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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체코의 성당이 진짜 인간의 해골과 뼈로 장식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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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버스를 타고 체코의 쿠트나호라로 갔다.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예전에는 달랐다. 13세기 이 지역에서 은광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14~15세기에는 체코에서 수도 프라하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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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를 배경으로 한 서구의 예술작품에는 인간의 해골과 뼈가 종종 등장한다. 언제나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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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트나호라에는 아주 희한하고 이색적인 성당이 있다. 다름 아닌 ‘세들레츠 해골 성당’이다. 인간의 실제 해골과 뼈로 성당 안에 온갖 장식을 한 걸로 유명하다. 버스에서 내려 15분쯤 걸었다. 현지 가이드는 “성당이 원래는 1142년 보헤미아 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시토회 수도원 건물의 일부였다”고 설명했다. 수도원 건물 앞을 지나는데 담배회사의 로고가 붙어 있었다. 1812년 수도원이 담배공장이 됐고, 지금은 필립모리스가 인수해 체코 본사와 담배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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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쿠트나호라에 있는 담배 박물관. 옛날에는 시토회에서 사용했던 수도원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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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으로 접어들자 해골성당이 나타났다. 성당의 뾰족 지붕 위에도 해골 문양이 걸려 있었다. 궁금했다. ‘어떻게 해골이 성당의 상징이 되었을까. 400~500년 전 사람들은 해골로 가득한 성당 안에서 어떤 기도를 올렸을까.’

해골성당 앞에는 자그마한 묘지공원이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스도교와 공동묘지의 역사적 연결 고리는 무척 깊다. 2000년 전 이스라엘에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못박힌 골고타 언덕도 그랬다. ‘골고타’는 ‘해골터’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성 외곽에 있던 공동묘지였다. 예수의 부활 스토리 역시 예루살렘 공동묘지의 동굴무덤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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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성당 뜰에 마련돼 있는 묘지공원. 중세 때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는 수만 명이 이곳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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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수제자인 사도 베드로도 그랬다. 로마 제국에서 종교적 핍박을 받던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로마의 지하 묘지인 카타콤베에서 기도하며 비밀 집회를 가졌다. 십자가형을 당한 베드로의 무덤 역시 카타콤베에 묻혔다. 베드로의 무덤 바로 위에 지은 게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다. 그러니 그리스도교인에게 무덤과 성당, 그리고 십자가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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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성당의 입구. 안으로 들어서면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성당 지붕의 첨탑 위에도 해골 문양이 있다.



해골 성당 앞에 섰다. 흰 천으로 덮인 입구로 들어갔다. 먼저 눈에 띈 것은 성당 벽의 장식이었다. 60개가 넘는 해골과 그만큼의 뼈들로 만든 조형물이 있었다. 천장에는 더 놀라운 물건이 달려 있었다. 인간의 해골과 뼈로만 만든 거대한 샹들리에였다. 주렁주렁 달려있는 인골 사이에는 주먹보다 큰 해골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성당 정면에는 예수의 십자가상이 있었다. 십자가 아래의 벽면은 해골과 뼈들로 가득했다. 십자가상 앞에 섰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건 온통 ‘죽음’이었다. 천장을 봐도, 좌우를 봐도 죽음의 이미지만 가득했다. 성당 안에서 밀려오는 메시지는 간결하고 명료했다. ‘삶은 순간이고, 인간은 결국 죽는다.’ 거기에 절망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거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해골 성당은 그걸 잊지 말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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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성당 천장에 걸려 있는 샹들리에. 실제 인간의 해골과 뼈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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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성당 안에는 빛이 들어오는 창이 하나 있고, 그 앞에 예수의 십자가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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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에 있는 해골과 뼈들은 적어도 4만구, 많게는 7만구로 추정한다. 해골 성당에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1278년경 체코에 살던 한 수도원장이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가 골고타 언덕의 흙을 한 줌 가져왔다. 성스러운 땅의 흙은 당시 그리스도교인에게 축성과 치유의 상징이었다. 당시만 해도 체코에서 중동의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는 여정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유럽 사람들은 죽어서 세들레츠 묘지에 묻히기를 바랬다.

그런데 14세기에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했다. 약 4년 만에 유럽 인구 3명 중 1명이 사망했다. 이곳 세들레츠 묘지에도 무려 3만 명의 시신이 매장됐다. 죽어가던 병자들은 삶의 종착지로 세들레츠 묘지를 희망했다. 체코의 후스파에 의해 일어난 구교와 신교의 종교전쟁 때는 1만여 명이 이곳에 묻혔다. 15세기 말 유골이 성당 납골당으로 옮겨지기 시작했고, 16세기에는 장식을 하듯이 유골을 배열했다고 한다. 지금 모습의 성당과 납골당은 바로크 시대인 18세기에 건축가 얀 블라제이 산티니에 의해 재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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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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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거기에는 매 순간 소멸하는 육신의 순간성을 절감하라는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역설적으로 ‘메멘토 모리’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화두로 돌아온다.

쿠트나호라(체코)=글ㆍ사진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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