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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왔다. 나가서 싸우자" 부마항쟁 그날의 생생한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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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주년 맞아 항쟁 주역·참가자 30명 증언집 발간

"700명이 5천명으로…쫓기는 상황 시민이 숨겨줘"

"고향이 산청, 빨치산이네" 경찰 용공 조작도 증언

연합뉴스

부산대 대운동장 도는 부마민주항쟁 시위대
(서울=연합뉴스) 박정희 유신체제에 맞서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마산회원구) 시민들이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이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사진은 1979년 10월 16일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대학교 대운동장을 돌고 있는 시위대 모습.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촬영·(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드디어 때가 왔다. 나가서 싸웁시다.' 이런 정도 이야기였는데 그 말을 듣고 학생들이 나를 따라가 줬다는 거예요. 이거는 진짜 기적입니다. 기적"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때 부산대 경제학과 2학년인 정광민 씨는 당시 부산대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부산대학교가 올해 10·16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을 맞아 발간한 '10·16 부마민주항쟁 부산대학교 증언집'에는 1979년 당시 항쟁이 처음 시작됐던 부산대 시위 참가자와 항쟁을 이끈 주역 30명의 증언이 있다.

당시 무역학과 1학년인 김성진 씨는 10월 16일 상황과 관련해 "오전 10시 30분 학생 700명 정도가 도서관 주위를 둘러싸고 나서 구호를 외치며 학교 정문으로 내려갔지만, 전경이 시위대를 막으려고 최루탄을 쏘았다"며 "흩어진 학생들이 다시 구호를 외치며 모여 스크럼을 짜고 운동장 쪽으로 이동했는데 4천~5천명으로 늘어났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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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교정에 진주한 계엄군
(서울=연합뉴스) 박정희 유신체제에 맞서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마산회원구) 시민들이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이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사진은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대학교 교정에 진주한 계엄군 모습.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촬영·(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김 씨는 "이 중 500명은 학교 밖으로 나가 온천장으로 이동해 '독재 타도' '유신철폐' 구호를 외쳤다"며 "박수를 치는 시민, '잘한다, 힘내라'라고 손뼉 치는 시민도 많았다"고 진술했다.

기계공학과 77학번 노재열 씨는 "사직동으로 갔는데 쫓고 쫓기는 상황이었다. 3~4명이 같이 뛰다가 민가로 뛰어 들어갔는데 아주머니가 바로 숨겨줬다"며 "경찰이 지나가고 나서 우리는 나오고 하는 식으로 해서 남포동으로 갔고 누군가 와서 구호를 외치면 대오가 형성되고 경찰이 들이닥치면 또 흩어지고 했다"고 말했다.

75학번인 신재식 씨는 "유신철폐, 독재 타도를 하면 여기저기서 모여 대열이 형성됐고 언제 왔는지 경찰들이 바로 앞을 막았다"며 "구석구석에 학생이 있는데 시민이 합세했고 해가 질 무렵에는 동아대 학생까지 합류해 게릴라식 시위가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10월 17일 밤에도 시위했는데 초저녁에 위수령이, 밤중에 계엄령으로 바뀌면서 군인도 곳곳에 배치됐다"고 기억했다.

78학번으로 시위에 참여했다가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된 이주흥 씨는 군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이 씨는 "10월 17일 저녁에 계엄이 발효가 됐는지 몰랐는데 (경찰이) '고향 어디라 그랬어 태어나기는 산청이라 그랬지', '지리산 가봤어', '빨치산이네. 너거 아부지 빨치산 아니야'고 하면서 용공 간첩으로 조사를 새로 시작했다"고 진술했다.

부산대는 16일 오후 교내 상남국제회관 효원홀에서 전호환 총장,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 문정수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 신재식·정광민 등 당시 항쟁 주역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c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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