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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미투 600일③] ‘피해자다울’ 필요 없다…중요성 높아진 ‘성인지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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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사진제공=충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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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 함상범 기자] ‘미투’ 사건은 시간이 대부분 오래됐다. 하여 증거를 찾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증거가 없어 피해자의 진술을 가장 중요한 단서로 여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해자의 진술이 부족하다 판단되거나, 증거 불충분으로 빠져나가기 일쑤였던 ‘성추문 사건’은 ‘성인지 감수성’이 대두되면서 피해자의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안희정 2심 재판 이후로 법원은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12일 법조계와 한국젠더법학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월 12일 대법원이 처음으로 ‘성인지감수성’을 언급한 후 올해 4월 말까지 1년간 총 67개 민·형사 판결에서 해당 단어가 언급됐다.

67개 판결 중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은 2건이었다. 성폭력 사건의 무고죄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사건과 안희정 전 지사의 1심이었다. 결국 안 전 지사 1심을 제외하고 성인지 감수성이 언급된 모든 판결에서 피해자에게 유리한 결과가 도출된 것으로 해석된다.

‘성인지 감수성’은 대체로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차별과 유·불리함 또는 불균형을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 남녀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불균형의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한다는 취지다.

법무법인 제이앤의 백지윤 변호사는 “대한민국은 증거 중심주의라 유죄가 되려면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하나, 미투 사건의 경우에는 증거가 완벽할 필요는 없다. 진술을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없더라도 법관이 보기에 충분히 믿을만한 신빙성이 있으면 유죄가 나올 수 있는 방향이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피해자 진술 밖에 없는 경우에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쉽게 빠져나갔는데, 지난 4월 안희정 전 지사 2심 판결 이후로 성인지 감수성이 대두됐다”며 “성인지 감수성은 일종의 ‘피해자다움’을 보지 않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른바 ‘피해자다움’은 통상적인 성폭력 피해자라면 ‘이렇게 행동할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안 전 지사로부터 피해를 당한 김지은씨가 “넹ㅎㅎ”, “(스위스 출장 후) 릴렉스와 생각할 시간을 많이 드린 것 같아 뿌듯해요. 정말 고생많으셨어요ㅜㅜ”, “헐, 강철 체력” 등 덤덤한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인해 ‘피해자답지 않다’는 부정적 시선에 시달린 바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라 하더라도 충분히 덤덤하고 일상적이게 행동할 수 있다는 시선으로 상황을 판단한다는 게 요지다.

앞서 법원은 성폭력 피해자라면 자연스럽게 기가 죽고 눈치를 보는 등 피해자답게 행동했을 경우에만 성폭력 피해를 인정해왔다. 피해자가 범행 방법이나 구체적인 시간 등 사소한 부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해자에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미투운동 이후 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면 안 된다는 ‘반성적 차원’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주의 깊게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성폭력 사건이 있은 후에 여성이 당당하거나 관계에 적극적이었을 경우에도 충분히 성폭력 피해를 받아들이고 있다.

백지윤 변호사는 “최근 미투와 관련된 대부분의 사건에서 유죄가 나오고 있다. 대법원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했으니 앞으로 하급심 재판부도 성범죄 사건을 다룰 때 적극적으로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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