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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슈 자율형 사립고와 교육계

'자사고·외고 폐지'에 진보 "우리 요구 수용" 보수 "하향 평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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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의 교육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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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입 공정성 제고' 발언에서 비롯된 대입 정시 확대 여부,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한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교육계가 또 다른 논쟁에 휘말리고 있다. 교육부가 청와대와 여당에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외고를 일괄 폐지하는 안을 제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육계가 찬반 논쟁에 빠져들 조짐이다.



교육부 안, 진보교육감·전교조 요구 담겨



당·정·청이 검토 중인 '시행령 개정을 통한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일괄 전환' 계획에 15일 진보 성향 교육단체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날 전교조 관계자는 "그동안 전교조를 포함한 교육계에서 줄곧 주장해왔던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이날 성명을 통해 "자사고는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 기회 균등의 가치를 훼손하고 외고·국제고도 설립 목적과 달리 명문대 진학, 특권 대물림의 통로가 됐다"며 "정부는 교육부가 당·정·청에 제출한 계획안을 최종안으로 확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천교육교사모임도 "학종 축소 등 정부의 교육 정책이 입시 부작용을 확장한다는 우려가 많이 나왔는데, 교육부의 이번 보고 안은 고교교육 정상화에 부합하는 조처"라고 밝혔다.

정부 출범 이후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이 주관하는 5년 단위의 평가를 통해 자사고·외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하려 했다. 이른바 '자사고·외고의 단계적 전환' 정책이다. 시·도교육청의 학교별 평가를 통해 기준 점수에 못 미친 학교는 자사고·외고 지위를 취소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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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자사고 지정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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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경우 전국 42개 자사고 중 24곳이 평가를 받았고, 탈락한 10곳은 지정 취소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해당 학교·재학생·동문·학부모·지역사회의 반발이 거셌다. 아울러 탈락했던 자사고들이 낸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확정판결을 받을 때까지 최대 3년까지 자사고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 불만을 품은 진보교육감와 진보 교육단체에선 '단계적 전환' 대신 '일괄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진보교육감의 대표격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달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자사고에 주어진 학교·교육과정 운영상 특례는 한시적으로 부여할 수 있다고 법에 규정된 만큼 교육부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지정·운영근거를 삭제해 자사고라는 학교 유형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교학점제, 내신성취평가제 정착이 관건



이처럼 교육부가 당·정·청에 제출한 계획안은 진보교육감과 전교조 등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폐지 시기는 2025년으로 잡았다. 2025년은 고교학점제와 내신성취평가제가 전면 시행되는 첫해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생처럼 고등학생이 본인의 진로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듣는 제도다. 내신성취평가제는 기존 상대평가 방식의 학교 내신을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한다.

고교학점제와 내신성취평가제 역시 '고교서열화 해소'와 함께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진보교육계의 요구 사항이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일반고의 역량이 강화되고 '수월성 교육'이 가능해져 자사고·외고를 원했던 학생·학부모의 수요를 흡수할 것이라고 교육부와 진보교육 단체들은 기대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구본창 정책국장은 "아울러 올해 교육청 평가를 통과한 자사고·외고에 5년간의 운영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 학교·학생·학부모가 고교 체제 변화에 대비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2025년 일괄 전환'은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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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평가 대상 자사고·외고·국제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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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말 바꾸기""하향 평준화 우려"



반면 보수 성향 교육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종배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 대표는 "교육부가 정책을 자주 바꾸는 것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특혜 의혹이 불거져 문 대통령이 '교육 개혁'을 지시하기 전까지, 교육부는 내년으로 예정된 외고·자사고에 대한 재지정 평가는 올해처럼 진행하고 시행령을 통한 일괄 전환 여부는 국가교육위원회 등에서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자사고·외고의 폐지가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 대신 '하향 평준화'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종배 대표는 "정부는 외고‧자사고를 폐지하기 전에 수월성 교육에 대한 대안부터 제시해야 한다. 일반고가 황폐해진 근본 원인을 분석해야 하는데 이전 정부의 잘못으로만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품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교육부가 외고·자사고의 폐지 시기로 설정한 2025년은 다음 대선(2022년 3월) 이후다. 사실상 현 정부의 임기 만료 후 정권의 향배에 따라 실현 여부가 결정된다.

한국교총 조성철 대변인은 "정권과 교육감에 입맛에 따라 시행령을 고쳐 고교를 바꾸고 없애는 일이 반복돼선 곤란하다. 고교 체제와 같은 국가 교육의 큰 틀은 국회가 법률로 결정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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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자사고학부모연합회의 주최로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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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개편과 맞물리면 강남 쏠림 가능성



자사고·외고를 폐지한다면 우수 학생이 서울 강남구, 목동 같은 '교육특구'로 몰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거주지 주변에 진학할 만한 학교가 없다고 판단한 학부모들이 우수한 학군·교육여건과 사교육 인접성 등을 고려해 이주할 것이란 예상이다.

이종배 대표는 "외고, 자사고가 사라진다고 해도 교육열 높은 부모는 영재학교나 과학고에 보내거나 강남으로 이사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고 정상화는커녕 강남 집값만 올리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입시 전문가들은 대입제도의 향방에 따라 강남 쏠림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대입 수능의 정시 비율이 오르고 학교 내신의 반영 비율이 줄면 지금과 달리 강남 일반고가 대입에서 불리할 만한 요소가 줄어든다"며 "교육부 대입 개편안에 따라 현 고1부터 대입 정시 비율이 높아질 예정이라 자사고·외고 폐지와 맞물려 강남 쏠림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천인성·전민희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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