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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환상적인 발리슛처럼… 축구 인생이 다시 살아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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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명품 발리킥' 이동국, 300 공격포인트 대기록 눈앞]

중요한 길목마다 부상 불운으로 월드컵行 두 번 무산, 유럽선 부진

서른 넘어 전북 유니폼 입고 재기

"매년 마지막이란 각오로 뛰어… 롱런 비결? 잠 제때 잘 자는 것"

"공중에 뜬 공을 차는 발리킥은 어찌 보면 제 축구 인생 같아요. 제대로 맞히기 어렵지만 잘만 차면 360도 어느 곳으로든 공을 보낼 수 있거든요."

이동국(40·전북)은 K리그 대기록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14일 29라운드 상주전에서 자신의 전매특허인 발리킥으로 결승골을 넣어 2대1 승리를 이끈 이동국은 22일 경남전에서 골이나 도움을 기록하면 국내 프로축구 사상 첫 300 공격포인트를 기록한다. 2위 데얀(수원·234개)보다 60개 이상 앞서는 독보적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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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 공격수 이동국이 19일 완주군 봉동읍 클럽하우스 라커룸에서 K리그 최초 공격포인트 300개를 달성하겠다는 의미로 손가락 세 개를 내보이며 미소 짓는 모습. 이동국 등 뒤에 걸려 있는 역대 유니폼 중 가장 힘들었던 시즌을 골라달라고 하자, 그는 데뷔 때 입었던 1998년 포항 스틸러스 유니폼(맨 오른쪽)을 가리켰다. 그는 “선배들 호통에 이리저리 뛰다 보면 후반 15분쯤엔 어김없이 다리에 쥐가 나 드러눕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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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레전드 이동국에게도 빛나는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 끝난 것 같은 시련을 맞으면 어김없이 희망도 찾아오는 '영욕(榮辱)'의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19일 전북 현대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이동국은 자신의 축구 인생을 담담하게 되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부상 때문에 월드컵에서 제대로 뛰지 못한 불운한 선수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져 2006 독일월드컵 출전이 무산됐을 때 전 국민이 저를 걱정해주셨고 K리그에서의 부활도 진심으로 응원해주셨습니다. 이만하면 최고 행복한 선수 아닌가요?"

◇제2의 인생 열어준 전북

2009년 이동국이 전북 유니폼을 처음 입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서른을 넘겼다. 열아홉 나이부터 청소년·올림픽·월드컵 대표팀을 오가며 혹사당할 대로 당한 무릎은 축구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길목마다 망가졌다. 두 번의 월드컵(2002· 2006)과 두 번의 유럽 클럽 진출도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렇게 전성기를 모두 보내 버린 서른 살 공격수는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전북 유니폼을 입을 때 '언제 계약 해지를 당해 떠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전주 시내 아파트를 얻으면서 1년짜리 '전세'로 계약했어요. 당시 최강희 감독님이 '앞으로 네가 못하겠다고 손들지 않는 한 너를 다른 선수로 교체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셨죠. 최 감독님 아니었다면 지금 나는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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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은 2009시즌 개막에 앞선 연습 경기에서는 한 골도 넣지 못했으나 2라운드에서 첫 골을 넣더니 그해 리그 29경기 21골로 득점왕과 최우수선수(MVP) 영예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전성기가 이미 지났다고 생각한 프로 12년 차에 리그 최고 선수가 된 것이다.

"그때 인생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느꼈어요. 이후 매년 다음 시즌을 생각하지 않고 '올 시즌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뛰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이제 이동국은 골을 터뜨릴 때마다 K리그 통산 최다골 기록을 갈아치운다. 그는 현재 529경기 222골 77도움을 기록 중이다. 원톱 공격수임에도 통산 도움 부문에서 미드필더 염기훈(105개)에 이은 2위다. K리그에서 신인왕(1998)·득점왕(2009)·도움왕(2011)·최우수선수(2009·2011·2014·2015)를 모두 차지한 선수는 이동국이 유일하다.

◇롱런 비결은 '잠'

이동국은 자신의 '롱런' 비결에 대해 "잠을 제때 잘 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수는 잘 먹고 잘 자야 경기력을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다"며 "해외 어디에 가든, 어떤 상황에서는 나는 '자야지' 마음먹으면 바로 잘 수 있다"고 했다.

한때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던 이동국은 요즘 '대박이(아들 시안군의 별명) 아빠'로 더 유명하다. 예능 프로그램과 프로 생활을 병행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어차피 휴일에 아이들과 놀아줘야 하기 때문에 그걸 카메라로 찍는 일은 크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올 시즌 전북 지휘봉을 잡은 조제 모라이스(포르투갈) 감독은 팀 내 최고참인 이동국에게 '무한 신뢰'를 보낸다. 이동국은 "사령탑 교체기에 선수단이 혼란을 겪거나 성적을 못 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일이 없도록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동국은 "남은 리그 9경기에서 팀이 승리하고 나도 골을 더 넣어 통산 7번째 K리그 우승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롤러코스터에서 그는 아직 내릴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전주=윤동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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