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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사설] 한 여성 연예인의 죽음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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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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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14일 이후 에스엔에스 등엔 추모와 함께 그동안 그에게 쏟아졌던 악플과 언론 보도 행태, 나아가 여성 아이돌을 소비하는 방식과 여성 혐오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그를 죽음으로 이끈 직접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25살의 여성 연예인이 이런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사회의 책임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는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등에 시달렸다고 한다. 2009년 여성 아이돌 그룹 에프엑스의 멤버로 데뷔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2014년에도 악성 댓글과 루머로 고통을 호소하며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한 바 있다. 이듬해 그룹에서 탈퇴해 연기 활동을 해온 설리는 최근 ‘악플’을 소재로 다루는 종편의 예능프로그램 사회자로 나섰는데, 첫 방송에서 “한때 골목만 찾아다니고 그랬다. 카메라가 다 달린 것 같고”라고 털어놨다. 늘 당당했던 모습 뒤에 어떤 고통이 있는지, 사람들이 너무나 무지하고 무감했던 건 아닌지 가슴이 아프다.

그가 악플에 시달려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익명으로 쓰는 사람은 ‘댓글 한줄’이라 여길지 몰라도, 악플은 당하는 이들에겐 한줄한줄이 인격을 파괴하는 듯한 폭력이다. 경찰청 집계에서 악플로 볼 수 있는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범죄는 2018년 기준 1만5926건으로 전년보다 약 20% 늘어났다. 신고치가 이 정도니 실상은 훨씬 더할 것이다. 대중의 인기가 생명인 연예인들에겐 맞대응도 쉽잖은 일이다. 연예계에 비슷한 비극이 적잖았음에도 되풀이되는 악플에 특단의 대책을 논의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도, 스타에 대한 소비자의 권리도 아닌 ‘범죄’일 뿐이다.

일부 악플 다는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여성 아이돌을 대하는 방식도 돌아봤으면 한다. 남성이 하면 소신 발언이고, 여성 아이돌이 하면 ‘관심종자’라는 식의 비난이 쏟아지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젊은 여성 연예인을 ‘인형’이나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는 대중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설리는 특별한 존재였다. 속옷을 입지 않은 듯한 티셔츠 사진으로 공격을 받았던 그는 “개인의 자유다. 내게 그것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액세서리”라고 당당히 밝혔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했던 여성, 설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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