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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신율의 정치 읽기] 조국 지키려다 여론 악화…스텝 꼬인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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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지난 9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조국 법무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사법개혁·법무개혁 당정협의가 열렸다.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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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지나면 정치판에는 추석 민심에 대한 ‘자기중심적 주장’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추석 직후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 관심은 오직 민생을 향했고 민생 먼저가 절대명령이었다. 그래서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기를 희망했다”고 주장한 반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9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추석 민심 국민보고대회’에 참석해 “조국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은 조국 일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공직자가 연루된 권력형 게이트다. 이제 이 사건은 조국을 넘어 문재인 정권의 문제가 됐다. 이제 우리 국민은 대통령을 의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요약하면 민주당은 추석 민심이 민생에 있다고 하는 반면, 한국당은 ‘조국 사퇴’가 추석 민심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민생의 핵심은 경제다. 경제 문제에서 누구보다도 책임이 있는 쪽은 여권(與圈)이다. 조국 정국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것 역시 여권의 책임이다. 그러니 여당도 ‘본의’ 아니게 추석 민심이 자신들에게 안 좋다는 것을 인정한 꼴이다.

이런 현상은 여당이 조국 장관을 보호하기 급급한 나머지 스텝이 꼬였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여당 스텝이 꼬이고 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하는 부분은 이것만이 아니다. 여당과 법무부가, 검찰이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당과 법무부는 현재 훈령으로 돼 있는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을 폐지하고 피의사실 공표를 엄격히 제한하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규정의 골자는 수사기관이 모든 형사사건 수사 내용을 원칙적으로 언론 등에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란다. 수사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한 검찰 브리핑은 물론 언론 보도마저 제한된다. 국민 입장에서는 ‘깜깜이 수사’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기존 여당 주장과 배치된다.

우선 피의사실 공표 제한 혹은 금지 조치가 시행될 경우 언론의 감시 기능 축소와 그에 따른 언론 자유가 위축될 가능성이다. 지난 2009년 언론계, 학계, 시민단체, 법조계 전문가들이 공청회 등을 통해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의 감시 기능 제한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다 현재의 공보 준칙을 만들었다. 당시도 피의사실 공표에 따른 인권 침해 가능성과 언론 자유 보장 문제가 중요한 이슈였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언론의 감시 기능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리하려는 것 같다. 이는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현 정권 주장에 배치된다.

그뿐 아니라, 피의사실 공표 제한은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축소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조국 장관을 둘러싼 의혹처럼, 세간의 관심이 높고 공익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 국민의 알 권리가 제한된다면, 이는 결코 민주적이라고 볼 수 없다. 이는 자신들이 가장 민주적인 정권이라고 주장하는 여권의 기존 입장과 배치된다.
논란이 거세지자 당정은 조국 사건 이후에 새로운 규정을 적용하겠다고 나섰다. 처음부터 지금 같은 시기에 이런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제 조국 장관 가족과 친인척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 나갈 텐데, 하필 왜 지금 이를 들고나온 것인가. 본래 피의사실 공표 제한 혹은 금지 방안은 박상기 전 법무장관 시절부터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조국 사태가 불거지면서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을 중지했다. 오비이락 의심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박 전 장관이 판단한 것이다. 이런 판단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자신의 가족에 대한 수사 상황을 보고조차 받지 않겠다고 천명한 조국 장관의 법무부가, 하필 지금 다시 추진하겠다고 나선 이유가 궁금하다. 문제 제기가 거세지자 그제야 새로운 규정의 시행 시기를 늦추겠다고 하니, 이 또한 여당이 민심을 잘 읽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내용이다.

여당 스텝이 자꾸 꼬이는 이유 중 하나는 청와대 뜻을 무조건 ‘받들어야’ 한다는 여당의 강박관념 때문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협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당과 청와대가 ‘일심동체’가 돼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청와대가 추진하기를 원하는 사안이 있다 해도 그것이 여론과 다를 경우 여당은 여론에 보다 충실할 필요가 있다. 여당은 표를 먹고 사는 존재인 반면, 대통령 단임제 아래 청와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이 가진 권력은 5년이지만, 정당으로서 여당의 생명력은 그보다 훨씬 길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당은 여론에 민감해야 하는 정당으로서의 본래적 숙명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조국 장관 지키기에 당력을 집중한 듯싶다. 따지고 보면 조국 장관 거취 문제만이 아니라, 청와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민주당이 총대를 메는 모습을 보여왔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는 스텝이 꼬이는 것만이 아니다. 이러다 보면 정치가 실종된다.

정치란 협상을 통해 타협을 도출하는 것이어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술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집권 여당은 청와대 의도에 충실하기 위해 대부분 시간을 야당과의 협상을 위해 사용하기보다 야당을 밀어붙이는 데 사용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야당의 청와대 앞 시위다. 자유한국당은 물론 바른미래당도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도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한 바 있다. 이는 야당이 유명무실한 여당을 상대하기보다는 청와대와 직접 상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기에 발생한 현상이다.

황교안 대표의 삭발도 청와대 앞에서 이뤄졌다. 이 역시 ‘여당 부재’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모습이다. 야당 대표의 삭발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런 ‘삭발 사건’을 두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려 한다느니, 아니면 조국 장관 임명 이후 한국당 지도부에 쏟아지는 비난을 모면하려는 술수라느니 하며,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 부재 상황에서 제1야당이 할 수 있는 항거 방식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비난은 정치가 실종된 상황에서 야당이 혼자 정치하겠다고 외쳐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무시한 주장이다. 황 대표 삭발을 두고 정의당은 “머리 깎은 김에 군입대 선언이라도 해라”라고 비아냥거리는 비판을 했는데 이것도 문제다. 이는 공당으로서 현재 정치 상황에 대해 당연히 가져야 할 책임의식을 간과한 주장일 뿐 아니라, 여당 책임을 거론해야 할 야당이 할 수 있는 언급은 아니다.

MBC 의뢰로 코리아리서치가 지난 9월 14일부터 이틀간 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9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RDD 전화면접 방식으로 진행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결과를 보면 조국 장관 임명은 ‘잘못한 일’이라는 의견이 57.1%로, ‘잘한 일’이라는 답변 36.3%보다 20%포인트 이상 높았다. 그 이전 다른 기관에 의해 행해진 여론조사 결과와 비교해볼 때 이번 결과는 조국 장관 임명 반대 여론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여당이나 이른바 범여권이라고 불리는 ‘여당 성향 야당’은 이런 여론 추세에 둔감한 것 같아 안타깝다.

정당은 여론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여론을 존중해야 하는 존재다. 이들 정당은 스스로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하고 있는가 돌아봐야 한다. 더구나 조국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여론에 거스르는 입장을 취한 정당들이 감내해야 하는 위험 부담은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정당들은 여론 추이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국민 여론에 거스르는 정당의 생명력은 짧을 수밖에 없다. 또 민주당은 여당 아닌 정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현 정권이 출범할 때 언급한 ‘기회는 균등하며,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을 실현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아무리 검찰개혁이 중요하다 해도 지금 국민이 겪고 있는 현실을 ‘공정한 과정’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진영 논리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 작금의 조국 사태는 진영 논리로 해결되거나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집단이성을 진영이라는 이름으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6호 (2019.09.25~2019.10.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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