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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마지막…가볍게 소비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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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고, 찍지 않는 것도 ‘미디어의 역할’

유명인의 죽음에 ‘단독’ ‘속보’ 경쟁, 넘지 말아야 할 선 넘고 비윤리적 보도…

제재 수단 마땅치 않아, 매체 스스로 품격 지켜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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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후 5시4분. 가수 겸 배우 설리(25·본명 최진리)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경찰의 시신 운구는 유가족이 도착한 늦은 밤부터 시작됐지만, 취재진은 해가 지기 전부터 자택 앞에 모여 있었다. 연예매체 더팩트는 고인 시신이 운구차량에 실리는 모습을 모자이크만 한 뒤 그대로 내보냈다. 해당 기사는 15일 오후에야 삭제됐다.

설리 사망 소식을 전하는 비윤리적 보도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설리 사망 소식이 전해진 14일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지켜달라는 e메일을 기자들에게 보냈지만, 권고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연예매체 스포티비는 고인의 빈소 위치를 ‘단독’ 보도했다. 앞서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유가족이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며 빈소와 발인 날짜 등을 비공개한다고 밝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 이름과 함께 “저널리즘은 물론 윤리적으로도 해선 안될 일”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생전 일거수일투족이 ‘가십거리’로 소비된 여성 연예인은 죽음조차 하나의 이벤트처럼 ‘생중계’됐다. 연예매체 일간스포츠는 사망 소식이 처음 전해진 지 20분 후 익명의 ‘설리 최측근’의 말을 인용해 “가족들이 설리 자택으로 가고 있다”는 단독 인터뷰를 내보냈다. 사망 소식을 속보로 전하는 과정에서 고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기사들도 그대로 송출됐다. 국민일보와 서울신문 등은 설리의 신체 노출 논란 당시 사진을 사용했다. 국민일보는 ‘노브라를 주창한’이라는 표현으로 고인을 소개했다.

한국기자협회와 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함께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자살임을 단정하는 표현을 금지한다. 문제는 이러한 권고기준이 말 그대로 ‘권고’에 그친다는 것이다. 한국기자협회는 “비판을 받은 회원사에 해당 기사 수정·삭제를 권고했고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안다”면서도 “편집권 침해 소지가 있기 때문에 권고기준을 어겼다고 제재를 줄 수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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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을 통한 ‘간접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포털은 규제에 부정적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제휴 매체와 관련한 제재 심사를 ‘뉴스제휴평가위원회’라는 외부 기관에 위임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제휴평가위원회 결정과 별도로 포털이 검색어 제한 같은 직접적인 불이익을 줄 수는 없다”며 “해당 언론사가 고쳐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언론계 내부 자정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설리 사망 사건을 취재한 한 스포츠지 연예부 기자는 “현장 기자들끼리 시신 사진을 찍지 않는다거나 빈소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면서도 “‘클릭수’가 급한 특정 언론사가 이를 깨버려도 제재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자율기구인 한국신문윤리위원회에서 경고를 줄 순 있지만 실질적인 불이익을 받지는 않는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4일 “각 언론사는 그의 죽음을 장사에 이용하는 것을 당장 그만두라”는 논평을 냈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신문윤리위 경고를 받은 기자에게 언론사 차원에서 내부 징계를 하는 등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지키지 않았을 때의 대응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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