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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백석은 시인? 19세에 중년의 일탈 그린 소설로 등단한 천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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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진 교수, '정본 백석 소설·수필' 펴내

"그의 문학은 모두 연결돼 있어… 詩 이해하려면 산문 꼭 읽어야"

조선일보

고형진 고려대 교수는 “백석이 토속적 시인이면서도 모더니스트였다는 점은 그의 실험적 산문을 읽으면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진한 기자


"백석(1912~1996)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남긴 산문을 꼭 읽어야 한다. 백석은 먼저 산문을 쓴 뒤 그것을 여러 차례 시로 재구성하곤 했다."

고형진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정본(定本) 백석 소설·수필'(문학동네)을 냈다. 백석의 소설 4편과 수필 12편을 골라 싣고 해설을 붙였다. 원본을 보여주면서 당시 편집과 교열 오류도 지적했다. 고 교수는 백석의 시와 산문의 연결 고리를 강조하면서 백석이 1936년에 발표한 수필 '가재미·나귀'를 꼽았다.

백석은 '그저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가재미만이 흰밥과 빨간 고치장과 함께 가난하고 쓸쓸한 내 상에 한 끼도 빠지지 않고 오른다'고 썼다. 그는 이듬해 발표한 시 '선우사'에선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아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며 시적(詩的) 변형을 보여준다. 백석은 동일한 수필에서 '나귀'를 가장 좋아하는 동물로 암시했다. '나는 나귀를 타고 일없이 왔다 갔다 하고 싶다. 또 예서 한 오 리 되는 학교까지 나귀를 타고 다니고 싶다. 나귀 한 마리 사기로 했다.' 1938년 발표한 시 '나와 나탸샤와 흰 당나귀'에서는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탸샤는 나를 사랑하고 /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고 했다. 고 교수는 "당나귀는 힘이 세면서도 온순하고, 고통을 인내하면서 욕심이 없는 동물"이라며 "백석은 그런 나귀를 자신과 동일시한 듯하다"고 풀이했다.

고형진 교수는 '정본 백석시집'과 '백석 시어 분류사전', 연구서 '백석 시를 읽는다는 것'을 잇달아 낸 백석 전문가다. 백석은 1930년 신춘문예에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돼 등단했고,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며 시인이 됐다. 틈틈이 단편소설과 수필을 발표했다. 고 교수는 "백석은 소설가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고, 1934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쓴 첫 작품이 수필 '해빈수첩(海濱手帖)'이었다"면서 "그는 시와 마찬가지로 소설과 수필에서 허투루 쓴 작품이 단 한 편도 없이 우리 산문문학의 폭과 수준을 드높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백석이 19세에 쓴 '그 모와 아들'을 재조명하면서 "중년 남녀의 성적 욕망과 일탈을 어린 나이에 능숙하게 써냈다"며 "백석은 조숙한 천재였다"고 했다. 시인 백석 못지않게 '소설가 백석'도 높이 평가했다. "백석은 기존 소설 공식을 깨고 시골 마을의 입소문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거나, 사건이 일어난 순간만 제시한 데서 끝내기도 하는 등 새로운 소설 형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모더니즘 작가였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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