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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훈민정음 상주본 소장자' 만난 학생들 "왜 반환 안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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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익기씨 찾아간 고등학생들…반환요구 서명지 건네

이에 '훈계답변서'로 응수한 배씨 "나도 노력 중이다"

배씨, 이어진 학생들과 대화자리서도 기존 입장 고수

"보관이 문제가 아니라 소유 관계 밝히는 게 더 중요"

중앙일보

한글날인 9일 오전 고교생들이 경북 상주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 소장자 배익기씨가 운영하는 골동품점에서 배씨에게 상주본 반환 서명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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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인 9일 오전 경북 상주시 낙동면 배익기(56)씨가 운영하는 골동품점 앞에 고등학생 4명이 찾아왔다. 상주고와 상주 우석여고, 서울 해성여고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흰색 박스 하나를 들고 있었다.

학생들이 만나러 온 배익기씨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의 소장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학생들은 그를 만나 준비한 박스를 건넸다. 상자 안에는 상주본 국가 반환을 요구하는 상주고 학생 416명이 쓴 편지 등 전국에서 모인 손편지가 담겨 있었다.

이날 배익기씨를 찾은 학생들 중엔 서명운동을 주도한 상주고 김동윤(18)군도 있었다. 김군은 지난 8월부터 상주본 국가 반환을 위한 서명운동을 펼쳐 왔다. 그는 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나랏말싸미’를 보고 상주본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됐다”며 “상주본은 한글의 창제 원리가 담긴 문화재이고, 상주시민의 자부심인데 지역 사회에서 그 누구도 상주본 반환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어 직접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서명지를 전달한 후 학생들과 배씨는 골동품점에 마주앉아 20여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언성이 높아지진 않았다. 학생들과 배씨가 문답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입장을 재확인한 시간이었다. 이야기에 앞서 배씨는 자신의 입장이 담긴 글을 학생들에게 건네기도 했다. 이른바 ‘학생들의 오도된 서명요청에 대한 훈계답변서’였다. 그러면서 “내가 (상주본 반환과 관련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학생들의 순수한 마음은 잘 알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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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인 9일 오전 상주고등학교 2학년 김동윤(오른쪽 네번째) 학생 등 고교생 4명이 경북 상주시 낙동면 훈민정음 상주본 소장자 배익기(56·왼쪽)씨의 골동품점을 찾아 배씨에게 훈민정음 상주본 반환 요청 서명서와 손편지를 전달한 뒤 이야기 나누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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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씨는 상주본의 소유 관계가 자신에게 있고, 국가가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한 학생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뜻을 보더라도 훈민정음을 개인이 소유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배씨는 “여러분의 집도 땅도 다 개인의 소유이지만 그것도 결국 대한민국에 속해 있는 것”이라며 “국가지정문화재나 국보도 사유재산인 경우가 더 많다. 국가에서 그걸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답했다.

다른 학생이 “상주본이 박물관에 보관돼야 보다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다”고 주장하자 이에 대해 배씨는 “지금 소유 관계 정리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해결이 되지 않았다”며 “보관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유 관계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문화재청은 “그동안 배씨를 45차례 만났으며 반환을 설득하고 있다”며 “프로파일러를 동원해 배씨의 심리상태를 짚어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상주본이 이미 3분의 1 이상 훼손됐다는 주장이 나오자 문화재청은 “실물을 보지 못해 모른다”고 답했다.

고서적 수집가인 배씨는 2008년 자신이 상주본을 갖고 있다고 처음 알렸다. 하지만 골동품 판매업자 조모(2012년 사망)씨가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 대법원은 2011년 5월 상주본의 소유권이 조씨에게 있다고 판결했지만 배씨는 상주본 인도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구속(2014년 대법원 무혐의 판결)되기도 했다. 조씨가 사망하기 전 상주본을 서류상으로 문화재청에 기증하면서 정부는 배씨에게 상주본 소유권 인도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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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왼쪽)과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위쪽과 아래쪽 여백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간송본은 여백이 훨씬 좁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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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대법원은 상주본 소유권이 문화재청에 있다고 판결했다. 배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를 기각하고, ‘상주본의 소유권이 배씨에게 있지 않다’는 원심을 확정하면서다. 하지만 배씨는 여전히 상주본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국가가 가져가려면 상주본 가치의 10분의 1인 1000억원을 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상주=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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