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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직원 대신 기계 투입해야 하나”…중기 52시간제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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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99명 기업 확대시행 D-100

중기 39% “아직 준비 못 마쳤다”

인건비 부담 급증에 속앓이만

직원들 “일감 줄었는데 마음 불편”

전문가 “속도 조절 필요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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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 1일부터 직원 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확대 적용된다. 경남 밀양의 중소기업 삼흥열처리도 이에 대비해 근무 체계를 바꿨다. [사진 삼흥열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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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의 금속 열처리 업체 삼흥열처리는 최근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비한 ‘예행연습’을 시작했다. 직원 110명인 이 회사는 내년 1월 1일부터 주 52시간제 적용 대상이 된다. 생산직 직원 80명이 2교대로 1인당 주 72시간을 일해 주문량을 맞췄지만, 요즘은 48시간으로 줄였다. 40명씩 2개 조 체제에 1개 조를 추가해 3개 조로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 주보원 대표는 “직원을 갑자기 수십 명씩 뽑기엔 부담이 커서 우선 인력회사를 통해 시범 운영해보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체 인건비는 월 5000만원 늘었지만, 1인당 급여는 줄어 직원 분위기도 팍팍하다. 초과근로 수당을 제외하니 기존에 월 460만원 받던 직원 월급은 240만원까지 떨어졌다. 주 대표는 통상임금이 더 낮아지기 전에 직원 요구에 따라 퇴직금 중간정산을 해줬다. 주 대표는 “월 300만원대로 월급도 맞춰주고, 한꺼번에 14억원 이상 들여 퇴직금 중간정산도 해주고 나니 인건비 부담이 급증했다”면서 “주변에선 회사마다 52시간제 대비로 속앓이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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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제 적용 시기.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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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대기업과 공공기관부터 시작된 주 52시간제가 100일 뒤부터는 상시근로자 50~299명인 중소기업에 확대 적용된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이 52시간제를 준비하지 못해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의 19일 발표에 따르면 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 중 39%는 주 52시간제를 아직 ‘준비 중’이거나 ‘현재 준비 못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근무체계를 개편하거나 인력을 새로 채용해야 하는데, 중소기업은 ‘인건비 부담(53.3%)’과 ‘주문량 예측 부족(13.7%)’을 이유로 52시간제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중소 제조업체는 근로시간을 줄이면, 신규 설비에 투자하거나 직원을 더 뽑지 않는 한 기존 생산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밀양의 삼흥열처리처럼 자금 여력이 있는 경우는 나은 편이다. 소규모 업체는 생산량을 아예 줄이거나 사람 대신 기계를 투입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이렇다 보니 근로자 1인당 근로시간을 줄인다고 해도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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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의 자동차부품 생산업체 수도금속은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25명의 직원이 하루 평균 11시간가량 일한다. 이영창 수도금속 대표는 ’앞으로 초과근무를 하지 못하면 생산량을 줄여야 하는 건지 막막하다“고 했다. 사진은 이 대표가 생산품을 들어 보이는 모습. 임성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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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부터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벌써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19일 찾은 서울 구로구의 자동차부품 생산업체 수도금속은 직원 25명이 하루 평균 11시간가량 근무해 주문량을 맞추고 있었다. 이 회사 이영창 대표는 “45년째 같은 자리에서 하는 사업인데, 최근 그만둘 생각까지도 했다”며 “주 52시간제가 우리한테도 적용되면 현재의 생산량을 맞추기 어려울 텐데, 직원을 더 뽑느니 새 생산 장비를 들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재 65세 안팎인 고령 직원이 일을 그만두더라도 직원을 추가로 뽑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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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방문한 서울 구로구의 D업체 공장에는 직원 2명이 일하고 있었다. 임성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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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주 52시간제를 시행한 이후 소규모 협력업체 일감도 줄었다. 서울 구로구에서 금형제조를 하는 D업체는 대기업이 주 52시간제를 시행한 지난해부터 주말과 야간작업을 하지 않는다. 이 회사의 이모 대표는 “주문량을 맞추느라 주말, 야간에도 늘 돌아가던 공장인데 올해는 대기업의 원자재가 공급이 감소해 공장 가동도 줄였다”며 “요즘처럼 일감이 없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만든 원자재를 가공해 다른 고객사에 공급하는 일의 특성상 대기업의 원자재 공급 속도가 늦어지면 이 회사 공장의 가동률도 영향을 받는다.

사정을 뻔히 아는 직원들 마음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직원 백모(55)씨는 “일하는 시간이 줄고 월급은 그대로이거나 올랐지만, 회사 상황을 알기에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가족 같은 직원을 줄일 수도 없지만 늘리지도 않을 것”이라며 “최근 일본에서 새 자동화 설비를 들여오려고 주문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런 중소기업 상황을 고려해 주 52시간제를 섬세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 52시간제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정책”이라며 “주 52시간제를 유지하려면 근로 시간의 변동성이 큰 중소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이제라도 섬세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보완 수단을 적절히 활용하고 대기업처럼 중소기업에도 주 52시간 적용 계도기간을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2월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주 52시간 근로에 따른 기업의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탄력근로제를 적용하는 단위 기간을 현재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국회에 탄력근로제 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몇 해에 걸쳐 확대 적용해야 할 주 52시간제가 다급하게 진행되고 있다. 숨 고르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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