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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디센터 스냅샷]블록체인 기반 보팅형 SNS, 그 끝은 블랙미러가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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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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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보팅 갑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최근 블록체인 기반 SNS 서비스 스팀잇 이용자들 사이 싸움이 벌어졌다. 위 발언은 싸움 과정에서 나왔다. 두 명의 싸움 당사자는 블로그부터 커뮤니티에까지 서로의 악행을 고발했다. 그리고 싸움은 함께 이용 중인 블록체인 SNS 스팀잇에서도 계속됐다.

대다수 블록체인 기반 SNS는 ‘보팅(투표)’ 모델로 이뤄져 있다. 마음에 드는 글에는 업보팅을, 반대의 경우 다운보팅을 하는 구조다. 글쓴이는 최종적으로 받은 보팅 금액에 상응하는 암호화폐를 받는다. ‘보팅=돈’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다운보팅이 돈을 뺏는 행위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글쓴이들은 점점 업보팅을 해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 다운보팅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인식했다. 이런 인식이 팽배해지자 일부 이용자들은 역으로 보복성 다운보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플랫폼 내 콘텐츠에 대한 평가였을 뿐 글쓴이 사람 개인에 대한 평가와 보복은 아니였다.

최근에 일어난 싸움을 보면 보팅 양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플랫폼 밖에서의 일을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였다. 두 사람의 싸움은 처음에는 블록체인 서비스에 대한 의견차이에서 나중에는 서로의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대화하던 중 서로를 비판하는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싸움에서 갑질을 호소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개발사들은 토큰 이코노미 운영을 위해 이용자에게 암호화폐를 스테이킹하게 만든다. 이용자는 보유량 인증을 통해 더 큰 보팅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개발사는 암호화폐 매도를 막는다. 이번 싸움에서 암호화폐 보유량이 많은 사람은 영향력을 이용해 무차별 다운보팅 공격을 펼쳤다. 그러자 쓴 글에 대한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된 상대방이 ‘갑질’을 당하고 있다고 외친 것이다.

이 싸움을 지켜보다 문득 머지않은 미래사회를 그린 해외 드라마 ‘블랙미러-추락 편’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끼리 마주칠 때마다 상대에 대한 평점을 매겨야 한다. 온라인상의 평점은 즉 권력이다. 평점이 낮으면 ‘불량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사회 혜택을 받지 못한다. 좋은 집에 살지 못하고, 심지어 대중교통 수단도 이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서로 평점을 주는 기준은 공정할까? 아니다. 사내연애를 하다가 헤어졌다고, 마주친 것 자체가 불쾌하다고 무자비한 낮은 평점을 준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중상위권 평점을 유지하다 여러 사건을 겪으며 최하 평점을 받게 된다. 마지막에는 그 충격으로 멘탈이 붕괴돼 울부짖기까지 한다. 서로서로 평가하고, 평가가 수익으로 직결되는 ‘블록체인 기반 보팅형 SNS’.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생태계를 망치지 않을 것이라는 최초 개발자들의 생각은 너무 유토피아적인 게 아니었을까? 서로 좋은 평점을 주고, 생태계를 가꾸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던 허니문 기간은 끝나간다. 이용자들은 이미 외부 감정을 SNS 내부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블록체인 생태계 조성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드라마와 다른 결말을 만들기 위해 이제 ‘보팅’의 한계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새로운 구조를 짜야 할 때가 아닐까?
/노윤주기자 daisyroh@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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