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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화성 용의자’ 자백 끌어내기 치열한 수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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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의 모르쇠… 경찰 수사 난항 / 혐의 부인 처벌 근거 없는 점 악용 / DNA 확인 3건 들이대도 ‘무덤덤’ / 9건 중 4건 용의자 통근길서 발생 / 추정 혈액형과 달라 수사망 빠져 / 자료들 다시 훑어보며 전략 고심

세계일보

1987년 1월 5차 사건 현장인 경기 화성 황계리 현장을 경찰이 살펴보고 있는 모습. 화성=연합뉴스


경찰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특정하고도 이렇다 할 수사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경찰 안팎에서는 이씨가 역대 국내에서 발생한 흉악범죄의 모든 수사기록을 갈아치울 정도의 대대적인 수사망을 피했던 전력을 감안할 경우 이번에도 경찰수사를 빠져나갈 수 있다는 계산아래 경찰의 ‘용의자 특정’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2일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 18일 이모(56)씨를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용의자로 특정했다는 언론 보도 이후 3차례에 걸쳐 용의자를 대면조사했다. 이씨는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이 DNA 확인 결과를 제시했으나 무덤덤한 반응이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대면조사가 어려운 주말 내내 수사자료 검토에 집중했다. 부인으로 일관하는 용의자의 자백을 끌어내기 위한 결정적 ‘한 방’을 찾아내자는 전략에서다.

통상 용의자가 특정되기까지 수사가 더디고 힘들지만 용의자를 특정한 이후에는 수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게 관례다. 그만큼 수사기관의 ‘용의자 특정’은 사건해결의 9부 능선을 넘을 때 이뤄진다. 이번 수사도 마찬가지다. 현장의 증거물들을 국과수에 보내 화성에서 발생한 전체 10건의 범행 가운데 3건이나 일치하는 유전자를 발견했다.

경찰이 이 DNA 일치뿐 아니라 화성연쇄살인사건과 관련한 여러 정황을 고려해 이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무기징역 판결이 내려진 1994년 청주에서의 처제 살인사건의 경우 엽기적인 면에서 화성살인사건과 닮았다. 스타킹을 이용한 사체 처리나 유기된 형태 등이 일반적 살인 사건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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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 연합뉴스


화성 연쇄살인 사건 중 모방범죄로 드러난 8차 범행을 제외한 나머지 9차례 범행이 모두 진안리 반경 10㎞에서 이뤄진 것도 이씨를 용의자로 특정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됐다. 이씨는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 진안동)에서 태어나 1993년 충북 청주로 이사하기 전까진 줄곧 거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화성사건 발생 당시 이씨는 인근 태안읍 안녕리의 한 전기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회사 통근길로 추정되는 경로에서 1·2·3·6차 사건이 발생했다.

이 같은 정황에도 이씨가 3차례나 수사본부 관계자들을 만나 담담하게 화성범행을 부인한 것은 화성사건 범행 용의자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나름의 계산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씨와 관련해 불거지고 있는 혈액형 문제와 공소시효 만료 내용을 이씨가 알고 경찰을 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화성사건 당시 경찰은 4·5·9·10차 사건 범인의 정액과 혈흔·모발 등의 감정을 통해 용의자의 혈액형을 B형으로 추정했다. 반면 이씨의 진짜 혈액형은 O형이다. 이 같은 혈액형의 불일치는 이씨가 화성사건 당시 대대적인 수사망을 빠져나가게 된 대표적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 공소시효 만료가 지나 범행을 부인해도 더 이상 자신에게 형사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판단으로 “해볼 테면 해보라”는 의도가 있다는 게 경찰 수사관들의 견해다. 경찰이 이씨의 자백 등을 통해 수사진전을 이룰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수원=김영석 기자 lovek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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