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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광주 '5·18 추모탑 표절' 논란…경찰 수사 석 달째 제자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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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이동일 교수, 저작권법 위반 고소

나상옥 작가 "표절 아니다. 5월정신 훼손"

광주 북부서 "응모작에 이 교수 작품 없어"

경찰 "부산 건축사무소장과 대질 신문키로"

중앙일보

이동일 부산대 명예교수가 "5·18 추모탑을 디자인한 나상옥 작가가 작품을 표절했다"며 근거로 제시한 본인 작품 투시도(왼쪽)와 5·18민주묘지 중앙에 있는 추모탑. [사진 이동일 교수,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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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민중항쟁 추모탑(이하 5·18 추모탑)은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중앙에 있는 40m 높이의 조형물이다.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5·18묘역 성역화 사업'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광주시는 그해 '5·18 추모탑 조형물' 공모를 통해 조각가 나상옥(61)씨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해 사업비 15억원을 들여 1997년 5월 16일 추모탑을 세웠다. 매년 5·18 기념식은 이 추모탑 앞에서 열린다.

5월 정신을 상징하는 5·18 추모탑 표절 공방이 석 달째 이어지고 있다. 표절 의혹을 제기한 부산대 미술학과 이동일(80) 명예교수의 작품이 24년 전 당시 공모에 출품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 교수가 "나상옥 작가에게 내 작품을 보여줬다"며 표절의 '연결 고리'로 지목한 부산 지역 건축설계사무소장에 대한 경찰 조사가 남아 있어서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23일 "지난 1995년 광주시가 주관한 '5·18 추모탑 조형물' 공모에 출품된 작품 목록 확인 결과 이 교수의 작품은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달 광주시에서 200~300쪽 분량의 공모 관련 자료를 받아 분석해 왔다.

당시 공모에는 17~18개 작품이 출품된 것으로 확인됐다. "대부분 광주·전남 지역에서 응모했고, 서울·경기에서 한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부산·경남 쪽 출품작은 하나도 없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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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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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이 교수가 지난 6월 11일 "5·18 추모탑을 디자인한 나상옥씨가 내 작품을 표절했다"며 나 작가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하면서 불거졌다. 검찰은 피고소인인 나씨 주소지가 있는 광주 북부경찰서에 사건을 넘겼다.

"당시 공모에 내기 위해 부산 모 건축설계사무소 Y소장에게 건넨 탑의 투시도(설계도) 패널을 나씨가 모방했다"는 게 이 교수 주장의 골자다. 앞서 그해 3월 '공동 출품'을 제안한 Y소장은 7개월 뒤인 10월 "우리 안이 낙선됐다"며 이 교수에게 투시도 패널을 돌려줬다고 한다.

이 일을 잊고 지내던 이 교수는 "2009년 5월 매스컴을 통해 5·18 추모탑을 처음 본 순간 내가 오래전 만든 디자인과 너무나 똑같아 당시 공모에 냈던 디자인이 도용 또는 원용됐다고 의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Y소장이 이 교수의 작품을 공모에 내지 않고, 나상옥 작가나 다른 사람에게 보여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기단부 상단 꼭지 부분 좌·우측이 예각으로 절단된 점, 기단부 중간 부분이 다이아몬드(◆) 형태인 점 등을 표절 근거로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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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5·18민중항쟁 추모탑을 디자인한 나상옥 작가가 내 작품을 표절했다"며 나 작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이동일 부산대 명예교수가 직접 그린 투시도 원안. [사진 이동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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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나 작가는 "표절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그는 "(탑이) 비슷하냐, 비슷하지 않냐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먼저 (제작)했느냐 판단해 볼 문제"라며 "이 교수가 먼저 작품을 발표했다거나 귀감이 되는 장소에 그런 탑을 세웠다면 제가 보고 베낄 수 있는데 그런 객관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나 작가는 "(5·18 추모탑은) 당시 광주미술인공동체 조각 분과 10여 명이 공동으로 만들었다"며 "부산까지 가서 건축사무소 업자(Y소장)를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40m 공간에 탑신·제단·벽면 등 부수적인 것들이 많고, 모습도 (이 교수 작품과) 닮지 않았다"며 "그 시절 5·18 탑을 제작하려고 했다면 5월 정신을 알아야 하는데 이 교수가 이 정신을 아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에 이 교수는 "광주시민을 모독한 일이 없다"며 "난 오로지 나 작가가 내 작품을 표절했다는 게 초점"이라고 발끈했다.

경찰은 고소인 조사만 마친 상태다. 이 교수 측 변호인은 "Y소장이 나씨 등과 공모해 이 교수 작품(디자인)을 복제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하지만 Y소장은 "이 교수를 전혀 모른다"고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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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지난 7월 22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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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양쪽 주장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이 교수와 Y소장 두 사람을 불러 대질 신문을 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나 작가와 함께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Y소장을 고소해 현재 Y소장 주소지 관할 부산 모 경찰서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이 종결되면 대질 신문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Y소장의 혐의 유무가 나와야 추모탑 표절 여부도 따질 수 있다"는 취지다.

광주 북부경찰서 관계자는 "부산에서 하는 (Y소장 사건) 수사가 끝나는 대로 이 교수와 Y소장의 대질 신문을 거쳐 사건을 마무리 짓겠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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