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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국영신문, "극단주의로 종교경찰 월권" 이례적 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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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여성에 '공포의 대상'…온건한 이슬람 국가로 전환 부각

연합뉴스

축구경기장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사우디 여성
[AFP=연합뉴스]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신문이 한때 이슬람 왕정 체제의 감시자로 불렸던 종교경찰에 대한 자성을 이례적으로 실었다.

사우디 국영 아랍뉴스는 건국기념일을 맞아 23일(현지시간)자 3면 전체에 '종교경찰의 부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무타와'로 불렸던 사우디의 종교경찰의 공식 명칭은 '권선징악 위원회'(영어 약자 CPVPV)다.

이 조직은 19세기 사우디 종교계의 주류였던 강한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 와하비즘의 규율과 덕목을 실천하기 위해 이슬람 메카와 리야드를 중심으로 지역적으로 태동했다.

사우디 왕실은 1976년 여러 관련 조직을 '권선징악위원회'로 통합, 정부가 통제하는 공권력에 흡수했다.

주요 임무는 하루 5회 기도 준수, 공공장소에서 남녀 분리, 여성의 아바야(검은색 통옷)와 히잡 착용, 시장의 불법 행위 감시 등으로, '더 나은 무슬림'이 되도록 돕는 역할이었다.

아랍뉴스는 이런 선한 취지의 종교경찰이 월권하게 된 것은 1979년 이후였다고 지적했다.

이해 2월 이란이 이슬람혁명으로 세속주의 왕정이 신정일치의 강고한 시아파 이슬람 통치 국가가 됐다.

이에 자극받은 사우디의 강경 와하비즘 세력은 당시 사우디 왕정이 쿠란과 동떨어져 세속화했다고 비판하면서 그해 11월 이슬람의 최고 성지 메카의 대사원을 무장 점거한다.

이들은 와하비즘을 추종하는 무장조직 이크완의 일파로, 2주간 점거와 도주 과정에서 약 240명이 숨졌다. 이 사건 이후 이슬람 율법을 일상에 엄격히 적용해 사우디가 경직된 시기를 '사흐와'(이슬람 각성)라고 부른다.

아랍뉴스는 "사흐와 시대에 사우디는 종교, 사회적으로 강경한 노선을 채택했다"라며 "이 흐름을 타고 종교경찰도 원래 취지에서 벗어났고 극단주의를 유입해 감시받지 않은 권력을 갖게 됐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믿음이 신실한 이들로 조직된 종교경찰이 이 시기에 사회의 친구에서 적이 됐다"라며 과거 폐해를 반성했다.

종교경찰은 여성의 복장을 단속해 현장에서 체포·구금하고, 외간 여성을 찍을 수 있다면서 카메라가 달린 휴대전화도 금지했을 정도로 엄격한 이슬람 율법 준수를 요구했다.

무엇보다 '암행감찰'로 법적인 근거없이 인신을 임의로 제한할 수 있는 권한 남용으로 일반 시민, 특히 여성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종교경찰이 2002년 메카의 여학교에서 학생들이 아바야를 입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에 불을 질러 15명이 사망한 사건까지 일어났다.

아랍뉴스는 "압둘라 전 국왕이 종교경찰을 온건하게 바꾸려했지만 그들은 시민을 계속 괴롭혔고 차량 추격 끝에 시민이 죽기도 했다. 악기를 부수고, 여성 전용 미용실을 습격해 머리를 밀어버리고 마음대로 채찍질했다"라고 사례를 들었다.

시민의 불만이 커지자 살만 국왕이 즉위한 뒤인 2016년 사우디 정부는 종교경찰의 권한 남용을 막는 개혁 조처를 지시했다.

사우디 국무회의는 ▲종교경찰은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시민을 상대해야 한다 ▲직접 인신을 체포, 신문, 구금할 수 없으며 관계기관과 경찰에 신고할 책임만 있다 ▲검문검색이나 용의자를 추격하지 말고 경찰에 알려야 한다는 내용의 규칙을 의결했다.

아랍뉴스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온건한 이슬람 국가로 되돌아가기 위해 추진하는 '비전 2030' 계획에 따라 종교경찰이 제모습을 찾았다"라며 "종교경찰은 과거와 단절하고 사우디의 건국 초기인 1940년대처럼 종교와 현대화가 공존하도록 정신적 인도자 역할을 한다"라고 평가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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