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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MT리포트]'쿠르드의 비극' 승자는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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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유희석 기자, 김주동 기자, 정한결 기자, 임소연 기자, 정인지 기자, 이상배 특파원] [편집자주] 쿠르드족이 터키의 공격에 존립까지 위태로와졌다. 중동 전략에 필요할때는 쿠르드에 손을 내밀었던 미국은 군비 절감 등을 명분으로 시리아를 떠나고 있다. 곧바로 터키는 분리독립 저지를 내걸며 현지 쿠르드족을 공격했다. 배신의 망령에 시달린 탓에 '산 밖에 친구가 없다'는 쿠르드족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또 버림받은 '중동의 집시'](종합)


미국은 쿠르드를 '배신'했나…웃는 러시아

미국의 IS 공격에 쿠르드족 협조했지만 터키와는 70여년 동맹…러시아의 세력확장 가능성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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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와 시리아 접경 지역인 터키 산리우파주 악카칼레에서 10일 터키군의 공격으로 시리아 내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서 치솟는 검은 연기가 보이고 있다. 터키 국방부는 11일 쿠르드 무장세력 공격 사흘째인 이날 첫 터키군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터키 국방부는 또 지금까지 쿠르드 무장세력 사망자는 총 277명이라고 밝혔지만 이 같은 숫자는 독립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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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시리아 주둔군 철수 선언과 이어진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으로 "미국이 IS(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 격퇴를 위해 함께 싸운 동맹 쿠르드족을 '배신'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결정을 단순한 배신행위로 치부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많다. IS가 사실상 붕괴한 상황에서 미군 주둔을 무한정 늘릴 수 없는 데다, 전통의 동맹인 터키와의 관계도 무시하기 어렵다. 다만 이번 사태로 쿠르드족이 러시아와 손을 잡으면 역내 갈등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미-터키, 72년 동맹=미국과 터키의 동맹 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사 최악의 전쟁이 끝나고 세계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으로 양분되기 시작한다. 세력을 확장하던 소련은 중동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당시 미국의 해리 트루먼 정부는 이를 견제하기 위해 터키의 반공(反共) 정부를 지원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유명한 '트루먼 독트린'이다. 이후 터키는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국의 중요한 동맹으로 남는다. 1952년에는 터키가 서방 최대 군사동맹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한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터키는 냉전 시대 소련의 유럽 진출을 막는 방파제였으며,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터키는 1950년 한국전쟁에도 참전해,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보냈다.

그러나 터키와 미국의 관계는 2003년 이라크 전쟁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당시 터키는 미군의 터키 기지 사용을 거부했다. 2016년에는 터키 정부가 터키 내 쿠르드족 무장조직 '쿠르드노동자당(PKK)'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을 구속하면서 마찰을 빚었다. 트럼프 정부는 터키 내무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을 제재 대상에 올렸으며,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터키 경제가 충격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터키가 브런슨 목사를 석방하면서 일단 갈등은 봉합됐지만, 앙금은 남았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해 러시아제 S-400 방공미사일을 수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미국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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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간) 앙카라에서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한 '러시아-터키-이란' 3자회담 중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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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승자는 러시아=미국의 시리아 북동부 주둔군 철수 선언은 사실상 쿠르드족 문제에서 터키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독립을 원하는 쿠르드족보다 터키와의 관계에 중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으로 가뜩이나 복잡한 역내 지정학적 지형도가 급격히 변하게 됐다는 점이다. 터키 내 쿠르드족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 미국에 대한 테러 가능성도 높아졌다.

가장 큰 문제는 러시아의 세력 확장이다. 쿠르드족은 이미 미국 대신 러시아를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을 나타냈다. 이미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와 손을 잡은 러시아가 쿠르드족까지 본격적으로 끌어들이면 시리아 반군은 수세에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알아사드 정부는 지난해 반군 거점 지역에 화학무기 공격을 가해 국제사회의 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미 CNN방송은 "터키군이 시리아로 진격하고 미군이 철수하면 유일한 승자는 러시아가 될 것"이라며 "이미 시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외부 세력인 러시아가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미국 강경파가 우려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희석 기자


터키는 왜 시리아 쿠르드족을 공격하나

분리독립 요구하는 국내 쿠르드족 견제…360만명의 시리아 난민 배치해 빈 자리에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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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도와 이슬람국가(IS)를 시리아에서 몰아낸 쿠르드족이 위기에 몰렸다. 지원을 약속했던 미군이 떠난 뒤 터키가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을 가하면서 10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150여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숨졌다.

1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터키는 이번 공격으로 국내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제한하고 수백만명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생긴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려는 계획이다. 쿠르드족을 몰아낸 자리에 시리아 난민을 배치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터키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약 1500만명이다. 주로 터키 남동부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터키 인구의 약 18%에 달한다. 한 세기 가까이 분리독립을 요구해 온 이들은 쿠르드노동자당(PKK)을 세워 정부군과 계속 싸워왔다.

터키는 PKK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양측 간 전투로 사망한 이만 수만여명에 달한다. 터키는 IS와 전쟁해 온 시리아민주군(SDF) 산하 인민수비대(YPG)가 PKK의 지부라고 주장하며 이 둘이 세력을 합치는 것을 경계해왔다. 특히 지난 수년 간 IS가 세력을 넓히면서 시리아 및 이라크의 공권력이 후퇴하자 이를 기회 삼아 쿠르드족도 세력을 넓혀온 상황이다.

그러나 YPG를 비호했던 미국이 마침내 철수하자 터키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터키는 지난 수년간 이(YPG) 공격을 위해 준비해왔다"면서 "터키에게 쿠르드족은 국가를 전복하려는 테러리스트지만 미국에게는 미군과 함께 싸우다 전사한 의지할 수 있는 동맹"이라고 강조했다.

터키는 YPG를 몰아낸 지역에 시리아 난민 100만~200만명을 배치해 쿠르드족과의 '완충지대'를 설립할 방침이다. 현재 터키는 약 400만명 난민이 거주하는 세계 최대의 난민 수용 국가다. 이중 시리아 출신은 360만여명에 달한다. 터키는 10만여명에 시민권을 허가했으며, 여태까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400억달러(47조원)를 쓰기도 했다. 터키가 올해 받아들인 시리아 난민만 최소 7만여명으로 추산된다.

터키 정부는 난민 포용 정책을 펼쳐왔지만,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면서 추가 수용이 어려운 시점이다. 터키의 실업률은 시리아 난민 사태 이전인 2011년 대비 6%포인트 치솟은 14%를 기록하고 있다. 2011년 달러당 1.5리라를 기록한 리라화는 현재 달러당 5.88리라로 그 가치가 폭락했다.

브루킹스 연구소 오메르 타스피나르 연구원은 "터키가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터키 정부는 난민과 실업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려하고 있다"면서 "(터키인들은) 희생양을 찾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터키인들은 IS를 두고 국민적 분노를 느끼지 않지만, 쿠르드족에는 분노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이끄는 여당은 최근 이스탄불을 비롯해 주요 도시 선거에서 야당에게 패배한 상황이다. 경제 위기에 돌아서는 민심을 잡기 위해 그 희생양으로 오랜 적이었던 쿠르드족을 활용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터키의 전략이 사실상 인종말살 정책이라며 결국은 역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미 리하이대학교의 헨리 바키 국제관계학 교수는 "에르도안은 지역의 인구구성을 바꾸려하고 있다"면서 "터키가 (시리아 지역을) 영구 점령하지 않는 이상, 쿠르드족은 결국 다시 집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한결 기자


"다음 쿠르드는 나?"…트럼프 변덕에 불안한 美동맹

"내가 쿠르드 같다" 이스라엘·자구책 찾는 사우디 … 주한미군 철수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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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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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미군 철수로 촉발된 터키-쿠르드족 분쟁을 지켜보는 미 동맹 사이 불편한 심기가 엿보인다. 동맹국 간 '쿠르드 다음은 내 차례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쿠르드 철군 조치로 미국을 향한 동맹국의 신뢰가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현지 매체 예루살렘포스트는 '아무도 믿지 마라(Rely on no one)'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시리아 미군 철수를 두고 "쿠르드족을 버스 아래로 던지는 (미국의) 행위는 이스라엘을 포함한 미국의 중동 지역 타 동맹국에 충격적인 메시지를 보낸다"며 "트럼프가 키를 잡은 미국을 믿을 수 있는지를 자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중동 핵심 우방인 이스라엘은 이번 사태로 가장 불안에 떠는 국가 중 하나다. 한국(1953년), 일본(1960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1949년) 등과 달리 이스라엘과 미국은 공식적인 방위 조약을 맺은 적이 없다. 이는 쿠르드족과 마찬가지다. 여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친(親)이스라엘 행보를 보여왔지만, 관계가 틀어진다면 이번처럼 대통령의 트윗 한마디로 미군이 철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이다.

예루살렘포스트는 이번 쿠르드 철군 조치에 비추어 볼 때 이스라엘 또한 동맹국인 미국에 대한 신뢰를 재고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체는 "미국이 시리아를 떠나는 표면적인 이유는 터키가 IS(이슬람국가)를 자유롭게 싸우도록 한다는 것이지만, 이는 현실적이지 않다"며 "터키는 IS를 퇴치할 능력이 없다. 실질적인 타깃은 쿠르드이며,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할 것이 틀림없다"고 밝혔다.

이어 매체는 유대교 최고 현자인 힐렐의 격언인 '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해줄 것인가?'를 인용해 "트럼프는 쿠르드족을 버리는 결정을 통해 힐렐이 옳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이스라엘은 오로지 스스로에게만 의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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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이먼 시퍼는 이스라엘 최대 히브리어 일간지인 '예디오트 아하로노트' 기고글에서 시리아 미군 철수가 "우리 등에 칼을 꽂은 것"이라는 제목을 달며 "이번 사태로 내려야 할 결론은 명확하다. 트럼프는 이스라엘이 신뢰할만한 상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도어 골드 전 유엔 대사 또한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오늘 내가 쿠르드가 된 것 같다"며 불안감을 털어놓았다.

마찬가지로 미국과 공식 방위조약이 없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구책을 찾아 나섰다. 전문가들은 지난달 사우디 원유시설 테러 이후 미국의 대응을 관찰한 사우디가 이란과의 외교 노선을 바꾸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NYT는 지난 4일 다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이란과 긴장 완화를 위해 이라크와 파키스탄 지도자들에게 중재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 석유시설 테러 관련 대(對)이란 보복을 거절한 것이 사우디가 스스로 갈등 해결을 위해 움직인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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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6일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4.27 판문점선언 1주년 기념식' 리허설이 열렸다. 판문점 남측에서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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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등 여타 동맹국의 신뢰까지 꺼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 경제매체 마켓워치는 10일 칼럼에서 "친구(동맹)끼리는 이래서는 안 된다"며 "오랜 동맹을 저버림으로써 트럼프는 전 세계에 미국의 말은 소용이 없으며, 우리는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트럼프가 동맹국을 저버린다면,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시험 발사를 계속하는 북한의 김정은을 막아준다는 트럼프의 말을 한국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라며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NATO 동맹국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손아귀로부터 그들을 지켜준다는 말을 미국이 지킬지 어떻게 믿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방위비 분담금에 불만을 표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우려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미국의 패권 약화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블룸버그는 "트럼프의 시리아 미군 철수는 중동에 미국이 신뢰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으며 갈수록 약해진다는 평가를 심어줄 것"이라며 "중동에서는 미국이 싸울 의지를 잃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NYT 또한 "잇따른 이란의 유조선 피격과 원유시설 테러에도 미국의 반격 실패가 미국의 군사 위협에 대한 이란의 신뢰성을 떨어뜨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쿠르드에 등 돌린 트럼프는 미국의 패권 약화를 앞당길 것"이라며 "이는 군사적으론 미국에 의존하지만 (경제적) 번영은 중국에 의존하는 아시아 동맹국에 특히 달갑지 않은 딜레마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강민수 기자


쿠르드 비극에도 '세계의 경찰'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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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터키-시리아 국경지대의 악카칼레 지역 주민들이 터키군 폭격으로 시리아 지역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앞서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 장관은 "터키군이 시리아 북부 깊숙한 30㎞까지 진격할 것"이라며 "모든 테러리스트가 무력화될 때까지 작전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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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가 시리아에 거주하고 있는 쿠르드족을 기습공격하고 나흘째지만 강대국들은 말로만 터키를 비판할 뿐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에서 물러나겠다는 기존의 기조를 지키고 있고 유럽도 대규모 난민 유입을 우려하며 선뜻 개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결정으로 사실상 사태를 촉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비용 부담을 들었지만 사실상 내년 재선을 위해 어쩔수 없다는 입장이다. '인도주의' 등을 명분으로 미국을 압박할 수 있다고 평가받는 유럽 국가들은 난민 유입 우려로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지는 못 하고 있다.

◇美 트럼프 "우리는 경찰이 아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후부터 미국의 해외 주둔 병력 축소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더이상 무거운 군사비용을 혼자 감당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왜 우리의 동맹인 쿠르드가 아닌 독재자(터키)의 편에 서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시리아는 단기 작전이었어야 했고, 몇년 전에 철수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 군대는 싸우지(fighting) 않고 치안 유지(policing)를 하고 있을 뿐인데 "우리는 경찰이 아니라"서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시리아 주둔 병력은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으나 CNN에 따르면 올 초 3000명 수준으로 줄었으며 현재는 약 1000명으로 감소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유럽국가들에게도 당신들의 ISIS(이슬람국가)를 데려가라고 말했지만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국가에서 시리아로 건너와 테러리스트가 된 IS와 그 가족들을 포함하면 6만~7만명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유럽은 미국을 이용해왔다"며 "테러리스트들은 원래 있던 곳(유럽)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찰 포기 선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말에도 시리아 철군 계획에 대해 "모든 부담을 우리 미국이 져야 하는 상황은 부당하다"고 호구 노릇을 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강하게 표현한 바 있다. 실제로 미국의 해외 주둔 병력은 급감하는 추세다. 미국 국방인력자료센터(DMDC)에 따르면 해외에서 활동 중인 미국군 인력은 6월 30일 기준 17만7104명으로 10년 전인 2009년 35만2603명에 비해 약 50%가 급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2016년 말을 기준으로 하면 11%가 줄었다.

◇유럽, 난민 이송 협박에 손 묶여=대규모 난민 유입이 두려운 유럽 국가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10일 시리아 쿠르드족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며 "우리 작전을 침략으로 매도한다면 우리는 문을 열고 360만명에 달하는 난민을 당신들(유럽)에게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아프리카·중동 난민들이 유럽으로 이주하려면 터키를 거쳐야 한다. 터키는 난민 수용의 대가로 EU에게 보조금을 받아왔다. 독일은 터키가 난민을 막아주는 대가로 터키의 EU 가입을 돕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으나, 독재정치를 이유로 가입을 거절하면서 유럽과 터키의 사이도 점점 멀이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기구도 유명무실하다. 10일 UN(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는 긴급 비공개회의를 개최했지만 터키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은 통과시키지 못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폴란드 등 6개 유럽국가들만 공동성명을 통해 "터키의 군사작전을 크게 우려한다"면서 "일방적인 군사적 행동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결의안이 가결됐더라도 UN은 독자적인 군사력이 없어 터키군을 강제로 철수시킬 수단이 없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3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밝혔다. 수천명의 병력을 투입해 군사적으로 이기거나, 터키에 강력한 경제적 제재를 가하거나, 터키와 쿠르드족 간 협상을 중재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재를 가장 희망한다고 밝혔으나 CNN은 "중재는 지금까지도 계속 해왔던 일"라며 "현실성 있는 방안은 경제적 제재"라고 보도했다.

정인지 기자


터키의 좌충우돌에 골치썩는 EU

EU 주요국 '터키의 일방적인 군사행동 중단 요구'…터키 '난민 해결전쟁-유럽에 난민보낼까'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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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시간) 터키-시리아 접경 지역인 터키 남동부 수르츠 마을에서 시리아 주둔 쿠르드 민병대의 박격포 반격으로 숨진 주민들에 대한 장례식이 열려 조문객들이 희생자 관을 운구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쿠르드족에 대한 터키의 공격 중단을 요청했지만, 시리아 국경 지역에서 30km까지 진군해 안전지대를 설치하겠다는 터키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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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 등 군사행동에 대해 유럽연합(EU)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EU 정상회담에서 터키에 대한 제재를 논의하지만 터키가 반발해 난민들을 유럽으로 향하게 할 경우 별다른 대책이 없어서다. 터키는 EU 가입이 막바지 단계에 들어선 상태로 미국과 유럽 주요국가들이 가입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는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아멜리에 드 몽샬린 프랑스 유럽담당장관은 지난 11일 "터키 문제는 다음주 EU정상회의에서 논의될 것"이라며 "이 지역과 민간인 등에 충격적인 상황을 무기력하게 직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상회의 의제와 별도로 유럽연합(EU) 소속 주요국들은 터키의 일방적인 군사행동 중단을 요구하는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성명 채택을 추진했으나 미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켈리 크래프트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번 공격을 어떤 식으로든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충분히 밝혔다고 말했다.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시리아와 관련 모든 안보리 성명은 시리아 내 외국군 주둔을 포함한 광범위한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한 EU 6개국은 별도의 성명을 내고 "이번 침공이 터키의 안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며 "지역 안정을 더욱 훼손하고 민간인들의 고통을 악화시키며 난민 증가 등의 이주를 더욱 촉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U의 이같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난민 사태 등 후유증에 대한 우려도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UN(유엔) 국가로서 시리아 북부 쿠르드 지역에 인도주의적 구호를 제공하고 있다. 물적 지원뿐 아니라 북부 이라크에서 쿠르드 군사를 훈련하는 데도 참여하고 있다. 동시에 독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일원으로 터키와도 손잡고 있다. 터키 공군과 나토 지역 정찰 임무를 함께 한다.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에 따른 파급효과로 대표적인 것은 난민 사태다. 전문가들은 쿠르드 내 교도소에 수감 중인 1만2000여 명의 수니파 극단조직 이슬람국가(IS) 일원들이 터키-쿠르드 갈등을 틈타 탈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들의 탈출로 시리아 지역 정세가 악화할 경우, 서유럽 국가 중 쿠르드인이 가장 많은 독일 등 유럽국가들로 난민이 몰릴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크리스토퍼 버거 독일 외무부 대변인은 ”(터키의 조치는) 지역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든다“며 ”새로운 난민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입장을 냈다.

터키도 자국이 수용하고 있는 난민을 거론하면서 유럽 국가들을 위협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간 터키 대통령은 소속 정당 AK와 가진 연설에서 “유럽연합 국가들은 진정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의 ‘평화의 샘’ 작전을 침공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문을 개방해 난민 360만명을 유럽으로 보내겠다”고 발언했다. 유럽 국가들이 난민 문제에 민감한 점을 이용해 터키가 강경하게 대응한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군사 작전의 목적 중 하나로 터키 내에 있는 시리아 난민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군사작전을 펼친 것인데 유럽이 비판할 경우 유럽에 난민을 보내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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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목숨을 잃은 쿠르드족 전사들을 위해 열린 장례식 모습.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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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인권단체들에 따르면 시리아 북부 국경 5킬로미터 내에 45만여 난민이 살고 있다. 군이 이 지역을 공습해 쿠르드인을 포함한 거주민을 밀어내면 또 다른 ‘난민 대란’도 우려된다.

이민자·난민 문제가 국제사회의 최우선 의제에서 밀려나는 등의 이유로 유럽 각국에서 극우 세력이 상대적으로 퇴조한 상황이다. 하지만 쿠르드 사태를 계기로 또다시 난민문제가 급부상할 경우 유럽 각국에서 정치적 혼란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난민정책 변화를 시사한 최근 인터뷰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하면서 유럽 1 방송 인터뷰에서 "프랑스가 사람들을 잘 포용하려면 모든 사람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면서 "우리는 (난민과 이주민들에게) 너무 매력적인 나라가 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터키가 난민들을 무기로 쿠르드족 공격을 묵인받을 수 있는 토양이 조금씩 자라나는 것이다.

임소연 기자



또 버림받은 '중동의 집시'쿠르드…트럼프는 배신했나

트럼프, 재선 위해 경합주 노동자층 잡으려 시리아 철군 강행…터키, 지정학적으로 미국이 포기할 수 없는 동맹

머니투데이

집을 버리고 대피하고 있는 시리아 북동부 주민들의 모습/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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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현지시간)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족 마을 까미슐리에 터키군의 박격포탄이 쏟아졌다. 이 공격으로 12세 소년 무함마드 유수프 후세인이 숨졌다. 그의 일곱살짜리 여동생 사라흐는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한쪽 다리를 잃었다. 쿠르드족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도 터키에 대한 보복 포격에 나섰다. 이같은 상황으로 로이터는 10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150여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쿠르드족 자치정부는 20만명 가까이 난민이 발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재선 급한 美트럼프-‘선거 패배’ 터키 에르도안, 피와 표를 바꾸나

터키는 지난 9일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족 자치지역에서 쿠르드족을 몰아내기 위한 ‘평화의 샘’ 작전을 개시했다. 나흘 만인 12일 국경지역의 라스 알-아인은 장악됐고 터키는 ‘(해당 지역이) 해방됐다’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7만여명의 쿠르드족 주민들은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국제사회는 터키의 군사행동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고, 불개입 방침을 선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결정은 이 비극의 불을 당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의 공격이 임박했음을 알고도 시리아 철군을 강행했다. 시리아 주둔과 쿠르드족 지원에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결정은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마찬가지로 내년말 재선을 위한 대선 전략의 하나다. 대선의 승패를 가를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경합주 등의 노동자층을 사로잡기 위해선 그들의 자녀인 해외주둔 미군들을 본국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계산이다.

군사행동을 감행한 터키는 자국내 쿠르드 분리주의 세력을 겨냥하면서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여권이 연일 선거에 패하고 있는 상황도 무시할 수 없었다. 쿠르드족 등 유럽행 난민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터키로서는 유럽 주요 국가들이 난민 유입을 이유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1일 주재한 ‘대테러 회의’에서 “누가 어떻게 말하든 우리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라며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포기할 수 없는터키..웃고 있는 러시아

당초 백악관은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여야를 막론하고 동맹을 버렸다는 비난이 쇄도하자 양측을 중재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터키가 쿠르드족을 선제 공격했음에도 미국이 터키에 대해 강경 대응을 하지 못하는 덴 지정학적 이유가 있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 가운데 하나인 터키는 미 공군의 중동지역 작전 수행을 위한 핵심 기지들을 제공하고 있다.

또 보스포루스 해협을 차지한 터키는 흑해의 러시아 해군이 지중해로 진출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터키가 만약 미국과 멀어져 러시아와 유착한다면 서방의 대 러시아 해상 방어막이 뚫리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쿠르드족이 이미 미국 대신 러시아를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터키와 러시아와 접촉하는 등 러시아의 세력확장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동의 집시'로 불리는 쿠르드족이 약 4000만명에 달하는 적잖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독립국가를 이루지 못한 것은 수많은 불운이 겹친 결과다.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 4개국에 퍼져 살다 보니 쿠르드어는 2개 이상의 방언으로 갈라졌다. 자연스레 민족 통합이 어려워졌고, 전체를 아우르는 지도자가 출현하지도 못했다.

독립국가 건설의 기회가 몇차례 있었지만 강대국들의 배신으로 번번이 좌절됐다. 제1차 세계대전 땐 독립을 약속한 영국을 믿고 오스만제국과 싸웠지만 배반당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소련(러시아)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이번엔 미국까지 쿠르드족을 이용하고 내팽개친 셈이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의 조슈아 키팅 전 편집장은 "쿠르드족의 가장 큰 비운은 하필 미국이 초강대국일 때 독립을 추진했다는 점"이라며 "과거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달리 미국은 기존 국경을 신성시하고 유지하려는 입장을 고수하며 새로운 독립국의 탄생을 사실상 차단해왔다"고 지적했다.

뉴욕=이상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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