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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K] 류석춘 “전태일은 착취 당하지 않았다”…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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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위안부 망언을 했던 연세대 류석춘 교수가 한 월간지에 70년대 분신을 했던 노동운동가 전태일에 대해서 착취당하지 않았다고 해서 또 논란입니다.

팩트체크팀 신선민 기자와 함께 따져보겠습니다.

[기자]

신 기자, 먼저 류 교수가 월간지에 어떤 주장을 했는지 내용부터 볼까요?

[기자]

월간조선 10월호에 류석춘 교수가 기고한 글 중 일부입니다.

"전태일은 6년 동안 빠른 승진을 거치며 월급이 15배로 뛰었다. 여성 노동자들을 의미하죠. '여공'들의 월급도 6년 만에 5배 가까이 뛰었다"면서 착취는 없었는데도 노동운동의 구호로 쓰였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앵커]

노동운동가 전태일에 대해서 사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이런 주장을 했는데 월급을 따지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주장을 했으니까, 이 주장이 맞는 것인지요?

[기자]

재단사 전태일의 월급은 1970년에 23,000원이었습니다

당시 화폐가치를 한국은행의 소비자물가지수를 활용해서 현재 가치로 환산해보면 월급은 48만 원 수준입니다.

<전태일 평전>을 보면 당시 하루 노동시간은 14시간, 시급을 따져보니 현재 가치로 1,237원입니다.

올해 최저임금이 8,350원이잖아요. 7분의 1 수준밖에 안 되는 거죠.

[앵커]

월급이 많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 같고, 그러면 방금 월급이 15배나 올랐다는 주장은 맞습니까?

[기자]

전태일이 봉제 공장에 당시 표현으로 '시다', 즉 수습공으로 들어갔을 때 처음 월급이 1,500원이었는데 2만3천 원까지 월급이 15배나 뛰었다는 건데요,

수습공은 일을 배우는 과정이잖아요? 실제 월급 지급도 당시에 잘 안됐었는데, 비교 기준으로 삼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받았다던 월급도 지금으로 환산해보니까 6만 원 수준입니다.

[앵커]

다른 여공들의 월급이 아까 5배 가까이 올랐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이건 어떻게 된 겁니까?

[기자]

류석춘 교수는 전태일 평전을 토대로 수습공에서 재봉사까지 6년이 걸리고, 월급은 1,500원부터 7,000원으로 4.7배 올랐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1970년 당시 국가가 정한 최저생계비를 찾아보니까 2인 기준 17,900원이에요.

노동자 1명이 가족 생계까지 짊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7,000원으론 턱없이 부족하죠.

그리고 수습공 월급을 일당으로 계산을 하면 5~60원인데, 당시 서울 시내 100원이었던 자장면 한 그릇도 못 사 먹던 상황이었습니다.

[앵커]

70년대 희생되었던 노동운동가를 굳이 이렇게 흠집 내려고 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사실 이게 돈 때문이 아니지 않습니까?

앞서 말한 대로 근로기준법에 대해 얘기를 한 건데...

[기자]

그렇죠, 근로 조건과 환경이 더욱 중요한 거죠.

평화시장 노동자 대부분이 하루 13~16시간을 일했습니다.

한 달에 딱 두 번 쉬었고요.

당시 전태일의 동료로부터 당시 근로 환경이 어땠는지 들어봤습니다.

[임현재/당시 전태일 열사 동료 : "폐결핵 환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제시간에 밥을 못 먹기 때문에 위장병이라든지 안질 이런 여러 가지 환자들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류 교수 주장은 이런 부분을 모두 생략하면서 착취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앵커]

잘 들었습니다.

팩트체크팀 신선민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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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민 기자 (freshm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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