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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칼럼]'세계에서 가장 이상한 경기' 치러진 북한, 어떻게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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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수 칼럼]

CBS노컷뉴스 구성수 논설위원

노컷뉴스

지난 15일 한국과 북한의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H조 3차전 경기 킥오프 30분전까지 김일성경기장의 관중석이 비어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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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vs 한국 : 세계에서 가장 이상한 더비에 오신 걸 환영한다"
(North v South Korea : Welcome to the world's strangest football derby)

15일 오후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남북 축구 경기(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H조 3차전)에 대해 영국 BBC가 올린 기사제목이다.

BBC는 "남북 대결은 흔치 않은 일"이지만 "생중계도 없고 스탠드에 한국의 팬과 외국 미디어도 전혀 없었다"고 보도했다.

선수단을 제외하면 누구도 볼 수 없는 남북 경기였다.

TV 중계는 무산됐고 한국 응원단과 취재진의 방북도 허용되지 않았다. 선수를 포함해 50여명의 선수단만 허용됐다.

외신의 취재도 금지됐다.

외신 입장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이상한 경기'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실제 경기는 BBC의 보도보다 더했다.

4만석의 스탠드가 텅 빈 채 관중없이 치러졌다.

BBC의 보도는 경기 전 상황이었다.

BBC기자가 무중계에 무관중으로 치러진 실제 경기를 봤다면 뭐라고 제목을 뽑았을까.

무중계에 자발적인 무관중 월드컵 경기는 비록 예선전이라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월드컵 역사에서 일찍이 없었다.

그 경기가 다른 나라도 아닌 북한에서 열린 것은 유감이다.

이날 현장에서 축구경기를 직접 관전한 잔니 인판티노 FIFA(국제축구연맹) 회장도 "(남북한의) 역사적인 경기여서 가득 찬 관중석을 볼 것이라 기대했는데, 경기장에 팬들이 한명도 없어 실망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우리 대표팀 경기가 이렇게 치러진 것에 대해 축구팬들의 실망이 컸다.

이날 생중계가 무산되면서 국내 축구팬들은 사상 초유의 희한한 다단계 문자중계를 통해 궁금한 경기진행상황을 알 수 있었다.

평양 현지의 AFC(아시아축구연맹) 감독관이 휴대전화 메신저를 이용해 경고나 교체 등 경기상황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AFC 본부에 알려주면 AFC 본부는 이를 대한축구협회에 통보했다.

협회는 이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팬들에게 전달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깜깜이 중계에 뿔난 팬들의 아우성이 빗발쳤다.

"경기 결과를 알리려면 차라리 비둘기나 봉화를 써야 했던 것 아니냐"는 풍자도 나왔다.

평양에서 치러진 '가장 이상한 경기'는 정부로서도 당혹스러운 일이다.

지난해 2월 평창 겨울올림픽 당시에는 남북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구성했고 북한이 파견한 응원단은 남한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이것은 한반도에 평화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았다.

불과 1년 8개월만에 남북 스포츠교류는 평창 올림픽 이전으로 돌아갔다.

청와대와 통일부는 "굉장히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로서는 그동안 북한에 대해 한다고 했다.

국제무대에서 북한 입장을 대변한다고 '북한 대변인'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관계개선에 진력해 왔다.

그에 대한 응답은 한미연합훈련 등을 문제 삼으면서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온갖 비난과 함께 통미봉남(通美封南)으로 돌아선 북한의 어깃장이었다.

이번 무관중의 희한한 경기는 그 연장선상에서 치러졌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결기는 확실히 보여줬는지는 모르지만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큰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 예선전 중계를 거부하고 상대팀 응원단의 방북과 외신의 경기취재를 불허한 것은 정상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 김정은과 당의 한마디 지시에 4만석의 스탠드를 완전히 비운 채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른 것은 만천하에 자신들이 유례없는 독재, 전체주의 국가라는 것을 공표하는 것과 같다.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미사일로도 못 느낀 북한의 현실을 축구로 알게 됐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반도 평화라는 대의를 위해 이런 비정상 국가를 설득하면서 나아가야 하는 정부로서도 고민이 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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