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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가 낳은 유물 ‘대전차 방어벽과 땅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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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경지역 도로·하천엔 ‘대전차 방어시설’ 빼곡

북은 폭격 대비 지하요새화…‘땅굴’ 불안감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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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접경지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군사시설은 한강변 철책선과 함께 도로와 하천에 조성된 대전차 방어시설이다. 1950년 한국전쟁 초기에 소련제 T-34 탱크를 앞세운 인민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국군은 정전 이후 도로와 하천에 대전차 방어벽과 ‘용치’를 줄기차게 설치했다. 그러나 전면전의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 2000년대 이후 지방정부는 용치 등 대전차 방어시설에 대한 해체를 거듭 요구하고 있다.

대전차 방어시설의 압권은 1990년대 초 조성된 일산새도시다. 1994년 7월 임시국회에서 이병태 당시 국방장관은 “수도권 외곽 신도시는 유사시 북한의 남침을 막는 장애물로 이용할 것”이라고 말해 일산 주민들의 공분을 샀다. 같은 해 9월 ‘일산신도시 군사대비계획 합의각서’가 공개됐다. 1990년 8월31일 당시 이진삼 육군참모총장과 이상희 토지개발공사 사장 사이에 작성된 이 문건에는 △남북 간 도로는 좁게, 동서 간 도로는 넓게 개설하고 △아파트 등 건물 배치는 군 작전성을 감안해 동서 횡적 방향으로 건립하며 △세대 간 장벽은 해체가 쉬운 합판 재질로 건설해 유사시 진지화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육군자유로사업단이 토공 사장에게 보낸 ‘일산신도시 진지화 개념 설계지침’에 따라 전체 아파트의 60% 이상이 가로로 배치됐고, 운동장과 공원은 물론 어린이놀이터까지 진지화하도록 설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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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 트라우마를 겪은 남쪽과 달리, 미군 전투기의 공습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된 북은 대응전략으로 지하에 대규모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전쟁 기간 휴전선 주변에 대규모 갱도를 구축한 북은 1962년 김일성의 ‘전 국토의 요새화’ 전략에 따라 군사시설 지하화를 본격 추진했다. 1974년부터 1990년까지 군사분계선 남쪽에서 4개가 발견된 북의 땅굴은 그 일환이었다. 땅굴의 출입구는 북에만 존재하지만 남한당국은 땅굴 발견을 위해 판 ‘우회갱도’의 출입구를 관람용으로 조성해 관광상품으로 활용했다. 땅굴은 멸공의 상징이자 휴전선 일대 요새화의 구실이었다.

전원근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객원연구원은 ‘1970년대 땅굴의 냉전경관화 연구’라는 논문에서 “분단체제 극복과 탈냉전을 지향한다면 땅굴과 같은 냉전경관들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돼야 한다. 안보의 정치와 공포의 악순환에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때 땅굴은 보다 다양한 의미 과정에 열린 경관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적었다.

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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