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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현장에선] ‘배터리 소송전’ 누가 승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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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ESS(에너지저장장치) 화재 사태’에 대한 정부의 후속조치에 질타가 쏟아졌다. ‘조국 사태’로 파행한 국회에서 보기 드문 정책국감이었다. 위원들 질의는 LG화학이란 글로벌 기업의 대외신인도와 탈석탄·신재생 에너지전환 정책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의식해 ‘화재 원인을 뭉개고 쉬쉬했다’는 의혹에 집중됐다. 특히 여당(이훈)의 추궁이 매서웠다. ‘정부와 LG화학 담당자가 문제를 인정했다’는 녹취록을 거론한 대목에선 많은 이들이 진땀을 흘렸을 것이다.

우연일까. 8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배터리 현안에 대해 침묵을 깼다. “내부 갈등이 경쟁자들의 어부지리(漁父之利)가 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SK와 LG가 ‘배터리 소송전’을 벌인 지 다섯 달 만이다.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전자산업 60주년 기념식’에서 성 장관은 “배터리, 디스플레이, 메모리반도체와 같은 분야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뿐 아니라 같은 업종 내 대기업 간 협력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건강한 경쟁과 협력’, ‘성숙한 경쟁문화’를 거듭 강조했다.

세계일보

조현일 산업부 차장


최근 산업현장은 곳곳이 분쟁지역이다.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먹거리인 신산업쪽이 특히 그렇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대내외 환경에서 생존과 미래 주도권을 담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한 건 당연하다. 나아가 반칙, 불법 등으로 룰을 어겼다면 명확히 규명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기술강국의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장관은 ‘국익’ 화두를 꺼냈을까.

9일(현지시간) 일본은 25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냈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상용화한 아키라 요시노 메이조대 교수가 주인공이다. 우리네 배터리 경쟁력은 어디쯤일까. 기술력은 일본, 생산력은 중국에 뒤진다. 중국 CATL이란 기업은 출하량 기준 2014년 9위에서 2017년 1위로 올라섰다. 상반기 점유율은 25.4%로 전년비 3.9%포인트나 늘렸다. 한 번 충전에 500㎞를 주행하는 3세대 배터리(NCM811)도 개발, BMW와 자국 브랜드들에 공급 중이라고 한다. 한국의 기술우위도 사실상 따라잡힌 셈이다.

이뿐이 아니다. 지금 세계 배터리 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독립’이다. 며칠 전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캐나다 배터리 제조사 ‘하이바 시스템스’를 인수했다. 밀월관계였던 세계 최고 기업 일본 파나소닉이 도요타와 손을 잡으면서다. 한국에 대형 수주를 안기던 폴크스바겐 역시 스웨덴 ‘노스볼트’와 손잡고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 모두 직접 생산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수급 안정’ 대책의 일환이지만 미래차 핵심부품을 아시아가 지배하는 데 따른 위기감으로 읽힌다. 당장 수년 내 생산은 안 되겠지만 업계를 압박할 카드로는 유효하다.

국내 배터리 분쟁을 떠올려본다. 양측 주장이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맞선다. 얽히고설킨 이번 소송전도 매듭이 지어질 것이다. 기업 분쟁에 100% 승리는 드물다. 그렇다 한들 누군가는 세계 최고시장 미국을 잃는다. 현실적으론 서로 다칠 것이 유력하다. 그렇게 양사는 합의점을 찾을 것이다. 결국 득을 보는 이는 누구일까. 성 장관이 침묵을 깬 이유일 것이다.

조현일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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