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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로또 1등' 형에게 살해된 동생 아내·딸 트라우마 치료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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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완산경찰서, 유가족 심리치료 지원키로

동생, 생전 화상통화하며 주위에 딸 자랑

상인들 "아내와 초등1학년 딸 충격 컸을 터"

중앙일보

지난 11일 오후 4시 9분쯤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전통시장 골목에서 한 여성(빨간 원)이 가게 앞에 쓰러진 남편 B씨(49)의 상처 부위를 막으며 지혈하고 있다. B씨는 형 A씨(58)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B씨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4600만원을 빌린 A씨는 이날 B씨와 담보대출 이자 문제로 말다툼하다 홧김에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담보로 잡은 집은 약 10년 전 로또 1등에 당첨된 A씨가 당첨금 8억원 중 1억4000만원을 B씨에게 줘 구매한 집으로 알려졌다. [인근 가게 CC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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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B씨가 초등학생 딸과 자주 웃으면서 화상통화를 했다. 주위 사람들한테도 딸 자랑을 많이 할 정도로 끔찍이 아꼈다. 그런 딸이 아버지가 큰아버지에게 살해되는 장면을 봤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냐."

전북 전주의 한 전통시장에서 친형 A씨(58)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살해된 B씨(49)와 친분이 있던 한 상인은 초등학교 1학년인 B씨 둘째 딸부터 걱정했다. B씨 아내가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딸을 다른 곳에 데려가긴 했지만, 멀리서나마 아버지가 쓰러진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사건 현장에는 없었지만, 중학생인 B씨 큰딸도 패닉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하루아침에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B씨 유가족의 심리 치료 지원에 나섰다. 가해자가 과거 로또 1등에 당첨돼 수억원의 당첨금을 형제들에게 나눠준 품 넓던 장남이어서 충격은 더욱 컸다고 한다.

전주 완산경찰서는 14일 "피해자(B씨) 아내와 자녀에 대한 트라우마 검사 실시 후 우아동 스마일센터(트라우마 통합 지원 기관)와 연계해 무상으로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김영근 완산경찰서 형사과장은 "(완산서 소속) 범죄 피해자 보호 전담 경찰관이 유가족을 접촉했는데 고인의 장례 절차 때문에 정신적 여유가 없다"며 "장례가 끝나면 유가족이 원하는 시기에 심리 검사와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13일 오후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전통시장 골목. '○○집'이라고 적힌 가게 셔터가 내려져 있다. 이틀 전 이 가게를 운영하는 B씨(49)가 말다툼 끝에 형 A씨(58)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경찰 수사 결과 형의 수년 전 로또 1등 당첨이 비극의 씨앗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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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전날 동생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A씨를 구속했다. 전주지법 임현준 영장전담 판사는 "혐의가 소명됐고, 도망 염려가 있다"며 A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는 지난 11일 오후 4시 9분쯤 전주시 완산구 한 전통시장에서 동생 B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동생 B씨는 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A씨는 주변 상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됐다. A씨는 별다른 저항 없이 "내가 동생을 죽였다. 잡아 가라"며 순순히 경찰이 내민 수갑을 찼다고 한다. 그는 경찰에서 "술을 마시고 전화로 다투다가 동생이 서운한 말을 해서 홧김에 범행했다"고 말했다.

B씨 아내는 가게 안에서 아주버니(A씨)와 남편이 서로 밀치며 말다툼을 벌이자 급히 딸의 손을 잡고 다른 곳에 피해 있었다고 한다. 그 사이 사달이 났고, B씨 아내가 달려와 쓰러진 남편의 상처 부위를 막고 지혈을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A씨 형제는 돈 문제로 다툼이 잦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약 10년 전 로또 1등에 당첨됐다. 세금을 떼고 8억원가량을 받았다.

A씨는 당첨금 가운데 3억여원을 누나와 B씨 등 남동생 2명에게 각각 1억원 이상씩 나눠줬다고 한다. B씨는 형이 준 1억4000만원 정도를 보태 집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형제간 우애가 깊었다고 한다.

A씨는 나머지 당첨금으로 정읍에 식당을 열었다. 초기에는 장사가 잘 됐지만, 적자에 허덕이자 동생 B씨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4600만원을 빌렸다고 한다. 담보로 잡은 집은 과거 A씨가 본인 로또 당첨금 일부를 B씨에게 줘 구매한 집이었다.

하지만 A씨 식당은 폐업 위기에 몰렸고, 급기야 최근 몇 달간은 매달 대출이자 25만원도 못 낼 정도로 경제 사정이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에서 빚 독촉이 계속되자 형제끼리 다투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사건 당일 오전에도 담보대출 이자 연체 문제로 두 사람은 전화로 심한 언쟁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정읍에 있던 A씨는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전주 동생 가게를 찾았다.

이미 만취 상태였던 A씨는 재차 돈 문제로 B씨와 승강이한 끝에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확인됐다. 목과 등을 흉기에 찔린 B씨는 인근 병원에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주변 상인들은 "(숨진 B씨는) 평소 성실하고, 이웃과도 친하게 잘 지냈는데 이런 일이 생겨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한 상인은 "형제가 가게에서 언성 높이고 싸운 건 처음이 아니다. (사건 당시) 형이 흉기를 들고 '죽인다'고 했지만, 형제간이라 겁만 주는 줄 알았더니 설마 죽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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