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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비료냐 폐기물이냐…밭에 쌓인 퇴비 400t, 지하수 오염 전전긍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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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에 침출수, 지하수 먹는 청주 시골마을 발칵

퇴비 주인 "1년간 묵혔다 사용 예정…문제 없다"

청원구청 "농사용 퇴비라 강제 처분 못해 난감"

비료관리법상 악취·환경오염 가능성도 제재 대상

중앙일보

충북 청주시 북이면 대율1리의 한 밭에 쌓인 퇴비로 인해 주민들이 악취와 침출수 유출을 우려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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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퇴비가 맞습니까. 냄새도 고약하고 침출수도 심합니다.”

지난 4일 충북 청주시 청원구 대율1리의 한 밭. 주민 연제은(63)씨가 비닐로 덮은 2m 높이의 갈색 더미를 손으로 가리켰다. 건조한 음식물과 하얀 석회석을 섞은 퇴비였다. 이 무더기 근처에 이르자 악취가 진동했다. 땅을 꾹 밟자 오염된 물이 툭 튀어나왔다. 비닐 덮개 끝자락엔 거품을 동반한 갈색물이 고여 있었다.

연씨는 “한 달 전에 마을에 악취가 풍겨서 원인을 찾던 중 밭에 쌓인 퇴비를 확인했다”며 “비가 온 뒤로 오염된 물이 도랑으로 흐르고 썩는 냄새도 더 심해졌다”고 하소연했다. 퇴비 양은 400t 규모다. 연씨는 “퇴비 임자는 밭에 뿌릴 용도라 해명했지만, 몰래 가져온 거로 봐서는 정제된 퇴비는 아닌 것 같다”며 “당장 퇴비 무더기에서 150m 떨어진 마을 지하수 관정이 오염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청주의 한 유기질 비료 생산업체가 공짜로 나눠준 400t 규모 퇴비가 골칫덩이 신세가 됐다. 대량의 퇴비가 쌓인 밭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식수가 오염되니 당장 치워달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퇴비 주인은 “농사용으로 쓸 퇴비를 쌓아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청원구청은 “아무리 많은 양이라도 정식 허가한 퇴비를 밭에 놔두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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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북이면 대율1리의 한 밭에 쌓인 퇴비 무더기를 덮은 비닐에 갈색 물이 고여있다. 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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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율리에 악취가 나기 시작한 건 지난 8월 중순쯤이다. 마을에서 전에 없던 악취가 풍기면서 뒷산을 탐색한 주민이 퇴비 무더기를 발견했다. 주민 최모(74)씨는 “퇴비 주인에게 항의해서 임시방편으로 비닐을 덮어놨지만, 발견 당시 퇴비가 외부에 노출돼 있어 파리와 벌레가 날리고 침출수도 심했다”고 말했다. 퇴비 무더기 옆에는 작은 도랑이 있어 침출수가 흘렀다. 최씨는 “20년 전 지하수 관정을 파서 60여 명의 주민이 이 물을 먹고 있다”며 “퇴비가 쌓인 땅이 오염되면 이곳에서 150m 떨어진 지하수 관정과 취수장까지 오염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문제의 퇴비는 이모(65)씨가 지인 A씨에게 받은 것이다. A씨는 3년 전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해 비료를 만드는 Y업체에서 수천t의 퇴비를 공짜로 받아 충북 괴산 청안면에 있는 한 밭에 쌓아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밭에 태양광발전시설이 들어서면서 A씨는이 중 일부를 이씨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10t 트럭 40대 분량의 퇴비 운반 비용은 A씨가 댔다. 이씨는 “A씨가 퇴비를 준다기에 밭과 논에 뿌리려고 받아왔다. 1년 정도 묵혔다가 사용할 예정”이라며 “퇴비로 인한 환경오염은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이씨가 가져온 퇴비가 발효과정을 덜 거친 퇴비라고 주장한다. 한 주민은 “정상 제품이면 저 정도의 악취가 나지 않는다. 이씨가 폐기 처분이 곤란한 퇴비를 받아놓고 발뺌을 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북이면 주민들 사이에선 덜 숙성된 퇴비를 트럭 한대당 30만원에 받아 농지에 쌓아두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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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북이면 대율1리의 한 밭에 쌓인 퇴비 무더기 주변에서 발견된 침출수. 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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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업체는 하루 155t의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한다. 석회석과 톱밥, 코코넛 껍데기를 혼합해 열처리 후 발효과정을 거쳐 매일 80~120t 정도의 유기질 비료를 생산한다. 생산한 퇴비의 절반은 강원 횡성군 둔내면의 농가와 청주 인근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한다. Y업체 관리부장은 “이씨가 받은 퇴비는 농촌진흥청에 정식 등록된 완제품”이라며 “퇴비 수요가 적은 7~8월 농가에 퇴비를 무상으로 나눠주는데 일부 농가들이 너무 많은 양을 받아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비료관리법상 퇴비 등 비료 사용자는 제품을 보관할 때 악취와 토양오염, 지하수 오염, 수질오염 등 환경오염 행위를 유발해서는 안 된다. 관계기관 역시 이를 근거로 비료의 보관방법에 문제가 있을 경우 필요한 조처를 할 수 있다. 청원구청 관계자는 “환경오염 문제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농사용으로 쓰겠다는 퇴비를 강제로 처분할 근거가 없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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