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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쓰레기통 없어서… '더러운 취급' 받는 생리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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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편집자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이재은의 그 나라, 네팔 그리고 생리 ③] 세계 10대 빈곤국·산악 국가·힌두교 국가인 '네팔'… 생리빈곤 만연하고 월경권 지켜지지 않아… '생리컵'이 긍정적 변화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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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월경권 운동을 펼치고 있는 시민단체 비아시(be artsy) 페이스북 /사진=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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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11세부터 49세까지 약 500회의 생리를 한다. 생리기간은 평균 3~7일이고, 그동안 흘리는 피는 약 40리터다. 이 기간 동안 1만1000~1만7000개 140kg이 넘는 탐폰이나 생리대를 쓴다. 지금 이 순간도, 인구 절반인 여성 중 약 20%는 생리를 하고 있다.


3년 전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서 그 대용으로 신문지를 구겨 쓰고, 신발 깔창을 사용한 소녀 A양의 사연이 알려지면서다.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초등학교 고학년 A양은 첫 월경이 시작됐을 때 당황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아버지에게 생리대를 사 달라고 차마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고 이런 상황에 처했다.

◇'깔창 생리대'로 본 '생리빈곤'과 '월경권'

2016년 A양의 사연이 알려지며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생리빈곤'(period poverty)문제와 '월경권'을 인식하게 했다. '생리빈곤'이란 빈곤 여성이 기본적인 생리 용품을 구매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을 가리킨다. 주로 저소득층 학생, 노숙인, 재소자들이 겪으며 국가를 막론하고 공통적 이슈다. 얼마 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도 '여성 5명 중 1명이 생리빈곤 문제를 겪고 있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나와 충격을 줬다.

2011년 미국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여성은 평생 생리대·탐폰·팬티라이너를 비롯 진통제·생리혈이 묻어 새로 사야하는 속옷 등 생리 관련 물품 구매에 약 2000만원을 소비한다.

당시 허핑턴포스트는 6시간 마다 탐폰을 교체하는 것과 36개입 탐폰(가격 7달러·7400원)을 기준으로 두고 계산했다. 하지만 통상 탐폰의 권장 교체시간은 4시간이라 실제 여성이 지불해야 하는 가격은 더 비싸다. 비용을 아끼겠다고 탐폰 교체 시간을 늘리다간 독성쇼크증후군이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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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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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빈곤' 문제를 겪는 이들이 평생 2000만원에 달하는 돈을 생리 용품에 쓸 수 있을리 없다. 이들은 경제적 여유가 없어 식재료와 생리대 중에서 양자택일하거나 종이 타월, 화장지, 비닐 봉지, 마분지 상자, 신발 깔창, 천이나 낡은 옷, 신문지 등으로 생리대를 대신한다.

이에 따라 모든 여성에겐 안전하고 건강하게 생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월경권'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는 생리하는 여성의 몸이 학습권, 건강권, 노동권, 기본권과 연결돼있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UN도 2013년 월경권을 기본 인권으로 선언했다.

우리나라 각지에서도 생리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월경권을 보장하고자 생리대를 무상으로 지급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기도 여주시의회는 지난 4월 전국 최초로 만 11~18세의 모든 여성 청소년에게 생리대를 무상으로 지급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지난 7월 서울시의회도 관련 조례안을 발의했다.

◇네팔 여성들의 월경권 보호하는 '생리컵'

우리나라 등 세계 여러 선진국의 상황이 이러하니 월경권에 대한 인식이 희미한 개발도상국에서의 상황은 더욱 나쁘다. 세계 10대 빈곤국이자 국민의 87%가 힌두교를 믿는 네팔의 상황도 그러하다. 빈곤국 네팔엔 '생리빈곤'이 만연한데, 종교적 특성 때문에 월경권이 지켜지지 않기에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힌두교는 종교적 의례에 따라 엄격하게 정결함(우월함)과 오염·더러움(열등함)을 구분한다. 이때 월경과 출산 등을 담당하는 여성은 생리혈과 출산혈 때문에 오염이 가능한 열등한 존재로 인식된다. 초경이 시작되기 전의 여성은 오염되기 전이므로 '찬양받아 마땅한 존재'로 여겨지고, 초경을 시작한 뒤는 '이미 오염된 존재'로 일종의 혐오의 대상이 된다. (☞월경이 모든 걸 바꿨다… '여신'에서 '사회부적응자'로 [이재은의 그 나라, 네팔 그리고 생리 ②] 참고)

자연히 네팔에서 생리는 '사회악'처럼 여겨져 숨겨야하는 대상으로만 여겨진다. 여성은 생리기간 '차우파디'(chhaupadi) 관습에 따라 가족과 격리돼 헛간 등에 머물고 정상적으로 생활하거나 등교하는 것, 사교 모임에 참석하는 것 등이 금지되며 주택이나, 사원 등에도 들어갈 수 없다. (☞"더러워"… 생리 기간, 죽어나가는 여성들 [이재은의 그 나라, 네팔 그리고 생리 ① 참고)

부엌에 들어가 음식 등을 만지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먹을 음식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인식 때문에 금지된다. 부엌에서 요리된 음식도 먹을 수 없다. 홀리 바질(향신료 풀·녹색 작물의 일종) 등 녹색 작물을 만지면 녹아버린다는 인식이 있어 이 기간엔 여성이 이것을 만지거나 섭취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생리 중인 차우파디 여성은 밥, 소금, 렌틸콩, 시리얼, 소금만 뿌려진 납작한 빵 등만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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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생리하는 여성을 격리조치하는 오두막의 모습.(사진출처: CNN 영상 캡쳐, 뉴시스) 201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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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신성하다고 여겨지기에 수도꼭지나 우물 등 물 공급원과도 접촉할 수 없고 정해진 우물에서만 제한적으로 씻을 수 있다. 생리 중에 격리된 여성들이 벌레 등이 가득한 맨 바닥에서 자는 경우가 많은 데다가, 청결을 관리하기가 어려워 병에 걸리기 십상이다. 자주 씻지 못하고 생리대로 쓰는 헝겊 등을 자주 빨 수 없으며, 햇볕에 생리대를 말릴 수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네팔에서는 '일회용 생리대'를 쓰기도 쉽지 않다. 생리를 숨겨야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에다가 산악국가라는 특징이 더해져서다. 네팔은 세계 10대 최고봉 가운데 8개를 보유한 국가로 지형이 험악하기로 유명한 산악국가다. 흔히 도시에서 보듯 쓰레기를 정기적으로 수거해가는 쓰레기차 등을 보기도 힘들다.

이 때문에 네팔 여성들은 혹 자신이 쓰고 버린 일회용 생리대를 누가 발견하고 더럽다고 여길까봐 쓰지 못한다. 월경권 운동가이자 '비아시'(Be Artsy) CEO인 클라라 가르시아는 호주 ABC에 "네팔에서는 쓰레기 수거가 잘 이뤄지지 않기에 여성들은 대신 더러운 천이나 걸레 등을 대안으로 사용하는데, 이 때문에 각종 생식기 감염 위험이 높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최근 네팔에서 활동 중인 인권 단체들은 월경권 보호와 차우파디 관습 개선 등을 위해 생리컵을 배부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2017년 시민단체 '비아치'는 라토 발틴 파일럿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1년 간 네팔 소녀 250명에게 영국제 생리컵을 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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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2일 2017 지구의날에 여성환경연대는 생리컵과 면생리대에 대한 오해를 설명하고 생리컵을 체험해보도록 하는 부스를 운영했다. 2017.08.25. (사진 제공 = 여성환경연대 트위터, 뉴시스)



생리컵은 질에 컵을 삽입해 생리혈을 받아내는 생리용품으로, 최대 12시간까지 사용하며 물로 세척해 재사용이 가능한 제품이다. 생리대와는 달리 생리 혈이 밖으로 새지 않아 냄새가 나지 않고 깔끔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비아시'의 생리컵 배부 후 엄청난 변화가 나타났다. "차우파디 전통 실시에 변화가 없다"고 답한 9명을 제외한 241명에게서 긍정적 변화가 나타났다고 답이 나온 것이다.

소녀들은 "내게서 냄새가 나지 않고, 일회용 생리대를 버리거나 천 생리대를 빨지 않아도 돼서 사생활이 지켜진다" "차우파디를 겪지 않게 돼 생리 기간에도 채소, 과일, 우유 등을 먹을 수 있게 됐다" "냄새가 나지 않아 차우파디 때도 집 안에서 잘 수 있게 됐다" "몸 밖으로 피가 나오지 않아 스스로 깨끗하게 느껴지고 가족 앞에서도 자신감이 있다" "컵을 사용하니 학교도 갈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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