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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땐 돈이 없고, 나이 들어선 소득이 넘고”… 신혼부부 울리는 ‘특공 청약’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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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윤모(36)씨는 ‘신혼부부 특별공급 청약(이하 신혼 특공)’을 바라보며 6년째 ‘전세살이’ 중이다. 슬하에 4살 딸을 하나 둔 윤씨는 “서울 집값이 비싸 덜컥 살 수도 없었을뿐더러 무주택이어야만 특공 자격이 돼 전세를 택했다”며 “내년이 ‘특공 막차’”라고 조급해했다. 혼인신고 후 7년까지만 신혼 특공에 도전할 수 있어서다.

윤씨는 “신혼 특공에 실패하면 경쟁률이 훨씬 센 일반공급 청약 등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실질적으로 내년이 청약에 당첨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요샌 로또와 청약 중 어떤 게 당첨이 빠를지 잘 모르겠다.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내 집 마련을 ‘운’에 맡겨야만 하는 현실이 서럽다”고 답답해했다.

◆‘분양가 상한제’ 앞두고 분양 물량 크게 늘었지만... “결국 ‘남의 떡’”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건설사들의 ‘밀어내기’ 분양으로 수도권에 아파트 분양 물량이 대거 늘어날 전망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9월부터 10월 사이에 이미 분양을 했거나 예정인 물량은 서울 7736가구, 경기 3만 5266가구(지난 16일 기준)로 예고된 수치를 크게 웃돌았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 이번이 청약을 통한 ‘내 집 마련’의 좋은 기회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정작 실수요자들은 속이 쓰리다. 공급 물량이 늘어도 신혼 특공 지원 기준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져 결국 ‘남의 떡’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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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없으면 당첨 꿈도 못 꿔… ‘만점’은 비현실에 가까워

신혼 특공은 크게 국민주택과 민영주택으로 나뉜다. 모두 결혼 후 단 한 번도 주택을 소유한 적이 없고, 소득 기준도 맞춰야 청약을 넣을 수 있다. 미성년 자녀가 있어야 1순위며, 자녀 수는 많을수록 유리하다. 1순위끼리도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신혼 특공에서 자녀가 없는 신혼부부에게 당첨은 사실상 ‘먼 나라’란 이야기다.

일반적인 국민주택 가점표상 만점은 13점이지만 이를 받기는 매우 어렵다. 결혼 3년이 넘지 않은 시점(3점)에 △아이 셋을 낳아(3점) △전세나 월세로 해당 지역에 3년 이상 거주하면서(3점) △맞벌이 평균 소득은 월 670만원을 넘지 않아야 하고(1점) △24회 이상 납입한 청약 저축 통장이 있어야(3점) 만점이다. 청약 전문가들은 “서울 등 인기 지역은 11점대도 커트라인 턱걸이인 경우가 많다”며 “10점대 지원자는 차고 넘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한다. 결국 12점은 돼야 안심할 수 있다는 거다.

◆대출 제한에 당첨돼도 현금 없어 우는 신혼부부… “‘금수저’ 위한 정책”

가혹한 대출 기준도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 등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40%로 묶여있다. 주택담보대출을 주택 시가의 40%밖에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최근 입주자 모집을 마친 서울 강동구 ‘고덕 강일 공공주택지구 4단지’ 국민주택의 26평대(59A) 주택가격은 4억7828만원. 최대 230대 1 경쟁률을 뚫고 청약에 당첨된다고 가정해도, 대출액을 뺀 약 3억원의 현금이 수중에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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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과 2살인 두 딸을 둔 직장인 정모(33)씨는 “신혼 땐 현금이 부족해 청약은 꿈도 못 꿨고, 아이가 생기고 나이가 드니 소득 기준이 초과해 특공에 지원할 수도 없다”며 “일반공급 기준으론 49점이다. 지원했던 곳들 커트라인이 60점대라 턱도 없이 다 떨어졌다. 이번 생에 내 집은 없다고 포기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갓 100일이 지난 자녀를 키우는 1년차 주부 이모(31)씨도 비슷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씨는 “특공을 생각해 전세로 시작했는데, 알아보니 아이 하나로는 서울 아파트 청약 당첨은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소득 기준에 맞춘 낮은 연봉으로 애 둘을 전세 살며 키워야 정부가 바라는 ‘신혼부부’인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학생 때부터 꼬박꼬박 10년 넘게 부은 청약통장이 있어도 몇 억 현금이 없으니 청약 신청은 꿈도 못 꾼다”며 “결국 부모에게 재산 물려받은 사람들만 유리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 “획일적인 기준 손 봐야”

전문가들은 신혼부부 특공 청약의 기준을 손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과)는 20일 “대출 LTV 40% 기준은 너무 가혹하다. 서울에 7~8억원이 넘는 아파트가 많은데 그 60% 현금을 가진 보통의 신혼부부가 얼마나 되겠냐”며 “정책의 목적이 주거 안정을 보장해 혼인율, 출산율을 높이려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런 식으로 가면 부모로부터 도움받은 돈 많은 사람만 집을 살 수 있는 현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일침을 놨다.

심 교수는 이어 “부부 합쳐 연봉 7000만원을 넘는 신혼부부가 상당히 많다. 소득 기준이 너무 낮다”며 “현재 무주택자만 특공을 넣을 수 있는데 1주택자라도 20대 때 결혼하며 20평짜리 집을 사서 살다가 40대 때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더 큰 평수로 옮기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이러한 획일적인 자격 기준을 수정해 주거복지정책이 목적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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