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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주년 부마항쟁 기념식 "전두환 참석·강력수단" 기록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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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최태범 ,김성휘 기자] [the300]5.18과 6.10의 불씨 ‘부마민주항쟁’ 文, 창원서 기념식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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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6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교에서 열린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 기념사를 하고 있다. 유신 독재 체제에 저항해 부산과 마산(현 창원시) 일대에서 시작한 민주화 운동인 ‘부마민주항쟁’은 올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2019.10.16. dahora83@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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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유신 정권을 무너뜨린 결정적 계기가 된 ‘부마민주항쟁’의 40주년 기념식이 16일 오전 경남 창원시 경남대학교에서 열렸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후 처음 열린 정부 주관 기념식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도 직접 참석해 40주년의 의미를 되새겼다.

부마항쟁은 박정희 유신체제에 항거하기 위해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당시 정권은 각종 시국사건에 대해 강압적으로 반정부 인사들을 체포·연금·구금했고 야당과 국민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1979년 5월30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김영삼 총재가 선출되는 파란이 항쟁의 시발점이었다. 신민당이 강경 대여투쟁 노선을 전개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10월4일 김영삼 총재의 의원직 제명안을 변칙적 방법으로 국회에서 통과시켰고 가택연금했다.

부산대학교 학생 5000여명은 10월16일 “유신정권 물러가라, 정치탄압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내에서 반정부 시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시위는 부산 시내 중심까지 확대됐고, 이튿날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시위 규모가 커졌다.

이후 시위는 마산과 창원으로도 확산됐다. 경찰력만으로 진압이 어렵다고 판단한 박정희 정권은 18일 0시를 기해 부산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투입해 1000여명을 연행했다. 20일에는 마산과 창원에 위수령을 발동해 500여명을 붙잡았다.

부마항쟁의 수습 방안을 놓고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26일 격렬한 언쟁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탄을 날리며 유신체제는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부마항쟁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한 1960년 4.19혁명 이후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을 통해 국민주권과 민주헌정 질서의 회복을 추구하며 본격적 민중항쟁의 지평을 연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부마항쟁의 정신은 5.18 광주민주화 운동과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부마항쟁은 그러나 그동안 민주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기도 했다. 유신체제가 무너진 후 전두환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관련 자료를 숨기거나 없앴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한국 현대사 4대 민주항쟁 중 하나로서 재평가받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에서 "지난 9월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오늘 처음으로 정부주관 기념식"이라며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국가기념일로 기리게 돼 국민들께서도, 시민들께서도 더욱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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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 일지/그래픽=이승현 디자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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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 때 사법고시생 文, 대통령에…항쟁일은 국가기념일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경남 창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1979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부마항쟁 진압을 지휘한 정황이 담긴 자료를 봤다. 이어 부마항쟁 기념식에서 국가폭력의 책임소재를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경남대 운동장서 열린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하기 전 대학본관에서 특별전시를 관람했다. 항쟁 당시 제작, 배포된 선언문 3종과 사진 자료 등이다. 부산MBC에서 발굴한 군 수사 자료도 있었다.

1981년 발간된 이 자료에는 1979년 10월18일 낮 12시20분경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부산에 와 부마민주항쟁 진압작전 회의에 참석한 기록이 나와 있다. 또 ‘초기 진압작전이 가장 중요‘하며 ‘군이 개입한 이상 데모자에게 강력한 수단을 사용해 데모 확산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이 보인다.

이명곤 부마민주항쟁 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실제 이 회의 직후인 오후 1시30분께 공수여단과 해병대 등이 부산에서 무력 진압에 나섰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 자료가 나왔다는 사실과 문 대통령이 해당 전시를 관람했다는 내용을 서면 브리핑에서 밝혔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정부는 부마민주항쟁의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보상에 더욱 힘을 쏟을 것"이라며 "국가폭력 가해자들의 책임 소재도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책임규명에 대해서는 "이제 와서 문책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부마항쟁이 일어난 때 경희대 법대 제적생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10·26 박정희 대통령 사망과 1980년 '서울의 봄' 정국이 이어지며 문 대통령은 복학생이 됐다. 학생운동에도 '복귀'했고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문 대통령은 부마항쟁 3년후 1982년부터 변호사로 고향인 부산에서 활동했다. 부마항쟁 참여자,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왔다. 이날 기념사에선 "저 자신도 부마민주항쟁 기념사업회에서 활동했고, 이곳 경남대 교정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기념식엔 송기인 신부, 배우 조진웅씨 등이 눈길을 끌었다. 송 신부는 문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통한다. 이날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조씨는 '거대한 불꽃 부마 민주항쟁' 시를 낭송했다. 언론인으로 부마항쟁에 참여했던 고(故) 임수생 시인의 시다.

항쟁 참여자 옥정애씨는 맨 앞줄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옆에 앉았다. 옥씨는 딸 이용빈씨가 무대에서 엄마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글을 읽자 눈물을 터뜨렸다. 김 여사는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위로하다 자신도 눈물을 흘렸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등 정당 대표들이 참석해 문 대통령과 인사를 나눴다.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주요 5부요인이 참석했다. 정부·지방자치단체에선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김경수 경남도지사, 오거돈 부산광역시장, 허성무 창원시장 등이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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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 관련 군 수사자료. 창원 경남대에 전시./사진=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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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범 ,김성휘 기자 sunny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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