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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기마·무용·수렵… 1500년전 행렬도 새긴 신라토기 첫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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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쪽샘지구 발굴 조사서 찾아… 높이 약 40㎝의 항아리로 추정

행렬 끝 '말 탄 사람'이 주인공, 망자를 위해 희생 제물 사냥

춤추는 제의는 고구려 벽화 영향… 신라 장수 札甲·말 갑옷도 공개

4~6세기 신라 왕족과 귀족 고분이 밀집한 경북 경주 쪽샘지구에서 1500년 전 행렬도를 새긴 토기가 나왔다. 2009년 출토된 신라 장수의 찰갑(札甲·비늘식 갑옷)과 말 갑옷이 10년 만에 보존 처리를 끝내고 위용을 드러냈다.

기마·무용·수렵이 그려진 행렬도 발견

말 타고 행진하는 사람, 그 뒤를 따르며 춤추는 무용수, 활을 들고 멧돼지와 사슴을 사냥하는 사람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진행 중인 경주 쪽샘 44호 발굴 조사에서 신라 행렬도가 그려진 토기 항아리 조각들과 말 문양이 새겨진 토기 조각, 제사와 관련된 유물 등 110여 점을 확인했다며 16일 현장을 공개했다. 연구소는 "기마·무용·수렵을 복합적으로 묘사한 신라 토기가 발견된 건 처음"이라고 밝혔다.

행렬도가 새겨진 토기 조각은 호석(護石·무덤 둘레에 쌓는 돌) 북쪽에서 부서진 채 발견됐다. 전체 높이 약 40㎝의 목이 긴 항아리로 추정된다. 문양은 크게 4단으로 이뤄졌는데 1단과 2단, 4단에는 기하학적 무늬를 반복해 새겼고, 3단에 각종 인물과 동물이 등장하는 행렬도를 그렸다.

조선일보

1500년 전 신라 토기에 새겨진 행렬도 세부 문양 그림. 기마 행렬 뒤에 춤추는 무용수, 사냥하는 사람들로 이어지고 제일 끝에 말을 탄 주인공과 개 두 마리가 보인다. 짙은 색이 실제 출토된 토기 조각 그림이고, 흐린 부분은 추정해서 넣은 것이다. 오른쪽 위는 행렬도가 새겨진 토기 조각들, 아래 사진은 10년 만에 보존 처리가 끝난 말 갑옷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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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의 선두에는 말 탄 인물과 말 두 마리가 있다. 말은 갈기를 의도적으로 묶어 뿔처럼 묘사한 것이 눈에 띈다. 정대홍 연구사는 "갈기를 뿔처럼 묘사해 상상의 동물처럼 신령스럽게 표현했다"고 했다. 기마 행렬 뒤쪽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과 활 들고 사냥하는 사람들, 사슴과 멧돼지가 이어진다. 행렬의 제일 뒤쪽에서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추정되며, 이 인물 앞뒤로 개 두 마리가 호위하듯 따르고 있다. 이종훈 소장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개는 영혼을 인도하고 무덤을 지키는 수묘(守墓)의 동물"이라며 "무용, 수렵 등 그림 구성이 무용총 같은 고구려 고분벽화와 비슷해 당시 신라와 고구려의 대외 관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했다.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자인 전호태 울산대 교수는 "5세기에 신라는 정치적으로 고구려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 행렬도 토기는 고구려적인 요소와 신라 고유문화가 혼재돼 나타나는 양상이라 흥미롭다"며 "하늘로 떠나는 무덤 주인공을 가로막는 희생 제물을 사냥하고, 주인공의 위세를 과시하면서 망자를 위해 춤을 추는 제의를 표현한 것은 고구려 벽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무덤 주변에 토기를 묻는 행위는 고구려·백제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신라 고유문화"라는 견해를 밝혔다.

10년 만에 복원된 신라 장수의 마갑

지난 2009년 경주 쪽샘지구 C10호 무덤에서 출토된 마갑(馬甲·말 갑옷)과 이 말을 탄 장군이 입었던 찰갑을 보존 처리한 실물도 이날 공개했다. 길이 290㎝, 너비 90㎝, 총 무게 36㎏에 달하는 마갑 조각이 눈앞에 활짝 펼쳐졌다. 목·가슴 가리개 348개, 몸통 가리개 256개, 엉덩이 가리개 132개 등 총 736개 철편으로 구성됐다.

출토 당시 마갑은 목·가슴 부분, 몸통 부분, 엉덩이 부분으로 정연하게 깔려 있었다. 마갑의 몸통 부분에 장수의 찰갑을 펼쳐 깔았다. 당시 전문가들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삼국시대 중장기병(重裝騎兵·중무장을 하고 말을 타고 싸우는 무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완벽한 실물 자료가 처음으로 출토됐다"며 환호했다.

연구소는 긴 세월 흙더미에 파묻혀 폭신한 담요 같았던 갑옷 조각을 그대로 떠서 옮긴 뒤 보존 처리를 진행했다. 이종훈 소장은 "마갑 뒤쪽에서 가죽끈 흔적도 나왔다"며 "철편 조각들을 어떻게 엮어야 말이 움직일 때 부담을 느끼지 않는지 착장 실험도 진행했다"고 했다. 연구소는 내년 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존 처리를 끝낸 마갑과 함께 신라 시대 마갑을 착용한 말 모습을 재현해 전시할 예정이다.





[경주=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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