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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기자의 시각] 핵탄두보다 강한 축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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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윤동빈 스포츠부 기자


29년 전 사상 처음으로 평양에서 남북한 축구대표팀 친선경기가 열린 다음 날, 국내 주요 일간지를 보면 통일이 한발 앞으로 성큼 다가온 것 같았다. 손을 맞잡고 환호하는 남북한 주장의 사진과 함께 '환희' '감격' 등 긍정적인 단어들로 도배됐다. 능라도 5·1경기장에 가득 찬 15만 명의 관중과 양 팀 선수들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불렀다는 내용을 접한 당시 독자들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29년 만에 두 번째 대결이 열린 다음 날인 16일 자 신문 축구 기사는 '무관중에 황당한 문자 중계' '희한한 남북 축구' 등 싸늘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젊은 층이 주도하는 온라인 여론은 더 심각했다. 북한의 이해 못 할 협상 태도로 생중계가 무산돼 '문자 중계'로 소식을 접한 팬들의 아우성이 빗발쳤다. '미사일도 못 바꾼 북한에 대한 인식을 축구 문자 중계가 바꿨다' '이런 나라랑 올림픽·월드컵 공동 개최 추진하는 게 제정신이냐?' '같은 민족인 게 부끄럽다'….

국내 상황이었다면 '차라리 봉화나 전서구를 써라' 같은 조롱 섞인 비판이 호응을 얻었을 것이다. 이번엔 그보다 북한에 대한 이질감이 커졌다는 댓글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그동안 북한이 아무리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해도 '안보는 나와 거리가 먼 얘기'라고 치부하던 사람들이 이번 축구 사태를 접하고는 북한의 '제멋대로' 모습에 경악했다.

지난 2003년에도 한국이 북한 주민들의 생경한 모습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당시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응원단으로 한국을 찾았던 북한 여성들이 김정일 위원장 사진이 인쇄된 거리 현수막이 비바람과 먼지에 노출돼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장군님 사진을 이런 곳에 둘 수 있느냐"며 눈물로 항의했다. 북한 응원단이 처음 한국을 찾은 2002 부산아시안게임 때 북한식 율동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면서 호의적 감정을 키웠던 국민은 불과 1년 후 쉽게 좁힐 수 없는 남북한의 간극을 느꼈다.

햇볕정책은 김대중 정부 때 경제·문화·체육 교류를 통해 남북한 긴장 관계를 완화하고, 궁극적으로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자는 유화정책이다. 당시 경제·문화·체육계 전반에서 일어났던 '사상 첫' 교류에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이런 교류가 연속성을 잃고 '일회성 이벤트' 성격을 띠자 감동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대신 북한의 무력 도발과 안하무인 태도로 상대적으로 반감은 커졌다.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북한과 2023년 여자월드컵, 2032년 올림픽 공동 개최를 공론화하고 있다. 하지만 함께 손을 잡아야 할 상대는 2002 한·일 월드컵 도중 제2연평해전을 일으키고,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일으킨 북한이다. 그들이 아직 이에 대해 사과 한마디조차 없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윤동빈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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