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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술술술] 사랑은 이루지 못하고 시만 남겼네, 통영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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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는 한 잔 술 같은 백석의 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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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들이 정박한 통영의 부두. ⓒ 막걸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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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시를 사랑하여, 통영은 백석의 시를 동피랑 골목 벽에 새겨 놓았다. 백석은 사랑하는 난이라는 여자를 만나러 통영에 갔다. 친구 결혼식에 우연히 만난 이화여고 통영 아가씨를 좋아하여 사랑 시를 쓰고 통영에 가서 통영 시를 남겼다.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백석에게 통영은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었다. 그의 사랑은 성취되지 못했다. 성취되지 못할 운명을 그는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라는 시에 실었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시인은 흰 당나귀가 응앙응앙 울고, 흰 눈이 내리는 것을 사랑이 내게 오고 있다는 징후로 읽었다. 하지만 오지 않으리라는 떨리는 두려움이 그로 하여금 시를 짓게 했을 것이다. 나타샤가 누구일까? 시가 발표되자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나타샤가 자신이라고 생이 다하도록까지 여긴 여자가 있었다.

<내 사랑 백석>이라는 책을 쓰고, 자신이 운영하던 요정을 법정 스님에게 기탁하여, 오늘의 성북동 길상사가 있게 한 자야라는 여성이다. 자야는 열여덟 살에 기생이 되었고, 백석과 동거를 했고, 백석이 함께 만주로 도망가자고 했을 때 거절했고, 분단되어 남북으로 흩어져 평생 혼자 살면서 백석을 그리워했다.

백석의 시편에는 술과 음식 이야기가 제법 나온다. 백석은 맛으로 느껴지는 잔잔한 생의 물결을 치밀한 시선으로 그려낸 시인이다. 그의 시 속에 그려낸 '주막'의 "울파주 밖에는 장꾼들을 따러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평안북도 영변군의 구장로를 여행하면서 배가 출출히 고파지자 이렇게 노래한다.
무엇보다도 몬저 '주류판매업'이라고 써 붙인 집으로 들어가자
그 뜨수한 구들에서
따끈한 삼십오도 소주나 한잔 마시고
그리고 그 시래기국에 소피를 넣고 두부를 두고 끓인 구수한 술국을 뜨근히 멫사발이고 왕사발로 멫살이고 먹자

주류판매업과 35도 소주와 술국, 백석은 주막을 대체하여 주류판매업이 등장했던 1930년대 흔적을 시 속에 남겼다. 그의 '국수'라는 시는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와 더불어 그의 존재를 한국 시문학사에 선명히 아로새긴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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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둥이 좁은 항아리가 예전에 소주를 담던 술춘이다. ⓒ 막걸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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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 도쿄에서 '국수'라는 장문의 시를 벽에 새겨두고 함흥 냉면에서 부산 밀면까지 팔도 국수를 죄다 모아두고 파는 한식당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백석도 놀랄 만한 일이다.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인 백석은 북한에서 결혼하고 두 자녀를 두고 1995년까지 살았다. 북한에서 그의 작품 활동은 분단 전과는 사뭇 다르다. 개인 감성보다는 공동체를 향한 글쓰기가 되어서, 우리의 감성을 움직이지 못한다.

마음이 출출할 때면 백석의 시를 읽는다. 백석의 시는 미묘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한 잔 술 같다. 그의 시는 지축을 울리는 탱크가 아니라, 내 심장에 들어온 얇은 판막, 내 뇌세포가 분비하는 호르몬 같다. 시로 혁명을 논할 수 있고, 술자리에서 혁명을 논할 수 있지만, 이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꽃가루 같다.

싹이 트고 줄기가 뻗어 무성한 여름날을 지나 열매를 맺을 때가 되면, 꽃가루의 시절은 가뭇하게 잊히고 만다. 잊히는 존재, 그리고 잊을 수 있는 존재는 시로 위로받을 만하다. 우리 모두도 잊힐 테고, 그 잊히는 존재를 노래하다 보면 한 잔 술이 생각날 것이다.

허시명 기자(sultou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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