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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한강 하구에서 DMZ까지’ 철책으로 꽁꽁 묶인 한반도의 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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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한겨레 공동기획]

‘비무장지대’를 꿈꾼다 -(1)경계의 풍경

남북, GOP 철책 전진배치해 DMZ 면적 43% 줄어

주민·환경단체 “대책없는 민통선 해제로 환경파괴”

경기북부 그린벨트·군사보호구역 등 ‘특별한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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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는 ‘비무장지대’(DMZ)는 역설적이게도 지난 7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지역이었다. 파악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지뢰가 매설된 이곳은 국경이지만 그 누구도 통과할 수 없는 국경이었다.

완전한 단절의 공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남과 북은 지난해 9·19 군사합의를 통해 비무장지대 일원에서 일체의 군사훈련을 금지하고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군사적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비무장지대가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희망의 땅으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비밀의 숲’인 비무장지대는 산림과 계곡, 하천, 습지의 원형이 잘 보존돼 두루미와 반달가슴곰, 사향노루, 산양 등 멸종위기종과 한반도 생물종의 40%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야생 동식물의 낙원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은 안보관광에서 생태·평화관광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년, 군사합의서의 이행은 주춤하고 있지만 분단의 상징을 평화의 공간으로 만들려는 꿈은 오늘도 영글고 있다.

서울에서 경기도 파주의 비무장지대까지의 거리는 약 50㎞밖에 안 된다. 하지만 그 길을 가기 위해선 수많은 경계와 장벽을 넘어야 한다. 경기도 고양, 김포, 파주, 연천 등 수도권 북부 지역은 지난 70년간 서울 방어를 위한 군부대와 군사시설들이 자리를 잡으며 다양한 ‘냉전의 풍경’을 보여준다.

서울에서 한강 하류를 따라 접경지역인 고양~파주 구간에 조성된 자유로를 따라가다 보면, 한강 하구를 물샐틈없이 꽁꽁 둘러싼 철책선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눈길을 돌려 앞을 향하면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주요 길목을 지키고 서 있다. 대전차 방어벽이다. 한강 하구와 공릉천, 문산천 등 하천 안에는 ‘용치’란 이름의 군사방호시설이 괴물처럼 하천을 가로지르고 있다. 용의 이빨이란 뜻을 가진 ‘용치’(龍齒)는 적의 전차를 저지하기 위해 1970년대 접경지역 하천변에 집중 설치됐다.

고양·파주를 지나 민북지역(민간인통제선 북방 지역)으로 가는 첫 관문은 민간인통제선(민통선) 검문소가 있는 통일대교다. 다리 입구에 설치된 촘촘한 바리케이드를 지나면 민간인 통제지역이 나온다. 민통선을 지나 비무장지대 입구인 남방한계선에는 견고한 전방초소(GOP) 철책선이 기다리고 있다. 삼엄한 지오피 철책의 통문을 통과하면 우리 땅이면서도 유엔군사령부가 모든 걸 관할, 통제하는 비무장지대 영역이 시작된다. 비무장지대의 경관은 차가운 지오피 철책선과 철옹성 같은 감시초소(GP), 그리고 군인들의 이동로다. 이 안에서 1만명이 넘는 남북의 젊은이들이 가슴에 수류탄을 달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대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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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군인 1만명이 대치한 비무장지대

지난 18일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육군 25사단의 상승전망대(OP)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는 1974년 발견된 ‘1호 땅굴’과 함께 북한 인민군의 지피와 북방한계선이 육안으로 보일 만큼 가깝게 느껴졌다.

비무장지대는 1953년 7월 정전협정에 따라 임진강 하구에서 강원도 고성 동해안까지 248㎞(155마일)에 군사분계선(휴전선·MDL)을 중심으로 남북에 각 2㎞씩 설정한 군사적 완충지대를 말한다. 하지만 남북의 철책선 전진배치로 이곳의 폭은 1.5㎞로 바짝 좁혀졌다.

비무장지대 너비가 줄어든 것은 1960년대부터 남과 북이 비무장지대 안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잘 관측할 수 있는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군사분계선 쪽으로 철책을 앞당긴 탓이다. 군 관계자는 “북이 먼저 휴전선 쪽으로 철책선을 옮기고 비무장지대 안의 높은 지형에 진지 형태의 오피를 세웠다. 아군도 이에 대응해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 철책을 안쪽으로 옮기고 비무장지대 안쪽 고지에 오피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남북의 철책선 전진배치로 정전 당시 992㎢였던 비무장지대 면적은 현재 570㎢로 43%쯤 축소됐다.

비무장지대를 흐르는 사미천 주변은 전쟁 전에는 양질의 쌀이 생산되는 연천평야였으나 지금은 습지로 변했다. 남과 북은 지난해 9·19 군사합의 뒤 사미천 인근의 지피 1곳씩을 철거했다.

비무장지대의 중무장화는 정전협정 위반이다. 정전협정에는 비무장지대 출입은 민사행정과 구제사업을 위한 목적에 한하고, 출입자는 양쪽이 각 1천명이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합의했다. 또 민사행정경찰의 무장도 반자동소총으로 제한해 연발사격이 불가능하도록 했다. 대규모 군사충돌을 방지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북이 1950년대 후반 소련제 에이케이(AK) 자동소총을, 국군도 1960년대 말 M16 자동소총을 배치한 뒤 남북은 1970~90년대까지 지피와 기관포 등 각종 중무기를 앞다퉈 배치하고 병력을 크게 늘렸다.

정전협정 뒤 다소 느슨하던 휴전선 일대는 1960년대 중반 냉전이 격화되면서 급변하기 시작했다. 휴전선 일대에서 군사적 충돌이 급증하자 국군은 1967년부터 남방한계선을 따라 기존에 설치한 목책을 철책으로 바꿔나갔다. 1965~69년 사이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진 총격전은 무려 415건에 이르렀고 수백명이 전사했다. 1969년 ‘닉슨 독트린’ 이후 휴전선 일대에서 군사충돌은 크게 줄었고, 1990년대 이후 군사충돌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남북의 군사력이 대치하는 비무장지대는 9·19 군사합의로 지피 20곳이 시범적으로 철거돼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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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는 민통선 해제로 망가진 철원

비무장지대와 함께 흔히 비무장지대 일원으로 불리는 민통선은 정전 이듬해인 1954년 만들어졌다. 군사분계선에서 10㎞ 이내 범위의 민통선은 주한미군 사령관과 국방부 장관이 비무장지대 경계를 위해 공동으로 설정해 공포했다. 경계 표시는 따로 없지만 경계지역 길목에 군부대 초소와 검문소를 만들어 군인들이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비무장지대 일원은 14개의 전망대와 임진각 등 관광명소를 찾는 관광객이 연간 600만명에 이른다.

파주 장단반도는 농토가 많고 접근성이 좋아 외부 출입 영농인이 많다. 이들은 사유지인데도 출입이 까다롭고, 일출 뒤 들어와 일몰 전에 나가야 해 검문소 군인과 자주 실랑이를 벌인다. 민통선 일대는 누가 매설했는지도 불확실한 지뢰로 인한 인명 피해도 막대하다.

박정희 정부는 1968~1973년 전방 방어와 심리전의 일환으로 민통선 안에 전략촌 113곳을 건설했다. 대부분이 사유지라 재산권 침해 논란과 개발 압력, 통행 불편 등 이유로 점차 줄어 비무장지대 마을인 파주 대성동마을을 포함해 경기도 4곳(파주시 통일촌, 해마루촌, 연천군 횡산리)과 강원도 4곳(철원군 이길리·정연리·유곡리·마현리)만 남았다.

정부는 고성, 철원, 파주 디엠제트 구간에 평화둘레길을 만든 데 이어 5개의 남북 연결도로 건설과 민통선 전면 해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주민과 환경단체는 디엠제트 일원의 막개발이 우려된다며 민통선을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19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과 비무장지대·접경지역에 대한 생태·역사·문화 보전 원칙 합의가 우선이다.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등 민통선·접경지역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개발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철원 주민 최종수씨는 “아무런 대책 없이 민통선이 해제된 바람에 철원의 자연환경이 크게 망가졌다. 민통선이 잘 보전돼야 디엠제트도 보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2년 민통선에서 해제된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의 경우 외지인들이 편법으로 공장형 축사와 대규모 태양광 시설을 마구 지어 환경 파괴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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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북부 접경지역의 ‘특별한 희생’

박정희 정부는 1971년부터 서울 외곽에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지정했다. 그린벨트 지정은 당시 대도시 성장 억제라는 명분 말고도 1·21사태 이후 수도방위를 위해 서울 주변에 집중 배치한 각종 군사시설을 은폐하고 보호하기 위한 목적도 포함됐다. 경기도 땅 1166㎢가 그린벨트로 묶였고, 경기 북부 최대도시인 고양시에는 1군단 사령부와 4개 사단 사령부, 예하부대, 각종 군사시설이 둥지를 틀었다. 국토교통부는 서울 주변의 그린벨트를 해제해 고양 창릉지구 등 수도권 3기 새도시 건설을 추진 중이다.

박정희 정부는 1972년 12월 군사시설보호법을 제정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7㎞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군사시설보호구역은 건물을 새로 짓지 못하거나 군과 협의를 거쳐야 개발이 가능해 지역 발전과 주민 생활, 재산권 행사에 큰 제약이 되었다. 연천의 94%를 비롯해 파주(91%), 김포(76%), 양주(53%), 고양(43%) 등 경기 북부 7개 시·군의 75%가 군사시설보호구역이 되었다. 국방부는 지난해 말에야 남한 면적의 8.8%를 차지하는 군사시설보호구역 가운데 337㎢를 해제하기로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안보를 위해 특별한 희생을 치른 경기북부 지역에 특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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