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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TEN 인터뷰] ‘장사리’ 김명민 “사명 갖고 연기...17세 학도병들의 희생 기억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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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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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에서 이명준 대위 역으로 열연한 배우 김명민.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한 양동작전으로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서 펼쳐진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된 학도병의 이야기를 다뤘다. 참전한 학도병은 772명, 훈련기간은 2주, 평균 나이는 17세였다. 김명민은 “영화 촬영임에도 학도병들의 모습이 짠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명민은 영화에서 출중한 리더십과 판단력, 따뜻한 마음으로 학도병들을 지휘하고 보듬는 이명준 대위 역을 맡았다. 그는 주인공이지만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부각시키는 보조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김명민은 분량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카메라가 학도병들을 연기하는 보조출연자의 얼굴 하나하나를 우직하게 따라가는 걸 보며 ‘이 어린 민초들이 나라를 지켰구나, 같은 민족끼리 총대를 겨눈 비극이 있었구나’ 하는 게 감독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는 걸 알았다”며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고통을 통감할 수 있어 즐거웠다”고 말했다.

10. 전형적인 전쟁영화는 아니다. 스펙터클한 볼거리보다 전쟁이 만든 아이러니한 상황, 전장에서 인물들이 겪는 고뇌를 보여준다. 이 영화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김명민: 눈물샘을 자극하는 몇 명의 히어로가 아니라 772명이 주인공인 영화다. 화려한 설정은 관객들에게 스펙터클하게 다가갈 순 있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고 역사적 사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과한 설정을 했다가는 원래 만들려는 취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감독님은 학도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

10. 지난 6일 경북 영덕에서 열린 전승기념식에 참석하고 지역 주민, 참전용사들을 모시고 시사회를 가졌다.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김명민: 69년 전 바로 그곳에 계셨던 분들을 만났다. 생존 참전용사들께서 먼저 간 전우에게 편지를 낭독하는데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다. 참전용사들께서는 희생이 덧없다고 느낄 만큼 이 사건이 묻혀 가슴 아팠는데 영화를 통해 이제야 국민이 알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이제야 먼저 간 전우들에 대한 죗값을 치를 수 있게 됐다고 말씀하셨다.

10. 실제 장사해변을 본 느낌은 어땠나?
김명민: 물이 깊고 상륙 조건이 좋지 않아 보였다. 당시 태풍이 와서 문산호가 좌초되는 상황이었다는데 어떻게 상륙을 했을까 싶었다. 촬영하면서 당시를 재현했지만 수조에서의 촬영이 실전만 하겠는가. 강풍기, 포크레인을 동원하고 촬영살수차도 10대는 넘게 온 것 같다. 인위적으로 만든 환경에서의 촬영이었는데도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우리야 컷하면 끝이지만 실제 그 분들은 총탄을 맞으면서 해변으로 올라왔지 않겠는가. 촬영하면서도 내내 도대체 어떻게 했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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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스틸.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10. 곽경택 감독이 공동연출로 합류한 것도 이 영화가 주목 받고 있는 대목인데 현장에서 곽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했나?
김명민: 기교부리지 말자고 했다. 영화는 3일치 보급품만을 갖고 상륙한 학도병이 문산호가 좌초된 탓에 6일간 버티게 된 상황, 터널을 봉쇄해 적의 보급로를 차단한 일, 퇴각하면서도 혈전을 벌인 일 등 세 부분으로 초점을 맞췄다. 주제는 정해져 있었다. 가슴 아픈 역사와 어린 아이들의 희생정신. 감독님이 합류할 때쯤 나도 들어가게 됐고,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촬영하면서 점점 이렇게 엄청난 역사를 왜 우린, 우선 나부터 몰랐을까 오기까지 생겼다.

10. 이명준 대위는 실존인물인 이명흠 대위를 모델로 만든 캐릭터다. 사료가 부족해 연기할 때 어려웠을 것 같은데.
김명민: 사료가 부족한 실존인물을 연기하면서 캐릭터의 방향성을 쉽게 잡을 수 없어 짜증까지 났다. 어떤 분이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희생을 치렀던 이 작전에 대한 재판이 열려) 이명흠 대위님은 사형을 구형받게 됐고, 나중에 면책을 받은 후에는 참전 학도병들의 군번을 지급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고 한다. 이 외의 디테일한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고 이에 리더로서의 이성적 모습을 보여주자고 감독님과 이야기했다.

10. 이명준 대위의 이야기는 자세히 다뤄지지 않는데 혹시 더 많은 내용이 있었나?
김명민: 편집이 좀 됐다. 하지만 이 사연 저 사연 다 들어갔다면 밸런스가 깨지고 러닝타임은 2시간이 넘어가고 여타 전쟁영화와 다르지 않게 됐을 것이다. 학도병 연기자, 보조출연자들의 얼굴까지 다 잡히면서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날 것의 느낌이 나서 좋았다. 배우로서야 연기 욕심을 안 내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하지만 철저하게 학도병이 중심이 되는 영화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분량에 욕심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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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을 신경 쓸 것 같다고 하자 김명민은 “잘 되면 좋지만 인기를 얻으려고 작품을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책임감을 느끼지만 일희일비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10. 학도병 분대장 최성필 역을 맡은 최민호는 입대까지 미루며 영화에 참여했을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옆에서 보니 어땠나?
김명민: 장하다. 이런 영화에 참여한다는 것은 개인의 욕심보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사회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내놓은 것이다. 책임감이라고 할 수 있다. 비주얼이 돋보이거나 혼자 두드러질 수 있는 영화도 아닌데, 단순하게 생각했다면 이 고생스러울 영화에 들어오진 못했을 것이다. 이 작품에 참여한 모든 배우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여자인데도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장한 학도병 문종녀 역을 맡은 (이)호정을 비롯해 많은 배우들이 얼굴이 비춰지든 안 비춰지든 열심히 했다. 김성철(학도병 기하륜 역)은 배우로서 훌륭한 자질을 갖췄다. (사투리를 하는 캐릭터 때문에) 사투리를 녹음해 다니면서 계속 반복해서 듣고 연습하더라. 분장실에서도 (캐릭터 설정에 맞춰) 몰입해서는 삐딱하게 앉아서 대사 연습을 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10. 최근 출연한 영화들은 주로 시대극이다. 다음 작품은 어떻게 되나?
김명민: 조범구 감독의 ‘도쿄대첩’을 같이 하기로 약속했다. 좀 미뤄져서 내년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전에 하나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10. 이 영화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장사상륙작전을 알게 될 것이다.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특정되면서 ‘살인의 추억’도 재주목 받고 있지 않나. 예술인으로서 대중문화의 사회적 역할을 절감했을 것 같다.
김명민: 문화콘텐츠는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갖고 있으므로 드라마나 영화, 특히 ‘장사리’ 같은 작품은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만들어야 한다. ‘살인의 추억’은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역작인 데다 개봉한 지 16년이 지났는데 뉴스에서 사건을 보도할 때 계속 언급할 만큼 그 사건을 잘 다루고 있다. ‘장사리’도 그랬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는 우리의 어마어마한 역사 한 부분이 담겨 있다. 그 역사로 인해 현재 우리와 우리나라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잊혀졌다. 영화와 영화에 담긴 이야기가 10년, 20년이 지난 뒤에도 회자됐으면 좋겠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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