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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지옥의 고통도 짧다" 정경심은 왜 박노해 시로 조국 사퇴 심경 전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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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가 지난 14일 페이스북에 시인 박노해(사진 왼쪽)의 시 '동그란 길로 가다'를 인용하며 “감사했습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시를 인용하기에 앞서 “그대에게,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라고 적었다. 최근 들어 고강도 검찰 조사 및 관련 의혹에 휘말린 조 장관, 그리고 자녀와 본인 스스로에게 보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조 전 장관과 박 시인은 군부독재 시절과 민주화 운동 국면에서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노맹)을 중심으로 민중 운동을 함께 한 바 있는 돈독한 친구 관계로 알려졌다.

조 전 장관은 당일 오후 2시 별도의 기자회견 없이 사퇴의 변을 통해 사의를 표했고 문 대통령은 6시 조 장관 면직안을 재가하면서 법무장관 임명 35일만에 장관에서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정 교수는 같은 날 오전 9시30분쯤부터 다섯 번째 검찰 소환조사를 받다가 조 장관 사퇴 소식이 전해진 이후 조사 중단을 요청했다. 이후 조서 열람 없이 오후 3시15분쯤 귀가했다.

검찰은 정 교수를 상대로 펀드 운용사 코링크PE 운용에 개입하고 차명 투자했는지 집중 조사했으며 "추후 다시 출석하도록 통보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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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 교수는 박 시인의 시를 인용해 국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을까. 사실 조 전 장관과 박 시인의 인연은 30여년 터울의 오랜 시간을 갖고 있다. 박 시인은 노태우 전 대통령 집권 시기였던 1989년 11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출범을 주도했던 인물 중 한 명이다. 당시 울산대 법대에서 대학강사로 재직중이던 조 전 장관은 1991년 사노맹의 산하 조직이었던 '남한사회주의과학원(사과원)'에 가입해 사노맹 활동을 도운 인연이 있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국가안전기획부는 사노맹의 목표를 ‘사회주의 폭력혁명’으로 봤다. 1991년 3월 박 시인을 비롯해 11명을 체포했으며, 이듬해 1992년 주요 간부 39명을 체포·구속했다. 이를 포함해 기소된 인원은 300여명에 달했는데, 조 전 장관 또한 1993년 6월 구속 및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6개월간 수감되었다가 석방된 바 있다. 박 시인은 사노맹 결성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1998년 8월 광복적 특별사면으로 7년 6개월의 수감 끝에 석방되었다. 이듬해 사노맹 관련자들이 모두 특별사면 및 복권 조치를 받았다.

박 시인은 1984년 '노동의 새벽'을 통해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 민중의 솔직한 목소리를 용감하게 냈고 정부 측 금서조치에도 100만 부 가까이 판매고를 올리는 등 국내를 대표 ‘민중 시인’으로 자리메김을 단단하게 했다. 옥중에서 1993년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과 1997년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2000년 '생명 평화 나눔'을 기치로 한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하고 평화활동과 작품활동을 지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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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달 25일 박 시인이 비영리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가 시 메일링 서비스 '숨고르'에서 발표 된 '살아서 돌아온 자'라는 시는 박 시인이 조 전 장관을 위해 쓴 것이란 주장이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확산된 바 있는데, 시는 “진실은 사과나무와 같아 진실이 무르익는 시간이 있다”로 시작되어 “눈보라와 불볕과 폭풍우를 다 뚫고 나온 강인한 진실만이 향기로운 사과알로 붉게 빛나니/ 그러니 다 맞아라 눈을 뜨고 견뎌내라 고독하게 강인해라”는 시어로 구성 됐다.

해당 시의 내용이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을 위해 법무장관직을 고집했던 조 전 장관 처지와 맞물렸단 분석이 이어졌다.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도 같은 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당 시를 공유한 후, “그 시를 읽고 조국 법무부 장관을 떠올렸던 건 사실”이라고 했다.

장혜원 온라인 뉴스 기자 houdjang@segye.com 사진=연합뉴스, 정경심, 박노해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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