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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학생들 전쟁터로... '장사리' 이 장면, 실제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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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으로 역사읽기]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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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관련 사진. ⓒ 태원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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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당시 더글라스 맥아더 사령관은 이른바 양동작전을 전개했다. 전선이 낙동강 주변에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미군이 인천까지 북상해 상륙작전을 벌이자면 북한 지도부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국방부 산하의 전쟁기념사업회에 부설된 국방군사(軍史)연구소가 편찬한 <한국전쟁> 상권은 이 양동작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9월 12일 밤에는 한·미·영 혼성부대가 군산에 양동작전을 감행하였고, 동해안에서는 9월 14일과 15일 양일간에 걸쳐 삼척 일대에 맹렬한 폭격을 가하였는가 하면, 영덕 남쪽 장사동에서는 이명흠(개명 이종훈) 대위가 지휘하는 독립유격 제1대대의 학도병이 9월 15일 새벽에 해안에 실제 상륙을 하였다."

중부 서해안의 인천에서 있을 진짜 상륙을 감추고자, 중부 동해안인 삼척, 남부 서해안인 군산, 남부 동해안인 영덕 장사리(장사동)에서 상륙이 있을 것처럼 위장을 했던 것이다.

이 중에서 인천상륙작전처럼 실제로 벌어진 장사상륙작전을 다룬 영화가 오는 25일 개봉한다. 곽경택·김태훈 감독이 만들고 배우 김명민과 최민호(샤이니 민호) 그리고 김성철·김인권·곽시양이 주연한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초반부터 관객을 착잡하게 만든다. 장사상륙을 위해 문산함에 탑승한 국군이, 이명준 대위(김명민 분) 같은 장교 몇몇을 제외하면, 전원 다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군사훈련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제대로 받지 못한 772명의 학도병들이 화면에 나타나다 보니 관객은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학도병들의 평균 나이는 17세

학도병들의 평균 나이는 17세였다. 어린 군인들이 비록 양동작전이기는 하지만 전쟁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전투에 투입됐으니 관객들은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전투에 학생들이 뛰어들게 됐으니, 관객이 그들의 운명을 점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산호를 출렁이게 하는 영화 속의 그 거친 파도는 그 같은 불길한 예감을 한층 더 부채질한다.

영화 속 학도병들은 장사리 해안을 경계하는 인민군의 집중 사격을 뚫고 해안 상륙에 성공한다. 그런 뒤 인민군 초소를 빼앗고 인민군 응원부대의 공격에 대비한다. 이들은 선제적이고 공격적으로 인민군의 보복 공격에 대비한다.

그런데 뒤이어 나타나는 그들의 모습은 무인도에 버려진 관광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바다를 통해서만 아군과 접촉할 수 있었으니, 그들한테는 그 해변이 무인도나 마찬가지였다. 떠날 수도 없고 정착할 수도 없는 무인도 관광객의 비애와 공포가 그들에게서 나타난다.

더군다나 그들을 실어준 문산호도 상륙 과정에서 좌초돼 버렸다. 그런데도 상부는 이들을 돌보지 않는다. 미군도 국군도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만 도취될 뿐, 장사리에는 도통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작전 개시 전만 해도 대단한 지원을 해줄 것처럼 떠벌렸던 미군과 국군 지도부는 장사리는 나 몰라라 하며 개의치 않는다.

본부의 무관심은 학도병들의 불안으로 이어지고, 얼마 안 있어 배고픔으로 이어진다. 결국 미군이 공수해준 식량으로 배를 채우고 미군 함정의 구출로 그곳을 벗어나게 되지만, 그것으로 다 끝난 게 아니었다. 철수 과정에서 또 한 번 인민군과 교전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많은 숫자의 학도병들이 해안가 시체로 남겨지게 된다. 772명 중에 몇 명이나 생존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상륙작전 당시, 인천 쪽은 경비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맥아더가 상륙작전을 시도하리라는 것은 북한 지도부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런 일이 인천에서 벌어질 경우에 대한 대비는 소홀히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낙동강 전선으로부터 너무 먼 곳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상륙에 성공하더라도, 지키기 힘들 것이란 판단이 들 만한 곳이었다.

인민군 경계 삼엄하던 그곳에 10대 소년들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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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관련 사진. ⓒ 태원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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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8월 28일 미 10군단이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인천상륙을 저지할 수 있는 이 주변의 병력은 6500명 정도밖에 안 됐다. 그나마 그 대부분은 서울시와 김포비행장에 있었다. 인천에 주둔한 인민군은 약 1000명이었다.

그에 비해 낙동강 전선에는 인민군의 주력이 밀집돼 있었다. 대략적으로 스케치할 때 마산에서 칠곡(대구 위쪽)으로, 또 포항으로 이어지는 사각형의 낙동강 전선에 약 10만으로 추정되는 인민군이 집중 배치돼 있었다.

평균 나이 17세의 학도병 부대가 투입된 장사리는 낙동강 전선 바로 위쪽에 있었다. 인민군의 경계가 삼엄할 수밖에 없는 그런 곳에 10대 소년들을 파견했던 것이다. 인민군의 경비가 상대적으로 소홀한 인천에는 정규군을 상륙시키고 경비가 엄한 곳에는 이제 겨우 총을 쏠 줄 아는 소년들을 상륙시켰던 것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무모하고 무책임한 전투였던 셈이다.

더군다나 상륙작전이 펼쳐진 1950년 9월은 인민군의 지배 범위가 가장 넓을 때였다. 인민군의 에너지가 정점에 달해 있을 때였던 것이다. 그런 시점에, 인민군이 집중적으로 포진한 낙동강전선 바로 너머로 학생들을 투입했으니, 얼마나 위험천만했겠는지 느낄 수 있다.

영화는 그런 현실에 내던져진 학도병들의 불행을 집중 조명하는 쪽으로 스토리와 분위기를 전개한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관객들이 충분히 느끼고도 남을 정도다. 전쟁 지도부가 아닌 민중의 시각에서, 관객들은 이들을 지켜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만약 이 영화가 문산호가 바다에 떠 있는 시점부터 보여주지 않고 그 이전 상황부터 보여줬다면, 어린 학생들이 처한 불합리하고 위험한 현실이 한층 더 잘 부각됐을 것이다. 왜냐하면, 장사상륙작전이 인천상륙작전을 감추기 위한 양동작전이며 장사상륙에 투입되는 부대는 희생양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일들이 그 직전에 대규모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부대가 뭔가 큰일을 낼 거라는 공개적 암시

양영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의 논문 '6·25전쟁 초기 장사상륙작전의 전개 과정과 성격'에 특이한 상황이 소개돼 있다. 학도병들로 구성된 '독립유격 제1대대'가 출동 준비를 할 때의 상황이다. 아래 글 속의 '정일권'은 친일파다.
"1950년 9월 14일 오전 독립 제1유격대대는 육본 연병장에서 출동 준비를 완료하였다. 이날 한국 육군은 육해공 총사령관 겸 육군 총참모장 정일권 소장과 다수의 군 장성들이 참석한 가운데 출정식을 거행하였다. 통상 유격작전을 계획할 때는 엄격한 보안이 유지된 가운데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장사상륙작전의 경우는 특이하게도 완전히 계획을 노출시킨 채 추진하였고 심지어 출정식 행사에 육군 최고 수뇌부까지 참석하여 주목을 끈 것이다." - 군사편찬연구소가 2011년 발행한 <군사> 제79호.

이 부대가 뭔가 큰일을 낼 거라는 공개적 암시는 출정식 직후에도 있었다. 이들이 부산항 제4부두로 이동하는 동안,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열렬한 환송을 했던 것이다.

이들이 문산호에 탑승하기 전에도 이상한 일이 있었다. 상당 규모의 미군 병사들이 문산호에 오르는 장면이 공개됐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곧 빠져나가고 학도병들이 문산호를 채웠다. 부두 어디선가 상황을 체크하고 있을 인민군 스파이들을 의식한 행동이었다.

미군이 탑승한 것처럼 보이는 선박에 학도병들이 탔으니, 누가 봐도 미군이 작전의 주체이고 학도병들은 보조자들일 수밖에 없었다. 스파이들로부터 보고받은 인민군 지도부로서는 문산호의 행방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인민군의 총력 대응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문산호에 어린 학생들만 가득 타고 있었으니, 누가 봐도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이런 상황까지 영화에 담겼다면, 맥아더와 미군이 인천상륙을 위해 어린 학도병들을 얼마나 희생시켰는지가 한층 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에 더해 영화와 실제 사실의 괴리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학도병들이 처한 비극적 상황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실제 역사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면이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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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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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학도병들이 탑승한 문산호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미군 지도부가 구축함 엔디코트함을 보내 이 배를 호위하도록 했다는 점은 부각시키지 못했다. 또 영화에서는 학도병 부대가 상륙 뒤에도 선제적이고 공세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실제의 이 부대는 상륙 뒤에 철수 준비를 하기에도 매우 벅찼다. 문산호 좌초로 인해 돌아갈 길이 막막해졌기 때문이다.

이 부대의 목적은 내륙 진격이 아니었다. 인민군의 주목을 끌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상륙 이후에도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모드를 취할 필요는 없었다.

또 미군의 야속함을 강조하다 보니, 미군이 식량도 제대로 안 보내준 것처럼 영화는 묘사한다. 학도병들이 한참 굶주린 뒤에야 비행기가 날아와 식량을 떨어뜨려준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중뿐 아니라 해상을 통해서도 식량 보급이 있었다. 영화와 달리, 실제로는 미군이 자발적으로 식량 공급을 수행했다.

학도병들의 인명손실도 영화에서는 다소 과장됐다.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장사리에서 구출된 병사들의 숫자는 640명에서 700여 명 된다. 그렇다 해도 많은 희생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희생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이처럼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영화의 메시지를 강조하는 데 필요한 사실관계를 좀더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학도병들의 처지를 강조하느라 미군과 국군을 실제보다 악하게 묘사하는 등의 문제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한국전쟁에서 나타난 미국의 탐욕과 이기주의를 관객들에게 은근히 전달해주고 있다. 또 장사상륙작전을 한·미 양국 정부 및 군부 지도자들의 승리로 평가하지 않고 어린 민중들의 비극적 희생에 초점을 맞춰 평가하고 있다. 지배층이 아닌 민중의 시각으로 전쟁을 조명하는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김종성 기자(jkim08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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