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55530418 0032019101155530418 04 0401001 6.0.14-RELEASE 3 연합뉴스 0

[르포] 이란 여성 축구장 처음 들어가던 날…"벅찬 눈물 흘러"

글자크기

축구경기장 광고판에는 여성용품 광고…출입구·관람석 분리

"빈자리 많은 데 왜 여성에 표 안 파나" 항의도

연합뉴스

이란 여성 축구경기장 입장 38년만에 첫 허용
[테헤란=연합뉴스]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38년 만에 드디어 이란에서 축구경기장의 문이 여성에게도 열렸다.

10일(현지시간) 오후 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 19번 게이트로 이란 국기를 손에 들거나 어깨에 두른 여성이 줄지어 입장했다.

이란축구협회는 남성 관중과 섞이지 않게 하려고 여성 관객을 경기 4시간 전인 이날 오후 1시부터 입장하도록 했다. 출입구와 주차장도 여성 전용 구역을 마련했고 관람석도 높이 2m 정도의 분리 벽을 쳤다.

이란축구협회 관계자는 "혹시라도 여성 관중이 불상사를 당할 수 있어 이를 보호하기 위한 조처다"라고 설명했다.

축구장에 '당당하게' 입장한 여성 팬들은 킥오프가 한참 남았는데도 끊임없이 함성을 지르고 부부젤라를 불었다.

흡사 여성만을 위한 파티가 열린 것처럼 흥겨운 분위기가 경기 끝까지 내내 이어졌다.

한 여성 관객은 "그간 처벌될 각오를 하고 남장을 한 채 가슴을 졸이며 몰래 입장했었는데 떳떳하게 아자디스타디움에 들어오니 너무너무 기쁘고 벅차다. 축구장에 들어올 수 있다니 정말 큰 일이다"라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축구 경기장에 들어간 여성들이 '인증샷'을 올리며 기쁨을 만끽했다.

경기 시작 직전 이란 선수들이 워밍업을 하려고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자 여성 팬들의 환호는 경기장을 압도했다.

그라운드 주변의 광고판에는 여성 위생용품이나 주방 기구의 브랜드가 계속 노출됐다.

경기 중 골을 넣은 이란 축구선수들은 여성 전용구역을 향해 감사 인사를 하기도 했다. 국영방송은 여성 관중석을 먼 거리에서 촬영해 중계방송했다.

아시아권에서 가장 축구 실력이 좋은 이란과 최약체로 꼽히는 캄보디아의 경기였던 탓에 관중석은 대부분 텅텅 비었지만 여성 전용구간은 빈틈없이 가득 찼다.

이란축구협회는 전체 8만석 가운데 3천500석만 여성에 할당했고, 여성이 살 수 있는 입장권은 인터넷을 통해 1시간도 되지 않아 모두 팔려나갔다.

연합뉴스

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의 꽉 찬 여성 관람석
[테헤란=연합뉴스]



하지만 나머지 '남성 입장권'은 2천여장이 팔리는 데 그쳤다.

자신을 아이샤(21)라고 밝힌 여성은 "자리가 이렇게 많이 비었는데 왜 여성 입장권을 더 늘리지 않는지 모르겠다"라며 "불공평하다"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경기장 밖에서는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여성 수십명이 모여 "자리는 남는데 표를 안 판다"라고 구호를 외치며 항의하다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또 여성에게 배정한 전용 구역이 코너 플래그 뒤편으로 시야가 가장 좋지 않았던 점도 여성 팬의 불만을 샀다.

이란 당국이 여성 입장을 허용한 데엔 여성 축구팬이 분신해 사망한 비극적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올해 3월 남장을 한 채 아자디스타디움에 몰래 들어가려다 체포된 여성이 징역형이 두려운 나머지 재판을 앞두고 지난달 초 분신해 결국 숨졌다.

이 사건 뒤 국제축구연맹(FIFA)이 이란에 대표단을 보내 여성도 축구경기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라고 이란축구협회를 압박했고 이란 국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높아졌다.

다른 나라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란에서만은 역사적인 '사건'을 취재하려는 언론의 관심도 뜨거웠다.

축구 경기 자체보다 여성이 1981년 이후 처음으로 축구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취재하기 위해 테헤란에 주재하는 외신 30여곳이 허가증을 신청했다.

이란축구협회는 경기 직전까지 외신 기자가 여성 관중과 직접 만나는 문제를 결정하지 못하다가 결국 불허했다.

경기장 안뿐 아니라 출입구를 드나드는 여성 관중에게 기자들이 소감을 묻는 것도 엄격하게 차단했다.

여성 관중석 경계에는 검은 차도르를 입은 여성 경찰이 줄을 지어 남성의 접근을 막는 한편 응원에 열중한 나머지 히잡이 벗겨지는 여성이 있는지 감시했다.

경찰로 보이는 제복을 입은 요원들도 여성 관중석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날 이란 축구대표팀은 캄보디아를 14-0이라는 큰 점수 차로 낙승해 여성 팬의 첫 직접 응원에 보답했다.

연합뉴스

분리벽으로 나뉜 여성 관람석
[테헤란=연합뉴스]



hsk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