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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날엔…] 여의도 떠도는 ‘문세표’ 전설, 2명만 표심을 바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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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박빙 선거의 상징 2000년 경기 광주군 국회의원 선거…대법원 재검표 끝에 3표→2표 차이로 정정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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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쯤이야.’ 본인의 선택이 대세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판단. 선거 때 투표 불참의 사유 중 하나다. 실제로 국회의원 지역구마다 수만 명, 심지어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투표에 참여하기에 한두 명의 표심은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의도 정가에 ‘전설’로 남아 있는 그날의 사건을 알게 된다면 마음은 달라질지 모른다. 이른바 ‘문세표’의 전설. 그 사연을 알기 위해서는 19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 한다.


‘바꿔 열풍’이 선거판에 몰아치던 2000년 제16대 총선. 경기도 광주군에서는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한 판의 승부가 펼쳐졌다. 한나라당 박혁규 후보와 새천년민주당 문학진 후보, 무소속 이상윤 후보가 3강 구도를 형성하며 대격돌했다.


유권자 8만7105명 중 4만9420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최종 투표율은 56.7%. 투표 불참 인원은 3만8000명에 달했다. 3만8000명은 “내가 그때 투표에 참여했더라면”이라는 말을 술자리 안주로 두고두고 활용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 단 2명이 표심을 바꿨다면, ‘투표불참자 몇 사람만 더 한 표를 행사했다면’이라는 가정이 어울리는 장면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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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ㆍ보궐선거가 치러진 지난해 6월13일 서울 영등포다목적배드민턴체육관에 설치된 영등포구선거관리위원회 개표소에서 사무원들이 개표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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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후보는 1만3132표(26.89%)를 얻으며 선전했지만 당선권에서는 멀어졌다. 승부는 박혁규 후보와 문학진 후보의 양강 대결로 모아졌다. 문학진 후보는 1만6672표(34.14%)를 얻었다. 그는 국회의원 당선의 9부 능선을 넘어 최종 목적지 앞까지 다다랐다.


하지만 박혁규 후보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선거관리위원회 개표 결과 박혁규 후보는 1만6675표(34.15%)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두 후보의 표 차이는 3표, 득표율은 불과 0.01% 포인트 차이였다.


이날 개표로 당선된 사람이나 아깝게 낙선한 사람이나 불안한 결과였다. 당선자는 ‘혹시 뒤집어지면 어쩌나’라는 생각에 밤잠을 이룰 수 없고 낙선자는 초박빙 승부의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약 박혁규 후보를 선택했던 2명의 유권자가 문학진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면 1위와 2위는 바뀔 수 있었다. 광주군 유권자들 역시 자신의 선택에 대해 고민하게 한 대목이다.


흥미로운 점은 선거가 끝난 이후였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가장 화제로 떠올랐던 지역구는 바로 광주군이었다. 지금까지 전설로 떠도는 ‘문세표’ 신화의 시작. 정치인 문학진은 한동안 ‘문세표’라는 별명을 안고 살았다.


물론 2000년 16대 총선 개표 결과가 모든 논란의 완성은 아니었다. 법원에 당선무효소송을 제기했고 재검표로 이어졌다. 광주군 투표장에서 벌어졌던 사건 하나하나가 조명을 받았다. 예를 들어 선관위 측이 투표장을 찾은 유권자의 투표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는 논란, 무효표로 분류됐던 표들에 대한 재판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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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ㆍ보궐선거가 치러진 지난해 6월13일 서울 영등포다목적배드민턴체육관에 설치된 영등포구선거관리위원회 개표소에서 사무원들이 개표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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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간 재검표 논란은 종료됐다. ‘문세표’는 ‘문두표’가 됐다. 3표 차이에서 2표 차이로 재검표 결과가 나온 것이다. 2표 차이라고 해도 당락은 바뀌지 않는다. 박혁규 후보는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행운의 주인공이 됐고, 문학진 후보는 불운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총선 때 단 몇 사람의 선거 참여가 당락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 2000년 16대 총선의 문세표 전설이 남긴 교훈이다. 평소에는 정치를 향해 온갖 쓴소리를 전하다가 막상 선거 때가 되면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2000년 이후 역대 총선 투표율을 보면 제일 높았던 때는 2004년 제17대 총선 당시의 60.6%이고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열린 2008년 제18대 총선 투표율은 46.1%에 불과했다. 유권자 절반 이상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가장 최근 총선인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도 투표율은 58.0%로 ‘60% 벽’을 넘지 못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지만 총선 투표율은 예상외로 낮다.


다시 그날의 사건으로 돌아가서 문세표 사연의 주인공 정치인 문학진은 이후 어떻게 됐을까. 그는 2004년 제17대 총선 경기 하남 국회의원 선거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42.6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2008년 총선에서도 통합민주당 후보로 하남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 46.2% 득표율로 당선됐다. 문세표는 그렇게 ‘재선 의원’의 자리에 올랐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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