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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서양고전학자 김동훈의 물질인문학](8)고대인이 상상한 로봇은 자기조절력 갖춘 ‘탈로스’…오늘날의 AI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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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경향신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청동인간 탈로스의 죽음을 묘사한 그리스 도자기 속 그림(왼쪽 사진). 눈에서 눈물 같은 방울이 떨어진다. 탈로스는 무쇠 기계인간에 대한 고대인들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탈로스의 약점인 뒤꿈치의 나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연결된 관(오른쪽)의 밸브 역할을 하는 것으로 현대 로봇의 전기회로나 동력전달 관의 한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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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함대공 방어시스템과 특수 전투복의 이름 ‘탈로스’

미국은 1947년 경보시스템과 유도미사일을 갖춘 함대공 방어시스템을 ‘탈로스’(Talos RIM-8 missile)라 이름 붙였다. 유도미사일 ‘탈로스’는 대형 항공모함에 장착돼 발사 태세를 갖추고 레이더빔을 가동한 채 바다를 순찰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2013년 개발된 미국 특수부대의 액체형 방탄전투복 이름 또한 ‘탈로스’(Tactical Assault Light Operator Suit, TALOS)다. 이 전투복은 충격이 외부에서 가해지면 전류가 흘러 자기장이 형성되고 1000분의 1초 만에 내부 액체가 고체로 변한다고 한다.

■ 미노스 문명의 청동 로봇 ‘탈로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청동인간 탈로스

몸체는 금속성 갑옷, 얼굴엔 눈물방울…현대 지능형 로봇 같다


탈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청동인간이다. 이 이야기는 대장장이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다는 무쇠 기계인간에 대한 고대인들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아폴로도로스 신화집>에 따르면 탈로스는 크레타 섬 해안가를 감시하고 방어한다. 고전 시대 작가들 가운데 혹자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는데 제우스가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에게 선물하였다고도 하고, 혹자는 미궁을 만든 다이달로스가 제작하여 미노스에게 바쳤다고도 한다. 청동 재질의 이 기계는 외부 선박이 침입할 때 바위를 던져 공격하고, 수상한 선박이 상륙한다면 자신의 청동 본체를 달구어 침입자들을 끌어안고 타죽게 만든다.

사실 탈로스에겐 치명적인 급소가 하나 있다. 신이 만들어 준 무쇠팔과 무쇠다리로 천하무적일 것 같지만, 뒤꿈치가 너무 약하다. 뒤꿈치에는 나사 하나가 고정돼 있는데, 그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연결된 관의 밸브 역할을 한다.

신화에 따르면 아르고호 사람들이 크레타 섬을 지날 때 탈로스와 대격전을 벌이게 된다. 아르고호의 메데이아가 청동인간을 잠들게 한 사이 이아손을 비롯한 아르고호 사람들이 그의 뒤꿈치에서 나사를 뽑아 버려 청동인간을 물리쳤다.

탈로스에 대한 이야기는 기원전 5세기에 조각글 형태로만 남아 있지만 아마도 많은 얘기들이 떠돌았던 것 같다. 동전과 도기에 탈로스의 상들이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청동기 시대에 크레타 섬은 미노스 문명의 중심지였다. 미노스 왕은 청동기 시대 전설적인 인물로 이미 트로이전쟁 전에 크레타를 통치하였고 해군력을 강화한 인물로 알려졌다. 현대 고고학자들은 미노스 왕의 이름을 따서 기원전 3000~1100년의 문명을 미노스 문명이라 부른다.

미노스 문명의 3대 도시 중 하나였던 파이스토스(Phaistos)에서 출토된 은화(기원전 350~280년)에 탈로스 상이 있다. 탈로스가 날개까지 달고 위협적으로 앞으로 향하거나 옆으로 향해 돌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 주는 형상이다. 이 날개는 아마도 크레타 섬을 하루에 세 번 돌면서 순찰하는 데 큰 도움을 줬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시속 240㎞의 속도로 가야 순회할 수 있는 거리라고 한다.

또한 도기에 나타난 그의 모습을 보면 갑옷인 듯 보이는 선들을 통해 청동의 접합 부분과 몸통의 해부학적 구조를 알 수 있다. 몸체는 금속성 갑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한 고전학자는 탈로스의 오른쪽 눈에 보이는 자국이 떨어지는 ‘눈물방울’이라 분석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묘사들을 종합해 볼 때 탈로스는 현대의 로봇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나로 연결된 관은 동력과 관계된 전기회로라든지 ‘합성 전자유체’ 가스관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상당히 빠른 속도의 이동장치에 에너지를 사용하고, 주변을 감시하도록 프로그램되었을 뿐만 아니라, 접근하는 물체의 정보를 분석하여 공격하는 ‘지능형’ 로봇에 속한다.

■ 자동기계에서 로봇으로

제조업 현장뿐만 아니라 청소, 물품 정리, 수술 등 서비스 영역에서도 로봇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사용 목적에 따라 크게 산업용과 서비스용으로 나뉜다. 산업용 로봇은 단순 반복 작업, 전자부품의 정밀가공, 우주공간이나 해저, 화재 및 오염된 환경의 위험 작업 등 인간 자체 능력만으로는 역부족인 일들을 대신해 준다. 서비스용 로봇은 생활에 대한 다양한 지원과 교육 정보, 공공복지를 제공한다. 의료, 물류, 접객, 안내에 쓰이는 상업 서비스도 있고, 청소, 잔디 깎기, 대화 등의 개인용 서비스도 있다.

로봇이라는 말은 ‘일한다’는 뜻의 체코어 ‘로보타’서 유래했지만

고대 사람들은 대체기계를 넘어 자기조절력을 갖춘 로봇을 상상했다

‘러다이즘’은 기계 자체보다 기술로 인한 이윤의 편향된 배분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최초 ‘로봇’이란 말은 체코어의 ‘일한다’라는 ‘로보타’에서 유래했는데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1890~1938)가 1920년에 발표한 희곡 <로섬의 유니버셜 로봇>에 언급되면서부터 퍼졌다. 이 작품에 따르면 로봇은 근대의 ‘자동인형’에서 인간을 대신한 ‘대체기계’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작품에서 로봇들은 반란을 일으키지만 나중에는 개량이 필요해 어쩔 수 없이 인간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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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 차페크의 1920년 희곡 <로섬의 유니버셜 로봇>을 원작으로 만든 연극에 출연했던 로봇.


초창기 산업용에서 보듯이 로봇은 인간을 대신해 일하는 단순 작업 기계였다. 하지만 요즘 로봇은 동일한 일의 단순 반복에서 외부 환경을 인식하고 스스로 분석하여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지능형으로 발전하고 있다. 더구나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두 개의 팔을 하나의 몸통에 연결시키고 이족보행을 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최근엔 상대방의 감정을 인식하여 사람과 친근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지능형 로봇의 최종 목적은 ‘자기조절력(autopoiesis)’이다. 생물학 용어였던 ‘자기조절력’이란 외부 환경에 맞춰 자기를 지속, 유지하는 생명력을 말한다. 자기조절력이 없는 생명은 곧 죽음이듯 기계가 스스로 자기를 조절할 수 있어야 살아 있는 로봇이 된다. 결국 로봇공학에서 하는 일은 기계가 자기조절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 청동기 시대 자기조절 로봇

청동기 시대 미노스 문명은 다리와 성문, 항구와 같은 경계 지역에 거대한 청동상을 세웠다. 이 동상이 재앙을 물리친다는 미신을 갖고 있었는데, 이렇게 청동으로 동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제련 기술이 필요했다. 희랍 전설에 따르면, 산불이 난 후 뜨거운 액체 금속 물질이 식으면서 바위의 구멍 난 형태로 굳어진 것을 보고는 도가니에 금속을 녹이는 기술을 발견했다.

철기 시대에 살았던 고대 작가와 예술가들은 이전 청동기 문화에 대한 초자연적 상상력을 갖게 된다. 그 상상력을 보자.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귀게스의 반지’에 청동말이 등장한다. 이 ‘기계말’은 창문들을 갖고 있으며 내부에 일반인보다 더 큰 시체가 있었다. 그 시체의 손가락에 있었던 게 ‘투명반지’였다. 이 에피소드는 내부에서 인간이 조종하는 거대 로봇을 연상케 한다. 그에 비해 탈로스는 상당히 진보된 지능형 로봇이다. 이 청동인간은 침입자를 인식하고 추적한다. 탈로스는 바위를 찾아 들어 올리고 멀리까지 조준하여 던진다. 또한 손이 닿는 근거리 적들에게는 본체를 가열해 육탄으로 제지하고 섬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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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인간 탈로스를 묘사한 고대 그리스 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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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작가들은 탈로스를 인간의 ‘대체기계’ 정도가 아니라 ‘자기조절력’을 갖춘 지능형 로봇으로 상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탈로스는 몸통 전체에 연결된 관 속에 있는 액체를 통해 작동하는 내부 메커니즘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데이아는 로봇의 내부 시스템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로봇의 물리적 결함을 악용할 수 있었다. 더구나 메데이아가 탈로스에게 ‘완전한 불사신’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자 이 로봇은 그 말에 과도하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결국 탈로스는 자신을 속이는 인간에게 몸통을 맡겼다. 이것은 연료를 계속 보충해야 하는 이 로봇의 부담감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 준다. 연료 공급을 받을 수밖에 없던 무쇠로봇은 영원한 동력원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 때문에 로봇은 파괴되지만 그만큼 자기조절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보인 셈이다. 고대인들은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대체기계’를 넘어 ‘자기조절력’을 갖춘 로봇을 상상했음에 틀림없다. 20세기 이후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로봇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 눈에 보이는 로봇의 모습은 고대인들이 품었던 상상력을 현실화한 정도에 불과하다. 아마도 헤르메스가 신은 ‘날개신발’과 같은 드론도 곧 만들어질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거리와 건물에 설치된 터치스크린으로 손쉽게 정보를 얻고 정산할 수 있다. 어느 날 이런 무인단말기들은 친근한 인간형 로봇으로 전환될 것이다.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과연 사회는 그 로봇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할까?

■ ‘러다이즘’의 겨냥은 로봇이 아니라 ‘분배’ 문제다

오랜 상상이 현실화하고 있지만 로봇의 출현이 꼭 탐탁한 것만은 아니다. 시대마다 새롭게 등장한 기계에 대한 거부운동이 있었듯,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면서 로봇에 대한 반감도 분명 있을 것이다.

러시아 SF 드라마 <그녀, 안드로이드>에는 로봇을 파괴하는 극단주의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교수형의 밤’이라는 특별집회를 하면서 로봇들을 파괴한다. 내부 전원 장치를 망가뜨리고 칩을 다 제거한 후 교수형을 시켜 전시한다. 로봇 파괴자들이 외친 구호는 “로봇에게 죽음을, 인간에게 삶을!”이었다. 로봇에 의해 빼앗긴 인간의 삶을 요구한 것이다.

사실 산업혁명기에 일어났던 기계파괴운동 ‘러다이즘(Luddism)’은 기계 자체보다는 그 기술로 인한 이윤의 편향된 배분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당시 운동가들을 위해 바이런(1788~1824)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조국의 이 온갖 애국지사들 무엇 하러 태어났나?

사냥하고, 정치하고, 물가나 인상하려고?

(조지 고든 바이런, ‘청동의 시대(The Age of Bronze)’)


영국에서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공장의 기계 확대가 소수 특권층의 이윤만 증대시키자 노동자들의 기계 파괴 행위는 본격화되었다. 사실 공장에 기계가 많아지면 자동화 시스템 속에서 노동자들은 여유 있는 생활을 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대량생산에 따른 소득은 일부 계층에게만 돌아갔다.

굶주린 정비공은 녹슨 기계 깨부수고

절망한 정비공은 닥칠 운명 대항한다.

침몰하는 그대 조국 상원에서

값진 조언 해 줄 사람 우리에게 보여다오.

(조지 고든 바이런, ‘미네르바의 저주(The Curse of Minerva)’)


바이런은 상원의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귀족사회를 비판한다. 공장의 기계로 인해 이윤이 극대화되던 19세기에 상원에 있던 자들, 소위 지도자들은 기계의 혜택을 독식하며 대를 이어 특권층으로만 살아갔다. 반면 대다수 노동자들은 가난 속에서 어떠한 평등의 기회도 허락받지 못했다.

기계파괴운동은 이런 시스템을 만든 의회를 거부한 것이었지 기계를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기계문명의 더 근원적인 문제점은 기계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소득을 나누는 경제구조에 있다. 로봇의 발달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그로 인한 시간의 여유와 이윤을 어떻게 배분해야 할 것인가다. “침몰하는 그대 조국, 상원에서 값진 조언 해 줄 사람 보여다오.”

■ 필자 김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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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서양고전학협동과정에서 희랍과 로마 문학 및 로마 수사학을 공부했고, 현재 고려대 대학원에서 플라톤과 키케로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 철학아카데미, 푸른역사아카데미 등에서 라틴어 원전 강독 및 그리스어·라틴어를 강의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인문 분야 화제의 방송이었던 ‘별별명언’을 진행했으며, <별별명언: 서양 고전을 관통하는 21개 핵심 사유> <브랜드 인문학> 등을 출간했다.


김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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