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8 (목)

8명 사망 액상전자담배…미국 판매중지, 한국 자제권고뿐 왜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미국서 젊은층 중심 중증 폐질환 이어져

FDA, 내년까지 '과일향' 제품 한시적 판금

정부도 20일 환자 모니터링 등 대책 제시

인체 유해성 분석 남아, 국내 보고 사례 X

미 '새 흡연자 유도' 근거 즉시 규제 가능

국내선 지자체 신고만..."법 개정해 바꿔야"

중앙일보

서울의 한 매장에 진열된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에선 최근 액상형 전자담배가 이슈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반 궐련담배에 비해 정부 관심 바깥에 있던 이들 제품은 청소년과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미 CDC(질병통제센터)에 따르면 2017~2018년 기간에만 고교생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이 78% 늘어났다. 그러면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에 따른 것으로 의심되는 중증 폐 질환 환자(20일 기준)가 530명, 사망자는 8명이 발생했다. 이웃 캐나다에서도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한 10대 청소년이 중증 폐질환에 걸리는 등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환자 3명 중 2명은 18~34세다. 18세 미만도 16%에 달한다. 미국 최대 소매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전자담배 제품 판매를 중단키로 했다.

인체 유해성 논란이 커지면서 미 FDA(식품의약국)는 지난 11일 청소년에게 인기 있는 가향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 금지 계획을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사람들이 아프게, 청년들이 병들게 내버려 둘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도 경계에 나섰다. 보건복지부ㆍ식품의약품안전처도 20일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자제 권고와 함께 폐 질환자 모니터링, 제품 함유 물질 유해성 분석 등의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국내에선 미국과 달리 즉각적인 판매 중단 조치는 빠졌다. 정부는 "국내 중증 폐질환자 모니터링 결과와 외국 추가 조치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필요한 경우 판매 금지 등 강력한 추가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미국의 대응이 다른 이유로 두가지 요인을 꼽는다. 첫 번째는 인체 유해성 증명이다. 미국에서 나온 중증 폐 질환자와 사망자는 모두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했다. 하지만 전자담배에 들어가는 니코틴 액상 속 성분 가운데 어떤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로선 대마초 성분(THC)과 니코틴, 액상에 들어가는 비타민E 오일과 액상 주원료인 PGVG 등 4가지 물질이 의심받고 있다. 일단 정확한 결론은 CDC와 FDA 분석을 지켜봐야 한다.

백유진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대한금연학회장)는 "크게 봤을 때 가향 물질이 문제인지, 액상 자체가 문제인지에 따라 규제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가향이 문제라면 여성, 청소년 등이 쉽게 접근하는 통로를 막을 수 있고 액상이 원인이면 해당 시장 자체가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료기관에서 의심 환자를 발견하면 질병관리본부에 보고하는 체계를 만들기로 했다. 아직 국내에서 액상형 전자담배에 따른 것으로 의심되는 폐 질환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환자 사례 수집 등이 활발히 이뤄져야 인체 유해성을 빨리 알 수 있다.

중앙일보

서울시내 한 편의점에서 진열된 액상형 전자담배.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또다른 요인은 한국의 제도적 한계다. 미국은 담배 제품 출시 전 두 가지 허들을 넘어야 한다. 정부가 담배 업체의 허가 신청서를 받아 제품이 새로운 흡연자를 유발할 것인지(PMTA), 기존 출시 제품들보다 덜 해로운지(MRTP) 등을 확인한다. 이를 통과해 출시하더라도 업체의 신청 내용과 달리 시장에서 새로운 흡연자를 끌어들이는 것으로 나타나면 정부가 언제든 판매 중지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다.

11일 나온 미국의 가향 전자담배 규제도 이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과일향 등을 넣은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이 급증했기 때문에 “공중 보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가향 제품을 내년 5월 재허가 전까지 제한적으로 판매 중지했다. 다만 담배향ㆍ멘솔향 등 다른 액상형 전자담배는 계속 판매할 수 있다.

국내 출시 과정에는 이러한 절차가 없다. 중앙 정부 대신 지방자치단체에 신고만 하면 된다. ‘공중 보건 위협’ 등의 이유로 제품 회수나 판매 금지를 긴급하게 내릴 근거가 현행법에 없다. 인체 유해성을 확실히 알 수 없는 신종 담배가 느는 데다 통계도 잘 잡히지 않지만 규제 장치는 아예 구멍이 뚫려있는 셈이다. 이성규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최대한 빨리 국민건강증진법을 개정해서 이번처럼 국민 보건이 심각한 위협을 받을 것으로 우려되면 판매 철회 등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 정부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관련 대책

-모든 국민에 사용 중지 권고

(아동ㆍ청소년, 임산부, 호흡기질환자는 금기시)

-제품 사용자, 건강 이상시 의료기관 방문

-의료인, 제품 관련 폐 질환 의심 사례 정부에 보고

-제품 주요 성분의 인체 유해성 분석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