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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윤의 비온 뒤 무지개] 일터에서 죽임 당하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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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지난 9월10일 감사원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코레일은 선로 보수 작업 중 열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막기 위한 애플리케이션을 2017년에 약 14억원을 들여 개발했다. 하지만 열차 접근을 알려주는 모바일 단말기를 코레일 직원에게만 지급하고 실제 선로에 나가 일을 하는 외주노동자에게는 지급하지 않았다. 열차가 작업 반경 2㎞ 안에 들어오면 경고를 해주는 시스템을 개발한 계기는 2016년 선로 공사를 하던 외주노동자들이 사망한 사건 때문이었는데도, 계약서에 통신비 부담 조건이 없다는 이유로 외주노동자에겐 단말기를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어이없는 변명이다. 코레일은 선로 관리를 맡은 곳이고, 자신들이 필요해 외부 노동자를 불렀다면 그들이 작업하는 환경을 안전하게 만들 책임 역시 응당 코레일에 있다. 정직원이든 아니든 사람의 목숨값이 다를 리 없지 않은가.

국정감사를 통해 일터가 얼마나 안전하지 못한지 드러나고 있다. 주승용 의원은 코레일에서 지난 5년간(2014~2018년) 산업재해 사고로 인한 사상자 583명 중 229명이 외주노동자라고 밝혔다. 문진국 의원은 2014년부터 올해 6월까지 5년6개월 동안 포스코건설에서만 27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는데 모두 하청노동자였고, 포항제철에서는 8명의 사망자 중 7명이 하청노동자라고 발표했다. 이용득 의원은 올해 상반기 6개월 동안 산업재해 사망자 465명 중 10%에 해당하는 42명이 이주노동자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에서 이주노동자의 비중이 3% 미만임을 고려하면 이주노동자들이 위험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드러나는 통계다. 한정애 의원은 18~24살 산업재해 사망자 중 45.8%가 배달 사고라며,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배달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정부를 질책했다. 또 올해 상반기에 30대 기업이 받아간 산업재해보험료 감면액 현황을 통해 대기업들이 위험한 일은 하청업체에 떠맡기고 자신들은 산재보험료 면제 혜택을 받는 실태도 지적했다. 2018년에 5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했지만 포스코는 올해 상반기에만 94억원의 산재보험료를 감면받았다. 얼마 전 노동자 사망 사건이 있었던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모두 10억원 이상씩 감면받았다.

이렇게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터는 건설업, 조선업, 제조업이나 배달업뿐만이 아니다. 인력 충원을 하지 않는 탓에 업무가 과중되어 쉬지 않고 일을 하다가 과로사로 사망하는 집배원, 청소노동자 등에 대한 뉴스도 잇따른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일을 하지만 일을 하다가 죽는다. 추락하고 컨베이어 벨트에 끼이고 탱크 안에서 질식하고 휴일에도 쉬지 못하는 근무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꾸 죽는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일 대통령은 4명의 경제단체장과 오찬 간담회를 했다. 그리고 8일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경제가 역동적으로 변하려면 민간에 활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내년부터 확대 적용되는 ‘주 52시간 근로제’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가 크니 이를 해결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라고 했다. 기업들이 더 활기차게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국회에 계류돼 있는 데이터 3법도 빨리 통과되도록 힘을 쓰라고도 했다.

기업의 입장도 고려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것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현재 국회에서 통과되길 기다리는 법 중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있다. 기업이 일터를 안전하게 만드는 일에 더욱 신경을 쓰도록 사망사고가 생기면 강력하게 책임을 묻고 처벌을 하는 법이다. 또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망을 막기 위한 ‘위험의 외주화 대책위원회’도 7일 출범했다. 역동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경제를 만들기 위해 기업의 우려도 들어야겠지만 안전하지 못한 일터에서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두지 말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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