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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의 세상의 저녁] 박노해와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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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찬
소설가


지난 9월24일 시인 박노해는 ‘나눔문화’에 시 ‘살아서 돌아온 자’를 올렸다. “진실은 사과나무와 같아 진실이 무르익는 시간이 있다”로 시작되어 “눈보라와 불볕과 폭풍우를 다 뚫고 나온 강인한 진실만이 향기로운 사과알로 붉게 빛나니/ 그러니 다 맞아라 눈을 뜨고 견뎌내라 고독하게 강인해라”로 이어지는 ‘살아서 돌아온 자’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시의 내용이 조국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1984년 9월 출판된 박노해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군부독재에 짓눌려 있던 한국 사회를 깊이 충격했다.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가 언어의 칼로 새긴 <노동의 새벽>이 시대의 절망적 어둠을 관통하는 불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 11월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헤어날 길이 없는 고통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몸을 태운 전태일의 간절한 염원을 씨앗으로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태일이 불속에서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쳤던 것은 가슴에 서린 진실을 죽음 이외에 알릴 방법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은 전태일의 죽음을 품고 ‘새벽’을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생명의 발걸음이었다. 박노해에게 시란 전태일의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사제적 행위였다. 그 행위 속에서 그는 ‘노동해방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응시했다.

1989년 11월 ‘지역별·업종별 노동조합 전국회의’가 주최한 서울대 집회 현장에서 낯선 깃발 하나가 펄럭였다. 박노해와 변혁운동가 백태웅이 이끄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의 깃발이었다. 군부독재의 시간 속에서 전위적 혁명가로 솟아오른 두 사람은 공안당국의 집요한 추적으로 1991년 3월 마침내 체포되었고, 시인의 숨겨진 얼굴이 세상에 알려졌다. 박노해가 24일 동안 참혹한 고문을 겪고,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동안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는 조용히 와해되고 있었다.

조국은 사노맹 해산 뒤인 1993년 6월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사노맹 산하 ‘남한사회주의과학원’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그가 서울법대 선배 백태웅의 제안으로 사노맹과 관계를 맺은 것은 사노맹이 추구하는 사회주의와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주의가 달랐지만 ‘사회주의의 뿌리는 인간’이라는 에리히 프롬의 휴머니즘적 사회주의 명제와, 한국 사회에 누적된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조국은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서울구치소에서 5개월 만에 나왔다.

1998년 8월15일 특별사면 조치로 7년6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된 박노해는 그 뒤 민주화운동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면서 국가보상금을 거부하고 2000년 ‘생명 평화 나눔’을 추구하는 ‘나눔문화’를 설립한 뒤 침묵과 은둔의 삶으로 들어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임박한 2003년 3월 어느 날 홀로 전쟁터를 향하는 박노해의 모습이 ‘나눔문화’를 통해 알려졌다. 그가 전쟁터로 간 것은 “이라크의 죽어가는 저 죄 없는 아이 곁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놀랍게도 그는 이라크 전쟁이라는 인류의 불행에 깊은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어떤 사건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느끼는 것은 그 사건과 가장 깊은 관계를 맺는 행위다. 책임감이 불러일으킨 슬픔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 선포로 극도의 무력감에 빠진 그를 일으켜 세워 전쟁의 비극에 휩쓸린 아이들 곁으로 이끈 것이었다. 그가 세계의 분쟁현장과 빈곤지역, 지도에도 없는 마을을 찾아 그들의 절망과 희망을 사진과 언어로 끊임없이 우리에게 전하는 이유는 ‘깊은 슬픔’ 때문일 것이다.

“한 시대의 끝 간 데까지 온몸을 던져 살아온 나는, 슬프게도 길을 잃어버렸다. 나는 이 체제의 경계 밖으로 나를 추방시켜, 거슬러 오르며 길을 찾아 나서야 했다. 내가 가닿을 수 있는 지상의 가장 멀고 높고 깊은 마을과 사람들 속을 걸었다.”

그 길 속에서 시인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시 ‘살아서 돌아온 자’를 썼다.

“진실은 사과나무와 같아 진실한 사람의 상처 난 걸음마다 붉은 사과알이 향기롭게 익어오느니/ 자, 이제 진실의 시간이다”

‘진실의 시간’은 상처 난 가슴에 스며들어 고인다. 상처의 힘 속에서 사과나무가 숨 쉬는 것이다. 그 상처의 심연에서 피어오르는 사과나무 향기를 지금 우리는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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