의 홈 관중 앞에서 한국에 패하는 것을 걱정했을 것이고, 졌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굴욕적인 전개가 됐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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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가운데)이 카타르월드컵 2차예선 남북대결을 관람하기 위해 15일 평양국제공항으로 입국한 뒤 밝은 표정으로 공항 귀빈실을 나서고 있다. 평양=AP연합뉴스


선수단이 북한을 떠나 중국 베이징에 도착해 통신이 재개되면서 감춰졌던 뒷이야기도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협회 관계자가 전한 현지 분위기에 따르면 북한에 머무는 3일 동안 선수들은 경기나 훈련 등 공식 일정 때 외에는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에만 머물며 외부 출입을 할 수 없었다. 호텔 직원들도 꼭 필요한 말 외에는 질문에 답조차 하지 않았다. 협회 관계자는 “대표팀 선발대가 경기장에 도착한 이후로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면서 “본진이 도착할 때까지 별도의 관중이 경기장 앞에 보이지 않았다. 무관중은 저희는 물론 AFC와 FIFA도 몰랐던 내용”이라고 밝혔다.

선수단 안전을 위해 북측에 대한 비판을 자제했던 축구협회도 공식 항의를 할 계획이다. 협회 측은 “이번 방북 관련 과정을 검토해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라면서 “다만, 무관중 경기 강행은 북한이 마케팅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 제기할 여지가 적다”고 밝혔다.

한편, 북한은 이번 남북전 자체를 북한 주민들에게 함구하고 있다. 16일까지도 조선중앙TV나 노동신문 등 매체에 관련 소식은 물론 경기 결과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외신에 뉴스를 제공하는 조선중앙통신만 15일 밤늦게 무승부 소식을 짤막하게 타전했다. 이마저도 홈페이지에는 공개하지 않아 주민들은 볼 수 없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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