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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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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맛집 탐방, 음악 감상, 수채화 그리기…책향기 속에서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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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서점이 복합문화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한남동 ‘북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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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복합문화 공간으로 변신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한 대형 서점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소개말이다. 책하면 떠오르는 지식·교양도 아니고 라이프스타일을 높이다니, 처음엔 전화를 잘못 걸었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서점에 가보면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된다.서점이 복합문화 공간으로 진화하면서 중독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대형 서점이 다채로운 생활문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 서점들이 내걸고 있는 수식어만 봐도 그 변화를 알 수 있다. ‘컬처 리더들을 위한 복합문화 공간’ ‘책과 라이프스타일 숍이 결합한 새로운 유형의 도심 속 복합문화 공간’ ‘라이프스타일 북센터’ 등 다양하다.



동네 책방서 대형 서점으로 확산



이 같은 변화의 흐름은 동네 작은 책방에서부터 시작됐다. 책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고 독서모임이 곳곳에서 열리면서 작은 서점이 문화를 함께 향유하는 사랑방으로 바뀌었다. 여유로운 문화생활을 지향하는 현대인이 많아지면서 대형 서점 역시 이 같은 변화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책은 사지 않고 이 책, 저 책을 들춰보면 사장이 눈치를 주던 이전 서점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오히려 서점에서 더 오랫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한다. 온라인 쇼핑이 보편화되면서 발길을 끊었던 소비자가 오프라인 매장으로 다시 모이는 이유다.

소비자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도록 책상을 마련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날 수 있는 북토크를 여는 등 서점의 바뀐 모습은 다채롭다. 교보문고는 광화문점에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방문자가 미술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공간, 교보아트스페이스를 운영한다. 영업 시간이 지나고 문을 닫은 서점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심야책방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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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교보문고 광화문점 교보아트스페이스’


김현정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담당자는 “온라인에서는 제공할 수 없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고민하다 보니 최근엔 교보문고 매장만의 향기도 개발했다”며 “매장에 들어서면 바로 맡을 수 있는 이 향기를 서점에서 향수로 판매하고 있는데 월 매출 1억원을 기록할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서점은 한발 더 나아가 소비자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문화 공간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영풍문고는 서점에서 버스킹 공연을 펼친다. 공연은 홍대점, 종각 종로본점, 광교점, 광복 롯데점 등에서 열리며 소비자가 책부터 음악까지 모두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됐다. 서점에서 생활 제품도 살 수 있도록 리빙 브랜드 ‘버터’를 서점 안에 숍인숍 형태로 열기도 했다. 현재 영풍문고의 여의도 IFC몰점, 분당 서현점, 광주 터미널점에 있다. 종로본점에선 수채화 그리기, 자수, 종이접기 등을 배울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1일 강좌)가 진행되는 문화 공간 ‘책향’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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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을지로 ‘아크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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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켠에 전문 식당이 줄지어 있는 서점도 있다. 서울 을지로에 있는 대형 서점, 아크앤북에는 피자를 먹을 수 있는 ‘운다피자’, 대만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샤오짠’ 등 8여 곳의 식당이 포진해 있다. 커피숍·리빙숍도 서점 안에서 만날 수 있다. 이곳을 방문한 직장인 송영아(31)씨는 “오전 11시에 와서 서점 안 식당에서 명란덮밥을 먹은 후 커피 한잔을 마시고 오후 1시까지 책을 보고 있다”며 “집에 가기 전에 서점 내 ‘스위스 디자인 마켓’ 매장에 들러 가을 여행에 쓸 선글라스도 둘러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대형 서점, 북파크는 매달 북콘서트를 연다. 대규모 공연장이 있어 독자 300여 명이 관객으로 참여하는 행사를 진행한다. 김용식 북파크 점장은 “과학 전문 도서를 판매하던 서점에서 복합문화 공간으로 2017년 1월 재단장해 문을 열었는데 반응이 예상보다 뜨겁다”며 “예전보다 현재 매출이 300% 넘게 껑충 뛰었다”고 말했다.

서점이 대대적으로 변신하고부터 줄어들던 매장 수와 매출이 증가하고, 주변 상권의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2017년까지 25개 영업점을 운영했던 교보문고는 매장을 복합문화 공간으로 바꾼 뒤 방문자 유입률이 늘면서 지금은 36개 점을 거느리고 있다. 영풍문고도 2016년부터 현재까지 24개 매장을 새롭게 열었다. 최근 문을 연 서점은 대부분 백화점·복합쇼핑몰 같은 대형 유통 매장에 들어서 상권의 분양과 흥행을 이끄는 ‘키 테넌트(key tenant, 핵심 점포·시설)’ 역할도 하고 있다.



고객 유치, 공실률 감소에 효과적



키 테넌트는 유동인구를 끌어모으는 집객력이 커 상권의 형성과 활성화, 상가 전체의 매출 증가에 기여하는 핵심 점포·시설을 말한다. 종전에는 영화관·아쿠아리움·패밀리레스토랑 등이 키 테넌트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서점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4층 여성 패션 매장 사이에 자리 잡은 서점 반디앤루니스, 패션 아웃렛 가산 마리오 3관 6층에 들어선 영풍문고, 롯데프리미엄아울렛 기흥점에 100㎡ 규모로 문을 연 서점 예스24 등 새로 문을 열거나 재단장하는 백화점과 아웃렛에서 잇따라 서점을 모셔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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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성동 ‘별마당 도서관’


한진 KB부동산 리브온 전문위원은 “복합몰이 단순히 쇼핑하는 곳이 아니라 식사하고 휴식도 취하는 문화와 여가를 소비하는 공간으로 변화하는 추세로, 이 같은 흐름이 서점의 변신과 딱 맞는다”며 “특히 복합문화 공간으로 변화한 대형 서점은 집객 효과가 높아 주변 상점 매출 상승에 기여하거나 복합몰의 공실률을 낮추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화하는 서점 모습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다. 책이라는 주요 콘텐트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서점이 카페 또는 전시관처럼 예쁘게 꾸며져 마치 사진 촬영하기 좋은 ‘포토 스폿’으로만 생각하고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대형 서점에서 만난 이예진(41)씨는 “조용히 책을 고르고 싶었는데 어수선한 분위기에 집중할 수가 없다”며 “요즘 서점은 책을 보러 오는 공간이 아닌 책이 예쁘게 놓인 공간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서점에 마련된 독서 공간에 책 수십 권을 쌓아두고 보지도 않으면서 온종일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 때문에 해당 책을 사려고 온 사람은 오히려 책을 찾기도 보기도 어렵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글=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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