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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최소 20년∼반세기 걸리는 ‘장수 연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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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후배 과학자 바통 이어가며 연구… 동물 노화-수명연구 등 성과 톡톡

500년짜리 실험 프로젝트도 추진

동아일보

영국 에든버러대 연구팀은 스코틀랜드 서부 섬에 사는 양 800마리를 26년째 연구하고 있다. 사진은 연구팀이 관찰하고 있는 양 중 한 마리다. 사이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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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미국 과학자들은 미국과 캐나다에 사는 새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529종에 이르는 새들을 관찰하고 그 내용을 세세히 기록했다. 워낙 장기간에 걸쳐 이뤄진 연구이다 보니 1세대 연구자들은 이미 은퇴했고 제자들인 2, 3세대 과학자들이 뒤를 이었다.

케네스 로젠버그 미국 코넬대 조류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이끄는 연구팀은 최근 50년간 미국과 캐나다에 서식하는 새의 개체수가 29% 줄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19일자에 발표했다.

이들이 관찰한 변화는 충격적이다. 2018년 북미 지역에 서식하는 새 개체수는 약 70억 마리로 1970년에 비해 29억 마리가 줄었다. 연구팀이 이런 수치를 얻는 데까지는 연구자가 세대교체를 거듭하며 반세기 동안 축적한 데이터가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번 연구 결과를 보면 참새, 휘파람새, 찌르레기, 종달새, 쏙독새, 칼새 등 12종의 개체수가 가장 크게 줄었다. 반면 대머리독수리 같은 맹금류와 오리나 거위 같은 물새류는 오히려 개체수가 늘어나기도 했다. 로젠버그 연구원은 “일찍부터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해 관리를 받은 조류는 개체수가 늘었다. 이번에 개체수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조류에 대한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넬대 조류학연구소는 1915년 설립돼 100년이 넘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조류 연구기관이다. 로젠버그 연구원을 비롯해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들도 50년 전 선배 과학자들이 착수한 연구를 이어받아 이번에 결과를 냈다. 로젠버그 연구원은 “단기 연구로는 인간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알아내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활용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이처럼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간 이뤄지는 연구들이 값진 성과를 내고 있다. 노화와 수명 연구처럼 장기간의 환경 요인이 인체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나 프로이 영국 에든버러대 진화생물학연구소 연구원도 26년간 스코틀랜드 서부의 세인트 킬다 군도에 사는 양을 관찰한 연구 결과를 최근 내놨다. 연구팀은 양 800마리의 삶과 죽음의 주기를 관찰하면서 노화가 양의 면역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양은 나이가 들면 기생충에 대한 면역저항이 떨어지고 전반적인 건강 상태와 관계없이 겨울철 생존율이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에든버러대에서는 ‘500년간 진행될 실험 프로젝트’도 추진되고 있다. 찰스 코켈 우주생물학과 교수 연구팀은 박테리아의 일종인 크루코키디옵시스와 고초균이 들어 있는 완전 밀폐 유리병을 만들고 2514년에 열어보기로 했다. 동결 건조한 박테리아에 수분을 공급하고 얼마나 많은 박테리아가 살아나는지, DNA가 500년 전과 비교해 얼마나 손상됐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다. 이 실험에서 2년간 박테리아 생존 능력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토마스 반 뵈켈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환경시스템과학부 교수 연구팀은 2000년부터 2018년까지 농장에서 기른 돼지와 닭을 조사한 결과 항생제 내성을 가진 병원체를 소유한 개체의 비율이 50% 이상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세계 돼지와 닭의 절반 이상이 사는 중국과 인도, 브라질, 케냐에서 내성을 가진 개체들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뵈켈 교수는 “항생제의 오남용이 늘어나며 약에 내성을 가진 돼지와 닭이 늘어나고 있다”며 “돼지와 닭을 소비하는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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