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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로터리]3,000억원을 반납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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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서울경제


얼마 전 한국의 자산운용사 대표단이 유럽의 세계적인 연기금 회사들을 방문했다. 그 일원으로 참석했던 우리 회사 최고경영자(CEO)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주로 세계적인 국부펀드들이 어떻게 주식투자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의 사례를 통해 주식의 본질을 나누고 한국의 연기금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현재 전 세계 국부펀드 중 1위는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다. 1990년도에 북해석유를 원천으로 출범했는데 현재는 1조달러가 넘는다. 노르웨이 국민이 500만명이니 국민당 2억원이 넘는 자산으로 불어난 것이다. 석유자원을 미래세대의 부로 성공적으로 전환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성공한 이유는 자산배분과 운용을 잘했기 때문이다. 첫째는 주식비중을 높인 것이다. 현재 노르웨이 국부펀드 주식비중은 70% 수준이다. 전 세계 국부펀드 주식평균 비중인 44%보다 훨씬 높다. 30% 후반에 머무는 한국의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에 비하면 약 2배에 가깝다. 둘째는 철저히 장기투자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철저한 사전검증을 통해 운용사들을 선발하고 일단 돈을 맡기면 10년 이상은 지켜본다.

이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자본시장의 본질과 1등 기업의 가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이 존재하는 한 장기적인 주식 수익률은 채권보다 높다. 오랜 자본주의 역사가 증명해준 명제다. 그리고 1등 기업 주식은 성공투자의 보증수표다. 1등 기업은 엄청난 불황조차 이기고 살아남아 높은 수익으로 보답해준다. 단순하지만 분명한 논리를 알고 실천했기 때문에 세계 1등 국부펀드가 된 것이다.

한국을 돌아보자. 한국투자공사와 국민연금이 이들과 비교할 만한데, 두 기관의 운용자산은 약 850조원에 이른다. 해외 국부펀드와 비교해도 작지 않다. 그간 절차적 관리에는 많은 공을 기울였지만 자산배분과 투자집행 관리는 아쉬운 점이 많다. 물론 주식비중을 올리는 것은 투자문화를 바꿔야 하는 문제고 많은 이해관계자와 합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투자집행과 관리기준을 고치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단기 성과 평가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필자 회사는 몇 년 전에 약 3,000억원에 이르는 국민연금 위탁자금을 스스로 반납한 일이 있다. 단기 성과가 부진하면 회수되는 규정 때문이었다. 그 당시 펀드의 장기 성과는 상위권에 들 정도로 좋았지만 단기 성과가 부진해 회수될 수도 있었다. 결국 조바심 나는 운용이 불가피했고 철학과 원칙이 흐트러지는 상황이 되겠다 싶어 과감히 반납을 결단했다. 그 후 나는 공모펀드에 주력해왔고 현재까지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은 남아 있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질 자금을 끝까지 맡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연기금들이 노르웨이 국부펀드를 본받아 자산배분과 투자집행 관리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주식투자 비중을 상당 수준 올리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맞는 방향이니 그렇게 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선은 장기투자에 적합한 운용이 되도록 관련 기준과 규정을 바꿔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확고한 투자철학과 장기투자 관점이 분명한 운용사들이 뽑힐 수 있게 하고 그들이 마음껏 실력을 펼칠 수 있게 하자. 투자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대한민국 국부는 남부럽지 않게 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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