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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치한 스탬프’ 유감…성추행 예방 vs 무고 가능성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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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사진=게티이미지


일본의 한 기업이 ‘치한 스탬프(스탬프)’라는 제품을 개발했다. 도장 모양을 한 이 스탬프는 ‘투명 잉크’를 사용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특수 조명’에 비추면 ‘멈추라는 의미의 손 모양’이 나타난다.

스탬프를 개발한 기업 관계자는 “가방 등에 부착한 스탬프는 경각심을 높여 성추행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무고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 찬반 논쟁이 한창이다.

◆‘치한 스탬프’…경각심 높여 성추행 예방

앞서 일본에서는 치한 예방책으로 ‘옷핀’ 사용을 권하는 만화가 등장해 논란이 일었다. 옷핀을 휴대했다가 피해가 예상되거나 발생하면 대상을 ‘옷핀으로 찌르라’는 만화 내용이 문제시 됐다. 여성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해를 가해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또 ‘상처를 입혀 되레 고소당할 수 있다’는 의견과 ‘예방 차원의 정당방위’라는 의견이 맞섰다.

스탬프는 이러한 논란을 계기로 탄생했다. 지난 19일 산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옷핀은 상대에게 해를 입힌다’는 점에서 반대 여론이 컸지만 스탬프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기능을 더해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스탬프는 지난 8월 27일 시험 판매를 시작한 뒤 30분 만에 500개가 모두 팔리는 등 여성들 반응이 뜨거웠다.

스탬프를 개발한 기업 관계자는 “손잡이를 밝은 노란색으로 만들어 범행을 예방할 목적이 있다”며 “향후 경고음을 넣어 실효성을 검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모델을 만들어 본격적인 판매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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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한 스탬프는 ‘투명 잉크’를 사용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특수 조명’에 비추면 ‘멈추라는 의미의 손 모양’이 나타난다고 전해졌다. 사진=주쿄TV 방송화면 캡처


◆성추행 예방 vs 무고 가능성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일본 전국에서 적발된 치한 범죄는 최근 몇 년간 3000여 건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피해를 봤지만 심적 부담 등을 이유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여성도 있어 피해는 통계보다 더 많을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치한 범죄가 계속되는 가운데 피해를 예방하고 가해자 식별이 가능한 스탬프의 등장에 여성계는 환영 목소리를 냈다.

치한 문제 전문가 이코 겐 변호사는 “여성이 소지한 스탬프를 보고 나쁜 행위를 단념하는 이도 있을 것”이라며 “100% 범죄 예방은 기대할 수 없지만 일부 억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치한 억제 활동센터’ 대표 마츠나가 야요이는 “치한은 심각한 사회 문제 임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관심이 적은 실정”이라며 “기업이 치한 대책을 마련했다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경각심을 높일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만원 전철 등 혼잡한 곳에서 치한을 정확하게 특정할 수 없고 이에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반대 의견이 있다.

◆시민들이 만든 ‘성추행 예방 지도’

그런가 하면 치한 피해를 보거나 목격한 이들이 익명으로 ‘치한 지도’를 만들어 피해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8월 서비스를 시작한 ‘치한 레이더’ 앱은 공개 단 1개월 만에 5만여 명이 가입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위치기반서비스를 활용한 이 앱은 사용자들이 치한 피해를 봤거나 목격한 장소를 지도에 표시해 위험을 알리고 수집된 정보를 경찰에 제공한다. 경찰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순찰 강화 등 조처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앱 개발사 대표는 “치한 피해를 당했을 때 저항하는 건 어렵고 참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며 “치한 예방으로 이어지는 사회 인프라를 충실하게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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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서 나타난 ‘펜스룰’

성추행 등의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여성들 노력에 남성들도 공감한다. 남성들도 피해 줄이기에 동참하며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일부는 피해를 ‘외면’해 우려를 낳고 있다.

‘옷핀 치한대책’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5월 21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이용하던 한 여성이 몸 상태가 악화돼 자리에 주저앉아 도움을 청했지만 외면받는 일이 있었다.

이날 전철에 많은 남성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여성을 돕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쓰러진 여성은 주변 다른 여성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전철에서 여성을 도운 한 여성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옷핀 논란이 한창인 건 알지만 도움을 준 남성을 옷핀으로 찌르진 않았을 것”이라며 “‘치한으로 의심받기 싫다’는 남성들 마음은 이해되지만 도움이 필요한 이를 외면하는 건 매우 아쉬운 일”이라고 전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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