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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일사일언] 망국의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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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주희 EBS PD·'생존의 조건' 저자


한비자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던 만큼 권모술수를 경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가르치려고 했다. 그 핵심으로 제시한 것이 이른바 '7술'인데 그중에 '참관(參觀)'이라는 것이 있다. 요약하자면 '한 신하에게 의존하지 말고 반드시 여러 신하의 의견을 두루 들어보라'는 것이다. 너무 뻔한 교훈 아니냐고? 설마 천하의 한비자가 겨우 그 정도 통찰에 그쳤겠는가?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주변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봤는데 모든 사람이 찬성하는 정책이 있다고 치자. 그것은 과연 좋은 정책일까? 놀랍게도 한비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원래 남과 상의한다는 것은 그 일이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의심스럽다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는 자가 반(半)이며,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가 나머지 절반이어야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그 일을 옳다고만 한다면, 왕은 상의할 사람의 절반을 잃은 셈이다. 본래 군주를 위협하는 간신은 반대 의견을 먼저 제거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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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는 항상 '사람들은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대립할 수밖에 없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인간이 '욕망하는 존재'인 한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군주는 어떤 경우에도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 이해관계가 갈려야 정상인 신하들이 이미 하나의 의견으로 통일돼 있다는 건 일이 잘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무언가 잘못돼간다는 징조다. 군주가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고립돼 있는 위험한 상황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참관'에 담긴 한비자의 진정한 통찰은 이렇게 해석해야만 한다. "반드시 서로 다른 의견의 존재를 확인하고 참고하라. 이것이 없다면 나라에 망조가 든 것이다."

요즘도 간혹 다른 의견의 존재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비자가 이 말을 들었다면 오히려 "너희 나라가 망하는 길로 들어섰다"고 혀를 찰 것이다.




[이주희 EBS PD·'생존의 조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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