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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박준형, 강성범, 안상태 ‘개콘 레전드’의 귀환…저희들 왔어요 코미디 깨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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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레전드 코너들 장식했던 세 사람

‘코미디 다시 살려보자’ 의기투합

돌아와보니 최고참, 책임감, 부담감…

아이디어 쥐어짜고 ‘몸빵’도 선뜻

코미디 하는 순간 살아있음을 느껴

최고의 시청자들 유튜브로 떠나고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

공중파 공개방송 제약은 산넘어 산

그래도 살 길은 ‘정통’에 있다 믿어

배삼룡 개다리춤 보며 누구나 코미디언 되듯

‘개콘’ 따라하는 ‘개그세상’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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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우~를 주세요!” “빠~져 봅시다!” “~했구우~요!”

얼굴을 보자마자 이 말들이 자동완성어처럼 떠오른다. 이로 무를 가는 ‘박준형’, 어벙벙한 모습으로 홈쇼핑을 진행하는 ‘안어벙’, 지하철 노선표를 줄줄 외는 ‘수다맨’이 9일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에서 마주한 박준형, 안상태, 강성범 어깨 위에 환영처럼 앉아 있다. 세 사람은 “그 이상의 꼭지가 없었나 보다”라고 농을 치지만, 그만큼 폭발력이 강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걸 뛰어넘는 게 더 어려운 <개그콘서트>의 레전드 꼭지.’

박준형이 12년, 강성범이 15년, 안상태가 2년(한두달 출연 제외하면 ‘사실상’ 12년) 만인 지난 8월 <개그콘서트>에 돌아온 것도 황금기를 이끈 레전드였기 때문이다. 강성범과 안상태는 ‘불편한 삼대’, 박준형은 ‘생활사투리’ ‘바바바 브라더스’에서 후배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코미디언은 코미디를 떠나 살 수 없는데 다시 코미디를 할 수 있게 되니 즐거워요.”(강성범) “수요일마다 녹화장에 오니 기분이 새롭죠.”(안상태) “코미디언은 자신이 짠 개그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데 그간 기회가 없었잖아요. 코미디 갈증이 있었죠. 다시 그런 기회를 얻게 되니 행복합니다.”(박준형)

하지만 마냥 즐길 수만은 없다. 레전드의 컴백에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따른다. 제작진이 이들에게 손을 내민 것은 과거에 견줘 침체된 <개그콘서트>를 되살려달라는 뜻이다. 박준형은 ‘마빡이’ ‘사랑의 가족’ ‘생활사투리’ 등 수많은 인기 꼭지를 만들어낸 프로그램 성공의 일등공신으로, 2003년에는 <개그콘서트> 출연자로는 처음으로 ‘연예대상 대상’까지 받았다. 강성범의 ‘수다맨’ ‘연변총각’ 등은 캐릭터 코미디의 정점이었고, 안어벙의 ‘깜빡 홈쇼핑’ ‘뜬금뉴스’ 등은 상황극의 표본이었다. 기대가 큰 만큼 마음처럼 안 될 경우 예전만 못하다는 시청자의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이들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 사람이 “제작진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데는 자신들의 체면보다 <개그콘서트>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공중파(지상파) 코미디가 힘든 상황에서 돌아오게 되면 ‘니들이 와도 안되네’라는 반응이 나올 거란 걸 잘 알아요. 하지만 코미디 위기에 코미디언이 주저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개콘>은 대한민국 코미디의 마지막 보루잖아요. 이게 외면받으면 공개 코미디가 끝난다고 생각해요. 제가 도움이 된다면 뭐라도 해야죠.”(강성범) “제 딸에게 아빠가 공개 코미디를 했다는 걸 자랑스럽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잘되도록 돕고 싶어요.”(안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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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돌아온 선배들은 몸을 사리지 않는다. 후배들이 짜놓은 꼭지에 폼나는 역으로 잠깐 등장하는 게 아니라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몸으로 때우는 ‘몸빵’도 서슴지 않는다. 강성범과 안상태는 ‘불편한 삼대’에서 할아버지 분장을 하고 후배인 정승환을 받들고, 박준형은 ‘바바바 브라더스’에서 우스꽝스러운 역을 자처한다. “제작진이 저를 불렀을 때는 원하는 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후배들 잘 돌보고 잘 알려주고 같이 회의하고 무조건 밥 사주고.(웃음) 마른수건이라도 좀더 짜내자는 마음으로 서로 독려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선배라서 불편해할까봐 솔선수범하려고 합니다.”(박준형)

과거 막내에서 최고참 선배가 된 이들은 내 개그만이 아니라 프로그램 전체를 들여다보고 균형을 맞추려고도 한다. 박준형이 ‘바바바 브라더스’와 ‘생활사투리’를 들고나온 것도 콩트 위주의 아쉬움을 탈피해보려는 시도다. “밖에서 <개콘>을 봤을 때는 뒤에 배경이 되는 판을 하나 세우고 회사, 술집, 병원, 집앞 등 상황을 주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공감 형식의 콩트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어요. 재미있지만 보는 사람들이 조금 지칠 수 있지 않을까. 반면 관객에게 직접 어필하는 개그가 거의 없는 것 같아서 ‘생활사투리’처럼 관객에게 직접 말하는 개그를 넣자고 제작진에게 제안했어요. 그런 유의 개그를 시도하려고 노력합니다.”(박준형) 전체를 훑고 필요한 부분을 채우려는 노력은 빛을 내고 있다. ‘바바바 브라더스’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아무 의미 없이 외치는 “바바바바~”는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어로 퍼지고 있다.

박준형은 “<개콘>의 시스템은 신인들의 과감한 등용으로 새로운 스타들이 계속 나와서 기존의 개그맨들이 혹시 부진해도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었는데 그 시스템이 조금 막혀 있는 것 같다”며 “가능성 있는 신인을 기용해서 기다려주고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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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강산이 바뀐 세월만큼 시대도 변했다. 아무리 레전드라도 이들 역시 ‘옛날사람’이다. 유튜브가 등장하는 등 뉴미디어 시대가 된 것에 시행착오도 겪는다. 개그의 흐름도 바뀌었다. 박준형은 “웃기고 안 웃기고의 기준은 바뀌지 않았는데 개그의 흐름이 변해가는 느낌은 있다. 예를 들어 신인 개그맨들에게 개인기를 보여달라면 옛날에는 단순 성대모사나 모창을 했는데 요즘은 ‘조선시대 탐관오리를 잡던 사또가 내시가 된 목소리’처럼 상황을 설정하더라”고 말했다. 젠더감수성, 인권의식이 높아지는 등 성숙해진 사회도 이들을 공부하게 만든다. 강성범은 “오랜만에 돌아왔더니 하면 안 될 것이 너무 많더라. ‘이것도 못 해?’라는 말을 요즘 가장 많이 한다”며 웃었다. 장난감 총이라도 3초 이상 겨누면 안 되고, “강아지 한 마리 사줄까”라는 대사도 강아지를 물건 취급하는 것처럼 보여 안 되는 등 과거에는 생각지 못한 제약들이다. 안상태는 “‘불편한 삼대’도 노인 형제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용이었는데 ‘노인학대’로 비칠 우려가 있다고 해서 바꿨다”고 말했다. 촌철살인의 이야기로 답답한 속을 뚫어줬던 강성범은 정치 풍자에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여전해 준비했던 정치코미디도 보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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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코미디 현장에서 외모 평가 등 불편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건강한 변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케이블에 견줘 공중파라는 점에서 더 많은 규제를 받는 것은 조금 아쉽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 모든 것이 핑계가 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욕도 하고 소리도 지르는 등 별 걸 다 할 수 있는 뉴미디어와 공중파는 경쟁 자체가 되지 않아요. 그런 상황에서는 우리는 우리만의 콘셉트를 지켜야 합니다.”(강성범) “손주가 할머니 앞에서 <개콘>을 따라하면 손주가 코미디언이 되고, 배삼룡 선생님의 개다리 춤을 모두가 따라하며 웃듯이, 누구나 그걸 따라하면 코미디언으로 만드는 게 <개콘>의 역할 같아요. 더 새롭고 더 참신한 흐름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우리의 역할을 유지하면서 더 좋은 코미디를 선보여야죠.”(안상태) “공개 코미디는 관객이 바로 앞에서 평가하는 게 재미예요. 그래서 20년을 버틴 것이고요. 가장 중요한 건 포맷이나 플랫폼이 아니라 웃음의 강도라고 생각해요. 재미있으면 30년 40년도 갈 수 있는 포맷이 공개 코미디입니다.”(박준형)

시청자들 역시 유튜브 등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콘텐츠가 등장하는 시대에 개그 프로그램이 더는 재미있게 다가오지 않는다며 변화를 촉구했지만, 막상 바뀐 <개그콘서트>를 어색해했다. <개그콘서트>는 최근 개편에서 성인을 위한 꼭지 등을 내보내는 등의 실험을 했는데, 온 가족이 보기 불편하다는 평가에 결국 폐지했다.

보편타당하면서도 재미있는 웃음. 이것을 위해 이들이 돌아온 게 아닐까. “어쩌면 지금의 <개콘>은 관찰예능이나 1인 방송이 아니라 과거의 화려했던 <개콘>과 싸워야 할지도 모릅니다.”(박준형) 코미디를 못 하는 동안 연극을 하며 단편영화를 일곱 편이나 만들었고(안상태), 일부러 <개그콘서트>를 보지 않는(박준형) 등 애증의 프로그램과 밀당도 했지만, 이들은 역시 코미디를 하는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말한다. 후배들이 이 기분을 평생 느낄 수 있도록 “전성기를 되찾아보겠다”는 이들은 다시 또 얼굴에 분칠을 하고 우스꽝스럽게 변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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